<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팀 오브라이언
소설가이자 번역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정성 어린 번역은 정성 어린 ‘덕질’의 결과다. 하루키는 지금까지 다양한 미국 작가들을 사랑한 덕후였고, 그들의 작품들을 번역해왔다. 하루키가 사랑한 작가 중 팀 오브라이언이 있다. 팀 오브라이언의 섬세한 감정 표현과 덤덤하게 읊조리는 텍스트는 하루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루키는 베트남전 참전 이력을 바탕으로 한 소설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을 일본어로 옮겼다. 이 작품에는 저자 오브라이언이 몸담았던 보병 부대 군인들이 일상으로 돌아와서 겪는 전쟁 트라우마가 묘사된다. 과거를 끝없이 반추하며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군인들이 안고 있는 비인간적인 삶에 대한 기억의 표면적인 부분만을 묘사하지 않는다. 하루키가 이 작가에게 이끌렸던 건 전쟁이라는 소재를 보편적인 전쟁 소설처럼 다루지 않고, 어쩌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을 소설이라는 도구를 빌려 제시해서가 아닐까.
<베니스의 제프, 바라나시에서 죽다> 제프 다이어
우리의 심리를, 감정을, 생각을 끈질기게 탐구하는 알랭 드 보통의 통찰력은 제프 다이어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알랭 드 보통이 동시대 작가 중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꼽은 제프 다이어는 인간의 내면은 깊게, 이야기는 서정적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특징은 <베니스의 제프, 바라나시에서 죽다>에서도 잘 드러난다. 책은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 ‘베니스의 제프’에서 주인공 제프는 아름답고 세속적인 도시 베니스에서 한 여인을 만나면서 본능에 따르는 사랑과 예술을 끊임없이 갈망한다. 인간의 욕망을 거침없이 표현한 점에 알랭 드 보통이 매료된 건 아닐까. 제프는 2부 ‘바라나시에서 죽다’에서 욕망의 허무와 불안한 삶을 깨닫고 인도의 바라나시로 떠나 체념과 열반의 상태에 이른다. 욕망에서 시작해 허무주의로 인생을 마감하는 과정에서 감정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내면을 관통하는 작가의 예리함이 두드러진다.
<와인즈버그, 오하이오> 셔우드 앤더슨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는 셔우드 앤더슨의 소설집이다. 미국 오하이오주의 시골 마을 와인즈버그를 배경으로 그곳의 구성원들이 안고 있는 저마다의 갈등을 그린 22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그 갈등은 상처, 욕망, 강박, 정신적인 아픔들로부터 형성된다. 동성을 사랑하기 때문에 갈등을 겪고, 기괴한 소문이 날로 늘어 고통 받는 등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이어진다.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현대인의 부정적인 정서를 날카롭게 포착한 셔우드 앤더슨의 덤덤하고 아름다운 묘사는 미국 남부를 대표하는 작가 윌리엄 포크너의 사랑을 받았다. 셔우드 앤더슨의 그로테스크한 표현에 매료된 건지, “미국 문학의 전통을 낳은 아버지”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체호프 희곡선> 안톤 체호프
막심 고리키와 안톤 체호프는 어려운 가정 형편과 러시아의 혼란스러운 격변기를 겪었다는 공통점을 안고 서로 떼놓을 수 없는 관계를 형성했다. 과거의 기억은 그들 작품의 원천이 되었고 문학적 우정은 돈독해질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다룬 문학 형식은 다르지만 고리키는 새로운 형태의 극을 창조하고자 한 체호프의 열망을 존중했다. 둘은 러시아 사회의 격동적인 변화를 바탕으로 문학계의 혼돈을 작품 속에 사실적으로 담았다. 이를테면 체호프는 ‘갈매기’에서 성취에 대한 욕망이 좌절되자 결국 자살하고 마는 주인공을 그렸고, ‘세 자매’에서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무기력한 삶을 이어가는 세 자매의 이야기를 담았다. 특별할 것 없는,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와 배경, 스토리를 다루지만 애처로운 인간의 삶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체호프는 슬픔이 꽉 찬 인생들을 사실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삶은 패배를 동반하고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이러한 통찰에 고리키가 매혹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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