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촬영에서 예리는 깊은 단꿈에 빠진 프시케 같은 느낌이네요.
첫 컷부터 나비들을 온몸에 잔뜩 붙였는데 재미있었어요! <아레나>의 시안은 받아보고 정말 좋았고, 특히 석상에 키스하는 시안은 꼭 찍고 싶어서 캡처까지 해뒀잖아요. 흐흐. 전 사진 찍히는 것도 찍는 것도 워낙 좋아해서 시안 찾는 것도, 새로운 걸 시도해보는 것도 즐기거든요.
예리 씨가 찍어보고 싶다고 드레시한 시안들을 보내왔을 때, 단지 카메라 앞에 서는 피사체가 아니라 스스로 무엇을 찍고 싶은지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이라 반가웠어요.
맞아요. 전 드레스를 입는다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만 연출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건 외려 식상하죠. 드레스를 입어도 멋질 수 있어요.
뱀파이어물과 호러물을 좋아한다면서요? 한 예능에서 “뱀파이어가 장래희망이에요”라고 한 게 인상 깊었어요.
연습생 때부터 뱀파이어물을 엄청 좋아했거든요. 미드 <뱀파이어 다이어리>는 연습생 때부터 모든 시즌을 다 본, 청춘의 친구와도 같은 존재예요. 꽂히면 파고드는 성격이라, 웬만한 뱀파이어물은 다 찾아 봤고, 영화 <박쥐>를 보고 나니 졸업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그래서 오늘 시안에 기묘한 느낌을 섞어봤어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아티스틱한 화보를 찍어본 게 정말 오랜만이거든요. 잎에 얼굴을 파묻는 것도, 석상에 키스하는 것도, 온몸에 나비를 붙이는 것도. 제 안의 갈망을 풀 수 있어서 좋았어요.
오늘 화보 속 예리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써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재미있겠는데요? 이 컷들이 전부 미스터리한 사건이 되는 거예요. 붉은 페인트와 소품들은 단서가 되고요. 기이한 느낌으로 써보고 싶네요. 언젠가 소설도 써보고 싶거든요.
가사 잘 쓰잖아요. 자작곡 ‘스물에게’ 가사 좋아해요. ‘그리는 건 참 많고 많지만 물감이 적어 다 그려낼 수 없는 이 모습도 나라는 걸 알아요.’
중의적 의미예요. 그림을 그린다는 뜻도 있지만, 바란다는 뜻도 있죠. 내가 바라는 모습은 많지만, 난 작은 사람이라 아직 그렇게 될 수 없단 걸 안다는.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해서, 마음대로 살아지는 게 아니라는 걸 빨리 알았죠.
지금은 어떤 물감들로 예리란 사람을 그려내고 있나요?
보라색이란 진한 개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처음과 끝 같은 검은색과 흰색도 지닌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가 빈 껍데기만 있지 않은 사람이면 좋겠어요. 제가 잡고 있는 알맹이가 확실한 사람이길 바라거든요. 지금 보라색은 제게 빠질 수 없는 색이에요. 팬분들께 보라색 편지와 선물들을 받으며, 어느샌가 참 좋아하게 된 색이죠.
팬들을 친구라 부른다면서요?
저 역시 곁에 있는 이들을 사랑해보니, 사랑을 주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팬분들은 아무 조건 없이 절 사랑해주시잖아요. 방송에 비치지 않는 내 다른 모습도 좋아해주실까? 그런 생각이 들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힘이 나요.
예리, 하면 친구 많고 적극적인 이미지가 있잖아요.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녜요. 어릴 땐 나 자신과 타인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거든요. 데뷔 초엔 내가 이렇게 말하면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두려움이 앞섰어요. 내 이야길 하는 게 어려웠죠. 그 무렵, 한 친구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와준 적이 있어요. ‘나도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란 생각이 머리를 쳤죠. 믿음을 주니 신뢰가 가더라고요. 나도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예리는 어떤 사람에게 호감을 느껴요?
닮고 싶은 부분이 있고, 존경심이 들고, 말이 통하는 사람. 김태리 님은 제1번 ‘최애 배우님’이에요! 강단 있는 면이 멋져요.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먼저 다가기도 해요. 작년엔 유튜브 ‘예리한방’에 여러 지인들을 초대하며 덜 외롭게 보냈죠. 그런데 다들 저보고 ‘인싸’라고 하시는데…, 이건 처음 말하는 건데, 저 진짜 만나는 사람만 만나요.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좋아해요.
반대로 누군가에게 편견을 가질 때는 없어요?
루머라는 건 늘 따르잖아요. 누가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 저도 데뷔할 때부터 그런 말들을 들었거든요. 가십의 주인공이 되는 게 누구든 기분이 좋을 리 없죠. 누군가를 소문으로 판단하고 싶진 않아요. 제가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는 그렇게 여기지 않을 거예요.
당신에게 중요한 세 가지 단어에 대해 말해줄 수 있나요?
우선 인플루언스. 제 직업에 빠질 수 없는 단어죠. 그리고 안정감. 어릴 때부터 자는 공간이 자주 바뀌다 보니, 잠과 친하지 않아요. 그래서 제게 가장 중요한 건 안정감이에요. 좋은 일이 있어도 너무 들뜨려고, 슬픈 일이 있어도 너무 절망하려고도 하지 않고, 중도를 지키려 노력해요. 예전에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걸 못한다는 데 대한 상실감이 컸는데, 이젠 마인드 컨트롤할 수 있게 됐어요. ‘잠을 못 자면, 그냥 못 잤구나’ 넘겨요.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잠이 오지 않는구나. 다른 걸 해볼까? 노래를 들어볼까, 책을 읽을까’ 생각해요. 그랬더니 밤과 친해졌어요. 그리고 오로라, 정말 좋아하는 단어예요. 언젠가 꼭 실제로 보고 싶어요.
단막극 <민트 컨디션>을 통해 첫 연기 도전을 했죠?
톡톡 튀는 간호사 역할인데, 따듯해서 좋은 이야기예요. 엄청난 한파 속에서 입이 얼어가며 열심히, 재미있게 촬영했어요. 앞으로도 연기는 계속하고 싶어요. 다른 모습이 된 저를 보여주는 것 자체가 재미있더라고요.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뭐든지 시켜만 주신다면 열심히 해보고 싶어요! 판타지 요소가 있는 장르물은 꼭 해보고 싶네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어린 커스틴 던스트가 맡은 배역을 하면 딱이겠어요. 장르물과 어울리는 마스크예요.
정말요? 잘할 것 같아요? 장르물, 너무 하고 싶어요.
최근 메모 앱에 쓴 글귀 하나 들려줄 수 있어요?
상상하다가 써내려간 글인데요. ‘사실 난 행복한 가정이 갖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아마도 내 자존감 낮은 성격이 모든 걸 초래했겠죠? 그건 부정할 수 없어. 그래도 모든 게 내 잘못이라기엔 세상이 너무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꾸 눈물이 흐르네요. 도로를 달리면 저 반짝이는 것들에 내 몸을 던져주고 싶어. 그들과 한 몸으로 돌아갈 수 있게.’
놀랐어요. 아름답네요. 연극 독백 같아요.
하하. 또 다른 제가 써내려가는 창작의 소재들이죠. 이렇게 끄적여놨다가 가사 쓸 때 빼오곤 해요. 그렇게 노래가 되죠.
글 쓸 때 영감은 어디서 받아요?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다니면서 풍경을 많이 봐요. 라디오도 많이 듣고요.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들,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야기가 떠오르곤 해요.
예리가 쓰는 가사는 대체로 온기가 느껴지더라고요.
사람을 좋아해요. 한 번 정 붙이면 확 마음을 여는 타입이긴 한데…. 전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마음이 다 열린 듯 편하게 대하거든요. 사실 아직은 온전히 믿지 못하는 상태면서. 편안해 보이지만 실은 좀 복잡한 애들 있잖아요? 제가 그런 성가신 타입이에요. 하하하. 외향적으로 보이지만 극강의 INFP거든요.
어떤 건지 알겠어요. 이렇게 생글생글 웃는 사람이 무표정하게 있으면 괜한 오해를 받기도 하잖아요.
데뷔 초엔 그런 걸로 진짜 많이 상처받았어요. 그런데 이제 괜찮아요. ‘이게 난데 뭐 어떡하지?’ 이렇게 생각하게 됐거든요. 제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웃지 않는 모습도 제 다양한 모습 중 하나임을 알아주시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더 많은 제 모습을 보게 되실 거예요!
어릴 때 예리는 어떤 아이였어요?
여기 흉터 보이세요? 동생이 뜯어놓은 건데, 반응 한번 하지 않은 언니였죠. 학교에서 손을 들지도 못하는 애였어요. 얼마나 심했냐면, 이에 고춧가루 끼는 게 싫어서 급식에서 빨간 음식이 나오면 안 먹었어요. 장래 희망을 가수라고 써내는 게 쑥스러워서 안 썼던 기억이 나요.
소극적이던 아이가 어떻게 연습생을 시작했어요?
노래하고 싶다는 열망이 커서 자발적으로 시작했죠. ‘내가 감히 이렇게 해도 될까?’ 지레 겁먹던 성격이었는데, 활동하면서 바뀌어가다가, 이렇게 많이 바뀌었네요.
그 작고 단단하던 씨앗이 이렇게 훌쩍.
어릴 때 사회에 나온 건 장점도 단점도 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제가 꿈을 위해 선택한 어떤 일도 후회하지 않아요.
예리는 자신이 누군지 잘 아는 것 같아요.
그렇죠? 그런 것 같아요. 과거를 돌아봤을 때 제가 힘들 때는 늘 제 자신을 잘 모를 때였어요. 그래서 전 늘 제게 귀 기울이려 해요. 제 자신을 알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배려가 있어야 일을 하면서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리는 뭘 믿나요?
전 절 믿어요. 제가 앞으로 뭘 할지, 제 이야길 어떻게 풀어갈지 기대돼요. 저뿐 아니라 제 주변 분들도 믿어요. 항상 주변 분들에게 도움받고 있고, 소중함을 느끼거든요.
스스로를 사랑하나요?
네. 저는 지금 제 모습이 좋아요. ‘스물에게’를 썼을 때쯤, 저 자신을 알 수 없는 친구라 여겼거든요. 그런데 그 곡을 쓰며 조금 알게 됐죠. 항상 스스로를 제대로 바라보고 싶어요.
스스로 화보 디렉팅을 해본다면 어떻게 찍어볼래요?
코로나 시대니까 나만의 스타일로 꾸민 방 안에서 찍어보고 싶네요. 정말 해보고 싶어요! 언젠가 꼭 불러주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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