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밤이다. 뭐 하고 오는 길인가?
평소처럼 운동하다 왔다. 별일 없는 게 좋은 것 같다.
손목에 심플한 부호 모양의 타투가 있다. 이쪽에서 보면 웃는 얼굴인데, 저쪽에서 보면 우는 얼굴.
메모장에 타이핑을 하다가 어, 이거 좋은데 싶어서 타투로 했다. 보는 시점에 따라, 마음먹기에 따라 같은 것도 달라 보이잖아. 매일 행복하려고 노력하고 애쓰는 것도 힘든 일이다. 그냥 내버려두는 게 나을 때도 있지.
이번에 내는 첫 솔로 앨범명이 이중성, <Duality>다.
인간은 누구든 양면성이 있다. 난 대중이 보는 나와 진짜 나, 그 사이에서 꼭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초반엔 거리감을 느끼고 고민도 많이 했는데, 이젠 개의치 않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헷갈릴 때는 다 인정해버리면 된다고 생각하거든. 나 스스로 귀엽지 않다고 여겨도 팬분들이 내게서 귀여운 모습을 봐주신다면, 그것도 내 모습이다. 혹은 한순간 못생긴 얼굴이 나왔다 해도 그 역시 나니까. 그 모든 게 나라는 걸 인정하는 거다.
이중성이라는 제목의 첫 솔로 앨범엔 어떤 곡들이 담겼나?
모순과 양면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타이틀 곡 ‘God Damn’은 좋지 않은 상태일 때, 스스로 주문을 걸어 괜찮아지도록 만들자, 생각하면서 떠올린 곡이다.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좋은 척하다가, 정말 괜찮아질 때도 있거든. 4번 트랙 ‘Happy to Die’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영감을 받았다. 얼어붙은 호수에 짐 캐리가 케이트 윈슬렛과 누워 “I could die right now”라고, 행복해서 당장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런 모순에 매력을 느낀다.
‘Horizon’을 비롯한 아이엠의 솔로 믹스테이프들을 듣고 왔는데 의외였다. 몬스타엑스의 에너제틱한 색과는 다르게 서정적이면서 그루비한 곡이 많더라.
몬스타엑스 곡은 대중을 사로잡는 강렬한 사운드라면 내 컬러는 차분하고 그루비한 느낌이다. 평소에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고 성격도 조용하다. 솔로 곡에선 나다운, 내 성격과 닮은 노래를 하게 된다. 가사도 직접적이지 않고 은유적이고, ‘너’라는 표현보다는 ‘그대’라는 표현을 쓴다.
아이엠(I.M.)이란 활동명은 어떻게 지었나?
‘나다운 게 최고지’ 하면서 지었다. 내가 ‘임’ 씨기도 하고.
아이엠다운 건 어떤 건가?
귀여운 것, 섹시한 것, 멋진 것, 안 멋진 것, 우스운 것, ‘실리(Silly)’한 것. 내가 하는 건 다 나다운 거라고 생각한다.
한계를 두지 않는 게 아이엠다운 거네?
좋은 말인데?
아티스트로서 자의식이 뚜렷해 보인다.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잘하는 게 뭔지, 하고 싶은 게 뭔지 안다. 동시에 얽매이지 않고, 끌리는 대로 살자. 늘 그렇게 생각한다. 나 자신을 잘 알면서도 모를 때도 있거든. 팬분들도 가끔 그런다. “난 쟤를 5년간 팠는데 쟤가 어떤 애인지 아직 모르겠어”라고. 나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자아가 혼란스럽거나 한 건 아니고, 그냥 모르겠다. 계속 궁금하니까, 그때그때 느낀 감정을 곡으로 만들려 한다.
아이엠에게 가장 편안한 공간은 어딘가?
작업실. 온전한 내 공간이다. 뭘 해야 할지 모를 땐 무작정 작업실로 간다. 작업할 땐 곡 무드에 따라 조명을 보라색이나 에메랄드빛으로 바꾸기도 한다. 그렇다고 일만 하진 않는다. 요새는 옛날 질감을 느끼고 싶어서 고전 영화들을 많이 본다. 재즈 좋아해서 쳇 베이커, 빌 에번스, 노라 존스, 케니 지 음악들 듣고. 자극적이지 않은 것들이 좋다. 재즈와 옛날 영화. 마음이 편해지는 것들.
직접 조향할 정도로 향수에도 취미가 깊다던데.
향기를 맡으면 예전의 기억이 되살아나잖아. 지나가던 어떤 사람에게서 냄새를 맡았는데, ‘아, 이거 첫사랑이 뿌렸던 향수 같은데’라는 느낌이 든다거나. 순간의 향기일 뿐인데 나를 그때의 기억으로 되돌려놓지. 그런 게 매혹적이다.
요즘 뿌리는 향수는?
프레데릭 말의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 약간은 스모키하고, 어두운 장미 향이다. 유니섹스한 향수를 좋아한다. 전에 머스크 향을 주조로 향수를 만든 적이 있다. 머스크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단 향이거든. 거기에 스틸이나 이끼 같은 묵직한 걸 섞으면 냄새가 섹시해지더라.
유니섹스, 이것도 아이엠의 양면성이네.
그렇다. 겨울에는 유니섹스한 향이 끌리더라.
3월에 어울리는 향기도 추천해줄 수 있나?
톰포드 오드우드. 풀 내음과 우디한 향이 초봄과 어울린다. 시트러스한 향을 선호하면 살바도르 달리 향수들도 좋다.
아이엠은 하루로 치자면 어떤 시간대의 사람인가?
밤 9시부터 새벽 2시, 아니 새벽 5시까지의 시간. 일 마치고 소파에 앉아 칠한 노래를 틀어놓는 그런. 밤은 내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내 음악은 아침 음악은 아니지.
몬스타엑스 무대 속 아이엠은 힘찬 느낌인데, 지금 만난 아이엠은 느긋하고, 자신만의 페이스를 가진 느낌이다.
형들과 있으면 같이 업되는데, 혼자 있으면 항상 이런 바이브다. 말도 느리게 해서 듣는 사람들이 답답해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게으르진 않고. 기본적 톤앤매너가 이렇다.
어릴 적 이스라엘에서 살았던 기억, 떠오르는 거 있나?
이스라엘 집 앞에 올리브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고양이가 한 마리 들어와 같이 살았다.
이후엔 보스턴에서 살았다. 해외에서 살았던 기억이 지금 아이엠에게 어떤 양향을 끼쳤나?
어릴 때부터 나와 다른 문화권의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다 보니 어떤 것에도 크게 개의치 않는 성격이 된 것 같다. 미국에서 살 때는 동양인이 학교에 세 명 정도밖에 없었거든. 한국 들어오기 전엔 아버지가 지구 한 바퀴를 돌 정도로 여행을 많이 시켜줬다. 그때 풍경들이 내 안에 남아 음악을 만들 때면 그 컬러를 꺼내 쓰기도 한다.
어릴 적 들은 노래 중 기억에 남는 트랙이 있나??
아침이면 아버지께서 틀어놓은 재즈, 올드 팝, 클래식 음악에 깨곤 했다. 그때 들었던 노래가 앞서 말한 재즈들. 올드 팝 중엔 셀린 디옹의 ‘Power of Love’가 떠오른다. 지금 내 성격과 취향을 형성하는 데 많은 자양분이 됐다.
그룹에서 막내지만 해외에서 활동할 때는 유창한 영어로 리더 역할을 맡는다. <포브스> <시카고 트리뷴> 같은 유력 매체에서 한 인터뷰들도 화제가 됐다. 영미권 인터뷰어와의 인터뷰는 어떤가?
웃으면서 묻지만 짓궂거나 날카로운 질문도 있다. 농담인 줄 알고 바보같이 웃고만 있으면 안 되는 질문들. 초반엔 미국 프레스 분위기를 알아가려고 조심스럽게 응대했는데, 나중엔 노하우가 생겼다. 받아치기도 하고, 답하기 어려운 것들은 “당신 같으면 어떨 것 같냐”고 역질문하기도 한다.
기억에 남는, 잘 받아친 문답이 있나?
“너희 클럽 가는 거 좋아하니?”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맞아, 클럽 좋아해. 우리 팬클럽을 정말 좋아하지.”
국제적으로 승승장구하던 시기에 하필 코로나가 터졌다.
불행 중에도 미덕이 있다. 우리가 진짜 바쁜 그룹이었거든. 월드 투어도 많이 하고, 스케줄이 어마어마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스스로를 돌아보고 작업할 시간도 생겼다. 그래도 팬들이 보고 싶네. 팬들이 있어야 진짜 무대를 하는 기분이 드는데. 많이 보고 싶다.
아이엠은 어떤 걸 멋지다고 생각하나?
융합할 줄 알되, 자기만의 색을 간직하는 것. 그룹과 어우러지면서 나만의 색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사람마다 자신만의 톤앤매너가 있다. 그런 색을 지닌 자기 자신일 때, 제일 멋있다고 생각한다.
엘헤이, 스티브 아오키, 윌아이엠 등 많은 해외 아티스트와 협업했다. 요즘 협업해보고 싶은 뮤지션 있나?
영국의 옥타비안이라는 친구. 칠한 랩 톤이 멋지다. 보컬로 함께했으면 하는 건 기베온 에반스. 보컬에 깊이가 있다.
역시 재지한 사운드를 좋아하네.
힙합도 좋아하지만, 재즈 기반의 곡들을 좋한다. 솔직히 말하면 요새는 재즈밖에 안 듣는다. 내 인생 리듬이 좀 그렇다. 재즈에 자주 나오는 올드 하이엣들의 리듬감이 좋다. 색소폰이나 트럼펫 같은 관악기도 좋아하고.
아이엠은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나?
그 고민 많이 해봤거든. 그런데 ‘나는 이런 아티스트가 될 거야’라는 생각은 오히려 날 틀에 매어놓는 것 같아서 그때그때 내고 싶은 거 내고, 좋아하는 거 좋아하고, 그때 느꼈던 걸 노래로 만들고, 자신에게 솔직하고 싶다. “세계에서 ‘일짱’ 되는 래퍼가 될 거야” 이러고 싶진 않거든.
승부욕이나 성취욕이 강한 편은 아닌가?
축구 게임할 때만 그런다. 하하. 예술에 있어서는 내가 나를 옥죄는 느낌을 받고 싶지 않다. 다음 단계를 생각하는 건 괜찮지만, 내 최고의 마지막 지점은 여기야, 저기까지 가야 돼 하고 생각하는 건 멋도 없고 의미도 없다.
현답이다. 예술은 스포츠도, 경쟁도 아니니까. 그렇다면 아이엠은 어떤 걸 믿나?
생각을 하게 만든 질문이다. 나는 뭘 믿을까. 그때의 온도를 믿는 것 같다. 그 순간의 무드, 별말 없이 시선만으로도 느껴지는 직관적인 감각들.
아이엠은 스스로를 사랑하나?
사랑할 때도, 사랑하지 않을 때도 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혐오적인 면이 있다. 누구나 이중성을 지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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