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3회를 맞이하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4월 25일(미국 시간)에 열린다. 보통 아카데미상 후보작은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미국 내 극장에서 상영된 영화를 기준으로 선정하며, 그다음 해에 수상해왔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작년 1월 1일부터 올해 2월 28일까지 상영된 영화들이 후보작이 되었다. 먼저 눈여겨볼 만한 지점은, 작년에 <기생충>이 작품상을 수상할 수 있는 토대가 된 아카데미상의 변화다. 잘 알려진 대로, 이 상은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의 회원인 영화인들(배우, 제작자 및 다양한 영화 관계자)이 선정한다. 2015년에 약 6천4백 명 정도였던 회원이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늘었다. 제92회는 8천4백69명의 회원에게 투표권이 있었는데, 8백42명이 새로운 회원이었다. 이 신입 회원들은 미국 영화 산업을 대표하는 노년의 백인 남성들에 편중된 것이 아니라 여러 나라와 다양한 인종을 대표하는 영화인들이었다. 즉 아카데미상이 미국과 할리우드만을 대표하는 시상식에서 벗어나 전 세계로 외연을 확장하면서 이런 움직임이 수상에 즉각 반영되었다. 변화의 수혜자는, 두말할 것도 없이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이었다. 작년에 다시 68개국에서 8백19명을 새로운 회원으로 맞이했다. 이들 중 여성이 45%, 소수 민족 및 인종 공동체가 36%를 차지한다. 참고로 현재 50명이 넘는 한국인이 아카데미 회원으로 투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다양한 인종과 여성의 투표권이 늘어난 것은 당연히 올해의 수상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아카데미상의 이런 흐름을 이해한다면, 올해 가장 강력한 후보는 단연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다. 작년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과 올해 골든글로브의 작품상, 감독상을 수상함으로써 영순위 수상작으로 꼽히고 있다. 흔히 ‘아카데미의 전초전’이라 불리는 골든글로브의 성과가 아카데미상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강자다.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해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국내에서 자오 감독은 마블의 <이터널스>(2021)를 연출한 감독으로 알려졌지만, 데뷔작 <송스 마이 브라더스 티치 미>(2015)에서 인디언이나 <로데오 카우보이>(2017)의 카우보이 캐릭터처럼 미국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을 다루면서 이미 칸 영화제 등에서 화제가 되었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2번 수상한 여배우 프랜시스 맥도먼드를 내세워 경제적으로 붕괴(2000년대 대공황)된 미국 도시의 실상을 담아낸 <노매드랜드>가 미국의 주요 비평가협회 시상식을 모두 휩쓴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애정 어린 비판과 함께 미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지속적으로 바라본 그녀의 시선과 뚝심 있는 연출력은 인정받을 만하다. 서치라이트 픽처스와 디즈니가 배급하는 영화답게 홍보 마케팅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큰 이점이고, 이는 ‘아시아 여성’의 감독상 수상이라는 결과를 낳을 확률이 높다. 2020년 봉준호에 이어 중국계 감독인 자오가 수상한다면 연이은 아시아인 수상이 더욱 화제를 낳을 것이다.
작년 <기생충>의 성공과 달리, 한국은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부문에 <남산의 부장들>을 출품했으나 1차 후보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렇듯 한국 영화의 또 다른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처지였으나 뜻밖에도 한국계 미국인 감독 정이삭의 <미나리>가 골든글로브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 6개 부문 후보에 오르면서 새로운 기대주로 급부상했다. 1980년대 한국인 가족의 아메리칸 드림(정착기)을 그린 <미나리>는 현재 국내 극장에서도 활력소가 되면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기생충>의 짜파구리에 이어 봄맞이 미나리 요리가 식탁에 오르고 있을 정도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미나리>는 브래드 피트의 제작사 플랜B와 A24가 제작한 미국 영화다. 따라서 작품상 수상은 한국과는 무관하다. 물론 이야기가 한국인의 삶을 담아내고 대사 대부분이 한국어인 데다 배우 윤여정, 한예리 등이 나온다는 점에서 한국적인 영화로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다양한 문화권의 외국인에게도 이 영화는 한국인의 삶과 문화를 담은 영화로 인식될 것이다. 무엇보다 <미나리>는 쉽게 소통 가능한 보편적인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강점이 있다(그럼에도 <미나리>는 완성도 측면이나 영어 대사가 아니라서 자막을 읽어야 하는 약점을 갖고 있다). 플랜B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아픔과 고통을 담은 <노예 12년>(2013)과 <문라이트>(2016)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제작사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한국인의 모습을 담아낸 <미나리>로 작품상을 노리는 것이 무리수는 아니다. 물론 <기생충>처럼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을 포함해 4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결과를 낳을 수는 없을 것이다. <미나리>가 작품상 후보에 머문다고 해도 그 의미가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미나리>에 거는 또 하나의 기대는 여우조연상이다! 연기력과 지명도로 따지면 <더 파더>의 올리비아 콜먼(<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2018)로 여우주연상 수상), <힐빌리의 노래>의 글렌 클로스(아카데미상에 7번 후보로만 오른 불운의 배우) 등은 만만치 않은 상대다. 하지만 조연상이 연기력 외에도 시상식을 앞두고 발생하는 분위기에 다소 좌우되는 경향이 있는 걸 고려하면, 윤여정이 미국에서 일으키고 있는 신선한 바람이나 주목도도 무시할 수 없다(윤여정과 그녀의 연기에 대한 미국 언론의 찬사와 관심은 놀라울 정도다). 우리에게 설명이 필요 없는 대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서 수상 소감을 밝히는 모습만큼 짜릿한 순간은 없을 것이다. 한국 배우의 첫 수상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그 외에 OTT 기반의 작품들이 다수 노미네이트되었다. 넷플릭스의 화제작 <맹크>(10개 부문),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6개 부문),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5개 부문), HBO맥스의 <주다스 앤 더 블랙 메시아>(6개 부문) 등이다. 코로나19로 미국 극장이 폐쇄되는 등 상영이 원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넷플릭스를 필두로 OTT 회사가 제작한 영화들이 관객의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노매드랜드>와 <미나리>가 시상식을 앞두고 신드롬을 일으키는 분위기로 볼 때 여러 영화가 후보로 안착했음에도 넷플릭스의 다관왕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 중에서 <소셜 네트워크>(2010)로 각색상을 수상한 바 있는 아론 소킨이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에서 표출한 문제의식(반전 시위, 악명 높은 역사적 판결) 덕분에 각본상이 유력해 보인다. 또 작년 8월에 고인이 된 ‘블랙 팬서’ 채드윅 보스만이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감동의 드라마가 펼쳐질 수 있다. 반면 <맹크>의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그간의 명성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와는 여전히 인연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최악의 경우, 작년 10개 부문 후보였으나 단 한 개의 수상도 못한 <아이리시맨>의 길을 걸을 수 있다).
극영화의 작품상을 놓고 경쟁하는 것만큼 치열하진 않지만,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에선 픽사 스튜디오의 수장(CCO)인 피트 닥터의 수상이 주목된다. 코로나19로 극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국내 2백만 명의 관객을 모은 <소울>은 골든글로브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음악상을 수상했다. 닥터는 이미 <업>(2009), <인사이드 아웃>(2015)으로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고 <소울>로 3번째 수상을 노리고 있다(수상한다면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는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더불어 픽사는 11번째 수상을 노리고 있다. 픽사의 기적은 재즈 선율과 함께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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