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원작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의 현장 사진에서 ‘구웅’을 연기하는 모습이 화제였다. 장발에 슬리퍼를 끌며 캐릭터 티셔츠를 입은 너드 그 자체. 그간 안보현에게서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라 새로웠다.
‘도촬’ 사진이라 예기치 못한 공개였는데 반응이 좋아서 놀랐다. 하하. 원작 캐릭터와 싱크로율을 맞추기 위해 스무 번 정도 태닝하고, 살도 뺐다. 마냥 멋있는 역할만 하기보단 안보현이란 배우가 뭐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다. 일단 이미지 변신은 성공한 것 같다.
넷플릭스 드라마 <마이네임> 촬영은 잘 마쳤나?
액션 누아르 장르를 정말 해보고 싶어서 만족스럽게 촬영했다.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강단 있는 인물로, 한소희 씨와 액션 연기를 많이 선보인다. 내가 체격이 큰 편이라 대역을 쓰기 쉽지 않았고, 감독님도 최대한 리얼한 연기를 추구해서 평소 하고 싶었던 액션 연기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하하하.
지난해는 <이태원 클라쓰>와 <카이로스>로 안보현을 알린 한 해였다. 올해는 돌이켜봤을 때 안보현의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해로 기억되길 바라나?
작년엔 열심히 했고 운도 따라 많은 분에게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올해는 반짝 ‘라이징’이 아닌, 배우로서 자리매김하는 단단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작품을 찍자 마자 공개하는 것이 아니니, 내가 보이지 않는 몇 달간 ‘라이징’에 그친 배우였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거다. 하지만 이 시기는 촬영하며 나를 다지는 시간이었다. 열심히 한 만큼 얼른 보여드리고 싶다.
<나 혼자 산다>와 직접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보면 캠핑, 차박, 낚시, 사이클링 등 아웃도어 취미 부자더라.
부산 출신으로 타지에 올라와 혼자 ‘힐링’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해 쌓아온 오랜 취미들이다. 요즘 캠핑이나 차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주변에서 조언을 많이 구한다. 차박하려면 어떤 차를 사야 하나, 장비는 뭘 사야 하나. 정작 난 요즘 촬영 때문에 캠핑까진 못 가고 자전거를 많이 탄다. 한강에서 출발해서 행주산성, 팔당, 가평, 남이섬도 간다. 멀지 않냐고? 하루 100km쯤은 거뜬하다.
사서 고생하는 걸 즐기나?
그런 편이다. 하하. 성취감이 들거든. 작품이 끝난 어느 추운 계절, 친구 셋이서 부산까지 4박 5일간 하루 열 시간씩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자전거 여행은 셋이 간다고 셋이 동시에 움직이는 게 아니더라. 뒤처지는 사람도 있고 앞서가는 사람도 생긴다. 그럴 때 뒤돌아보게 된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게 뭔지 생각해보면서. 동행한 친구들도 그 여행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더라. 고생스러웠지만 성장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DIY형 인간 같다. 직접 발을 굴려 부산까지 가고, 올드카를 캠핑카로 개조하고, 집을 리모델링하고, 낚시한 걸로 요리해 먹고. 자기 손으로 뚝딱뚝딱 만드는 과정에 애착이 깊은.
DIY라는 말이 나한테 정말 딱인데? 하하하. 어릴 때 서울에 올라와 자취할 때부터 누가 버린 물건을 보고 ‘저걸 왜 버렸지’ 하면서 가져와 닦고 고치고 조여서 쓰곤 했다. 그게 몸에 배어 있다. 자급자족하는 데서 성취감을 느낀다.
살림꾼이네.
알뜰하게 살았다. 아껴 살아서 여기까지 온 거지. 꿈을 안고 서울에 왔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더라고.
이제는 꽤 성공한 배우인데 쉬엄쉬엄해도 되지 않나?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취미 생활이 바뀌더라. 골프를 해보라고들 하는데, 난 아직 그대로다. 지금도 땀 흘리면서 부대끼고, 몸 쓰는 걸 좋아한다.
캠핑카로 개조한 갤로퍼도 근사하더라.
내 첫 차다. 서울에서 이사 다닐 때마다 모든 짐을 실어서 함께 다니던 차라 애착이 크다. 동반자 같은 느낌이랄까. 최근엔 심장이 죽어서 큰돈 들여서 살려냈다. 나처럼 갤로퍼를 사랑하는 대구 형님이 고쳐주셨다. 애기 아버님인데 차를 수리해주시는 업자로 처음 만났다가 진짜 좋은 분이라 친해졌다. 서로 응원해주는 사이다.
어떻게 하면 차를 고치다 친해지나? 군대 선후임들과도 현장에 커피차를 보내줄 만큼 친하던데.
남자한테 인기가 많다. 하하하. 백 명이면 백 명 다 친해질 순 없지만, 그 안에 다섯 명은 끝까지 간다. 고민 상담 요청도 많이 받는데, 마냥 들어주기보단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말하는 편이다.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단점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신뢰한다는 뜻이잖아. 주변을 보면 그래도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인덕이 있네.
사람을 좋아하지만, 동시에 사람들과 부대끼며 느낀 시기, 질투, 증오, 모든 감정을 통해 많은 걸 배우며 여기까지 왔다. 서울에서 내가 성장하고, 내가 되나 안 되나 보자 이를 갈며 나아가는 데 원동력이 된 것도 사람이다.
부산 영도 출신이다.
영도는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다. 그 섬에 대한 애착과 향수가 깊다. 영도에서 기숙사 생활을 할 땐 일주일에 한 번 섬 밖으로 나갈 수 있어서 실미도 같은 섬이라고 했지. 친구들과 갯바위에서 수영하고, 대나무에 낚싯대 감아 물고기 잡고, 홍합과 담치를 따 먹곤 했다. 모래 해변이 아니라 한 번 다녀오면 온몸이 다 긁히고 찢어져 있고. 그 시절의 추억들이 소중하다.
10대 땐 복싱을 했고 전국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그 시절엔 어떤 애였나?
아이 같지 않은 아이였다. 사춘기가 언제 온지도 모르게 철이 빨리 들었지. 체육 특기생을 택한 건 그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국립학교에 스카우트되어 진학하면 기숙사 숙박부터 의식주가 다 해결되거든. 게다가 입상하면 상금도 있으니 집의 부담을 덜 수 있었다.
그때부터 키가 컸나?
컸다. 운동하면 선두에 있곤 했지. 그래서 스카우트된 거다. 키가 크면 안 맞고 때릴 수 있으니 복싱에서 큰 메리트거든.
복싱에서 모델, 모델에서 배우. 두 번의 전환점이 있었다.
세 직업 모두 몸을 쓰고 혼자 하는 일이다. 남이 아닌 스스로를 잣대 삼아야 하는 일이지. 복싱을 하며 부상이 많았다. 이러다 왼쪽을 못 쓰는 건 아닐까 싶어 그만두고 군대에 가서 직업군인이 되려고 생각했는데, 가족들이 너무 고생했으니 대학도 가고 다른 걸 해보라고 모델을 권했다. 그래서 도전했는데 몸이 더 커지더라. 하하. 돌이켜보면 선수 때부터 영화 <주먹이 운다> <챔피언>을 보며 연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배우를 꿈꾸며 서울로 상경했는데, 연고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니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지. 복싱을 안 했으면 여기까지 버티지 못했을 거다. 그때 겪을 수 있는 육체적 고통은 다 겪었거든. 육체적 부분에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으니 포기만 말자는 생각으로 계속했다. 지금 나 자신을 만들고 가꿔 보여줄 수 있는 이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다.
서울에서 산 지 몇 년 됐나?
스무 살 때부터 왔다 갔다 했고, 상주한 지는 11년 정도다. 신림동에서 시작해 역삼, 신천, 홍대, 망원, 지금 사는 성수까지 이사를 다녔다. 자취를 시작한 신림동은 서울 사람보다 지방에서 온 사회 초년생들이 많았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자극받아 열심히 살았지.
어떤 일들로 생계를 유지했나?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는데 일용직 노동을 많이 했다. 오늘 하루 밥 먹었다고 내일 걱정을 안 하는 게 아니다. 이번 달 월세를 냈으면 다음 달 월세도 마련해야지. 같이 살던 친구들도 “우리의 첫 목표는 월세 준비다”라고 되뇌며 투잡, 스리잡을 뛰면서 배우의 꿈을 꿨다.
자취하면서 요리도 익혔나?
친구 넷과 함께 살 때도 시켜 먹어본 적이 거의 없다. 차라리 간장에 밥 먹고 말았지. 우리 위치에선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파 한 단 손질해 냉동실에 넣어두면 두고두고 쓰고, 달걀 한 판으로 해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요샌 밀키트나 배달 문화가 발달해 시켜 먹는 게 더 저렴하지만.
안보현만의 살림 비법 하나 알려달라.
살림에 비법 같은 건 없다. 굳이 말하면 난 보일러를 잘 안 켠다. 전기장판 켜고 따듯하게 입으면 되지. 공과금은 쓰는 만큼 나오니까, 샤워할 때 온수 모드를 돌렸다가도 나오면 바로 끄고, 가스 밸브도 꼭 잠그고.
하나하나 발품 팔아 리모델링했다던 성수집이 멋지던데?
조금 큰 집으로 이사는 갔지만, 내 집 같다는 생각이 아직도 안 든다. 하하. 샹들리에며 뭐며 달아놨지만 굉장히 조심스럽다. 아직도 적응 중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이나 노동의 경험에 대해 참 담백하게 말한다. 건강한 사람 같다.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진짜니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거짓으로 말할 수 없다. 편법 쓰지 않고 몸을 고되게 움직이는 일 자체를 좋아하기도 한다. 요즘엔 쿠팡이츠 배달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싶더라. 친구들도 가끔 퇴근길에 하던데. 자전거 타면서 운동도 할 겸.
좋아하는 캠핑 장소는 어딘가?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서해안을 추천하고 싶다. 특히 태안이 좋다. 별들도 많이 볼 수 있고, 파도가 크게 치지 않는 잔잔한 곳이다.
지금도 여전히 바다를 좋아하나?
향수에 가깝다. 바다를 볼 때의 울적하면서 편안한 느낌이 좋다. 서울 살면서는 바다를 잘 보지 못해 한강에 자주 간다. 이사 다닐 때도 최대한 강 가까이 다녔다. 물가에서 일몰 보는 걸 좋아한다. 수평선과 해가 닿으면서 색이 그러데이션으로 바뀌는 것이 좋다. 일몰에도 우울함과 편안함이 공존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매일 봐도 구름은 매일 다르니까 볼 때마다 좋지. 불을 보며 멍 때리는 ‘불멍’과도 비슷하다.
부지런히 살다가 잠시 멈추는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그렇다. 잠시 내려놓는, 편안한 느낌을 받거든.
본인의 유튜브 채널을 직접 기획한다고 들었다. 양념 치지 않은 ’찐’ 취미들을 슴슴하게 보여주더라.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데 거리낌이나 두려움 없이.
이게 난데 뭐. 그냥 사람다운 사람이고 싶다. 베일에 싸여 있는 배우 이미지는 나랑 안 맞는다. 하하. ‘어그로’ 끌지 않고 편하게 볼 수 있는 채널로 운영하려고 한다. 내가 직접 기획하고 촬영하고 편집만 친구가 해주다 보니 자주 올리진 못하는데, 한 달에 한 번은 올리려 한다. 앞으로는 게스트를 초청해 소통하는 포맷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오늘도 챙겨온 필름 카메라로는 주로 뭘 찍나?
인물 찍는 걸 좋아한다. 필름 사진을 선물하면, 받은 사람이 엄청나게 좋아해주거든. 스태프들에게 주거나 친구들의 애기나 조카를 찍어 간단한 편지와 함께 건네주면 그렇게 좋아하더라. 친구집에 놀러 가 냉장고에 내가 준 필름 사진이 붙어 있는 걸 발견할 때, 참 좋다.
작년엔 열심히 했지만 운도 따랐다고 했다. 앞으로도 운은 안보현의 편일까?
운이란 거품처럼 생겼다가 사그라지기도 하더라. 그런데 거품이면 뭐 어떤가. 열심히 움직여서 또다시 만들면 되지. 올해도 열심히 할 거다.
안보현은 뭘 믿나?
번지르르한 말은 모르겠다. 다만 말의 힘을 믿는다. 잘될 거다. 잘될 거다. 아침에 늘 하는 목걸이를 채우면서 항상 주문처럼 외우는 말이다. 편지나 사인에도 이 말을 많이 쓴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길. 그 말이 나를 이끌어왔고 앞으로도 그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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