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웅은 누구인가. 창간 15주년 특집 기사 기획안을 받고 고민했다. 기획은 에디터들이 지대한 영향을 받은 인물을 인터뷰하는 것이다. 취향도 말투도 걸음걸이조차 서로 다른 에디터들은 스스럼없이 자신만의 영웅을 꼽았고, 각 영웅의 면면에서는 그 에디터의 화보와 문체가 어렴풋이 느껴졌다. 이번 기획은 현재 <아레나> 콘텐츠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추적하는 계기가 될 것이기에. 기사 진행이 쉽지 않았다. 에디터들은 자신들의 영웅을 영접하고자 메일과 왓츠앱, 전화와 줌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영웅들과 접선했다. 영웅들은 단번에 인터뷰를 승낙하진 않았다. 바쁜 일정으로 인터뷰가 불가능하거나, 연락이 닿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가까스로 인터뷰에 응해 뒤늦게 답변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뒤에 이어지는 인터뷰이들의 이름을 보면 섭외에 난항을 겪은 이유가 이해될 것이다. 평소 우리가 갈망했지만 만나지 못한 인물들이다. 옷으로 낭만을 이야기하는 디자이너, 무뚝뚝한 에디터의 감정을 뒤흔든 사진가, 독일 현대 미술을 이끄는 작가, 방황하는 청춘을 그려내는 영화감독, 남극점과 북극점을 모두 정복한 최초의 인간 등 그들에겐 아직 묻고 싶은 말이 많이 남아 있다. 기사는 9명의 실존 인물과 6명의 가상 인물 인터뷰로 구성된다. PARTⅠ에는 실존 인물들과의 감도 높은 대화와 사진이 담겼다. PARTⅡ는 만날 수는 없지만 에디터들이 큰 영향을 받은, 롤모델로 삼기도 한 인물들과의 가상 인터뷰다. 자신이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 자아 형성의 토대를 찾아 방황하는 이들에게 <아레나> 창간 15주년 특집 인터뷰가 나침반이 되길 기대한다.
작가 팀 아이텔의 작품을 처음 마주한 건 2017년 무렵이다. 그날 찍은 사진이 기억에 생생하다. 개인적으로 혹독한 시간을 보낼 때였다. ‘학고재’에 전시된 작가의 그림 앞에서 한참을 울고 싶은 기분을 참았다. 그 후로 작가의 전시나 작품을 찾아보고 어딘가를 바라보고 기대어 있는 그림 속 인물들에게 감정 이입을 하곤 했다. 특히 애정하는 작품은 침대에 기대어 있는 인물을 표현한 ‘Asleep’(2013)이다. 당시 나의 상태와 닮아 있었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움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사색에 잠긴 작품 속 인물에 나의 모습을 투영했다. 팀 아이텔은 독일 뉴 라이프치히 학파의 대표 작가다. 화면 구성, 색감, 인물 등 추상적이지만 세밀하며 고독하지만 오래 들여다보게 되는 그의 작품을 설명할 때 ‘현대인의 초상’이라는 표현이 늘 따른다. 간결하게 느껴지는 그의 작업은 스치는 일상을 사진으로 담은 뒤 캔버스에 쏟아낸 다음 덜어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고 한다. 이 과정이 관객의 몫으로 남은 해석의 깊이를 더한다고 느껴졌다. 올 초 ‘페이스 갤러리’에서 작가의 신작을 다시 마주했다. 그의 시간이 흘렀듯 나의 시간도 흘러 그때처럼 무거운 마음으로 서 있지 않을 수 있었다. 선과 선 사이의 공간, 흐릿한 인물들, 한 단어로 풀어내는 제목 앞에서 가장 또렷하게 떠오른 단어는 ‘지나왔다’였다. 감상에 정석이나 정답이란 건 없지만 그의 작품으로 큰 위로를 얻었다고 고마웠다고 그 시간들을 지나 당신을 인터뷰하게 되었다고 파리에 있는 작가에게 편지를 쓰듯 인터뷰를 준비했다.
작년 대구미술관 전시에 이어, 올해도 ‘학고재’와 ‘페이스 갤러리’에서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작가에게 한국은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가?
2011년 처음으로 한국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인천에 비행기가 도착했을 때 안개가 자욱했다. 창밖 풍경 위로 밝은 회색 안개가 은빛 층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 장면은 나의 몇몇 그림 속 분위기를 떠오르게 했고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첫 기억이다. 서울에서는 세세한 부분까지 관심을 기울이고 유럽보다 일상에 더 많은 생각이나 의식이 깃들어 있다고 느꼈다.
2020년은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멈춘, 혹은 사라진 듯한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신작을 선보였고 너무 반가운 소식이었다.
나의 일상은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스튜디오에 가서 그림을 그리고, 청소를 하고, 장을 보고, 책을 읽고, 가끔 영화를 보는 정도. 파리의 첫 록다운 기간에는 스튜디오에 가지 않고 수채화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중 두 그림이 이번 겨울 페이스 갤러리 서울에 전시되었다.
요즘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주변의 불안감이 커지고 사회생활이 줄어들면서 기분이나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할까. 여행을 못하고 있는데 가장 그리운 것 중 하나이고. 한편으론 인류가 지금처럼 잘 맞았던 때가 있었나 싶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 모두가 같은 생각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말이다.
동시대를 사는 작가로서 스스로 ‘고독하다’ 또는 ‘피로하다’는 감정을 많이 느끼는 편인가? 본인이 공감하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작품에 이토록 사실적으로 투영될 수는 없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샤를 보들레르의 <The Painter Of Modern Life and Other Essays>는 자주 꺼내 보는 책이다. 미학 이론 중 ‘동시대성’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읽는다. 예술가는 항상 자신의 시대를 이야기하고 무엇이 그 시대의 중심에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다른 환경과 지식 그리고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렇기에 나의 그림 속 인물들을 고독하거나 피로하다고 보기도 하고 결연하다고 여기기도 하는 등 저마다 다른 반응을 하는 것이다. ‘혼자 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작업에 몰입하기 위해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 저녁에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한 외롭다고 느끼지 않는다. 내가 나의 그림 속 인물들을 바라보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인물들 그 자체에 집중하고 그들 자신에 근거하고 있다고 본다. 그림을 받아들이는 방법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내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대로,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나의 경우에는 작가의 그림을 보며 위로도 얻고 슬럼프를 지나오기도 했는데, 작가가 고독을 느끼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자신만의 해결 방법이 있는가?
나 또한 우울할 땐 미술관에 가는 걸 좋아한다. 때로는 도움이 되지만 때로는 기분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내가 찾은 가장 훌륭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은 달리는 것. 외로움에는 통화가 약이다.
그림이 간결하다. 지우는 것으로 그림을 마무리한다고 들었다. 덜어내는 것이 더 어렵지 않나?
나에게 그림은 불필요한 것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때 완성된다. 내가 많이 지우는, 아니면 오히려 과하게 그리는 이유다.
이 과정이 그림에 생각과 감정을 더한다고 판단된다. 아련한 감정 같은 것 말이다.
작업의 초기 단계에는 모든 생각을 캔버스에 쏟아내고, 그것들을 이해하고, 불필요한 요소를 정리한다. 본질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많은 부분을 덜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림을 그리기 전 사진을 많이 찍고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작업을 시작한다고.
내가 포착하는 순간은 매우 일상적이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 움직여 카메라를 꺼내게 된다. 내가 찍은 사진에서 마법 같은 건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 지점에서부터 그림이 시작되는 것 같다. 이 찰나의 감정을 그림으로 재구성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림은 사진 속 순간의 사본이 아니라 그 자신만의 순간이 되기에 재구성에 성공한 적이 없다. 사진을 그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미지의 요소를 활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드는 편이다.
가장 최근에 작가가 사진으로 담은 순간 중 기억에 남는 풍경은 무엇인가?
지금 작업하고 있는 그림인데, 얼마 전 파리에서 본 노숙자가 다른 이의 머리를 잘라주고 있는 모습이다. 거리의 고난 속에서 발견한 예상하지 못한 다정함이었다.
작가의 그림에는 늘 인물이, 그리고 그들의 뒷모습이 등장하는데, 작품을 오래 지켜볼수록 사람을 고독하게만 바라보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애정’을 느끼고 담는 것 같다.
내가 그리는 그림 속 인물들에게 애정을 느끼고 공감하는 것은 나에게 필수적인 과정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을 그리는 이유가 없겠지. 그림 속 인물들과 내가 연결되지 않고 동화할 수 없다면, 어떻게 관객이 공감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할 수 있을까.
자연 속에 있는 사람들을 표현한 그림에서는 먹먹함이 배로 다가온다. 거대한 자연과 그 속의 인물이 대비되면서 말이다.
나의 그림 속 자연이 거대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 19세기 낭만적인 풍경화와의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그림 속 사람들은 마치 방문객 같은 존재다. 그들은 숭고하고 초월적인 풍경이 아닌 인공적이고 사람이 만든 풍경과 대조를 이룬다. 인물들은 자연 속 타인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전시회에서 작가의 그림을 보며 나의 모습을 투영하곤 했다.
나의 그림이 되도록 정밀하고 동시에 열려 있어서 사람들이 그림과 연결되어 자신만의 개인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초상화를 정면으로 그리지 않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그림 속 인물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작품을 볼 때 ‘이런 부분을 참고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은 부분이 있을까?
숨은 의도 같은 것은 없다. 그림은 작업실을 떠나면 스스로 온전해야 한다. 마치 집을 나서는 아이 같다. 그들이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모든 것은 그 안에 있다. 그들에게 자신을 돌봐줄 아빠가 필요하지 않다. 아마 나의 그림들은 내가 그림에 대해 하는 얘기를 들으면 창피해하며 그만 말하라고 할 것이다.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아날로그적인 작가로서 최근에 한 디지털적인 경험이 궁금하다.
스마트폰은 없지만 나도 디지털 라이프를 즐긴다. 정보와 엔터테인먼트의 원천으로 인터넷을 사용하니까. 스튜디오에서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기 위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개인 정보와 시간을 잡아먹는 소셜 미디어 또한 이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젊은 예술가들이 혼자서 해야 하는 모든 일들을 함께해주는 훌륭한 갤러리들과 협력하는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음을 안다. 그렇기에 디지털에 반대하는 입장은 전혀 아니다. 요즘 음악을 만들고 있는데 컴퓨터는 가장 중요한 도구이다. 음악 작업은 더 이상 엄청나게 비싼 장비가 필요하지 않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매우 민주적인 일이 되었다.
오랜 시간 작업해오며 개인적인 부분일 수도 있고 작업 환경일 수도 있고, 많이 달라졌다고 느끼는 것이 있다면?
라이프치히에서 베를린, 로스앤젤레스, 뉴욕, 베를린, 다시 뉴욕 그리고 파리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이사를 했다. 이사는 삶에 큰 변화를 주었고, 마주하는 일마다 새로운 영감을 얻기에 작품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5년 전부터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전에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선입견과 관점에 부딪히게 되고, 모든 것을 말로 표현해야 하는 엄청난 경험이다. 가장 간단한 문제에 대해 말하는 것이 특히 어려운 일임을 깨닫고 있다. 설명해야 하는 순간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어려워지더라.
작년 대구미술관 전시는 작가의 가장 큰 기획전이었음에도 코로나19로 인해 영상 통화로 모든 준비를 했다고.
대구에 갈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영상 통화로나마 전시회를 준비할 수 있어 행복했다. 현장에서 모든 걸 직접 함께하고 싶었기에 기쁘면서도 동시에 슬픈 경험이었다. 영상 통화로 인터뷰를 진행했을 때, 대구미술관 팀이 파리에서 말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담았다. 이 스마트폰은 삼각대 위에 놓여 미술관에 설치되었고 이 모습을 촬영하여 전시회의 소개 영상으로 사용되었다. 이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올해 바라는 점이 있다면?
팬데믹에서 우리 모두가 하루 빨리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이후에는 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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