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하우스가 화제다. 초대권으로 입장 가능하고, 아이폰에서만 쓸 수 있다는 특징이 있지만 사용자가 처음 경험하는 건 역할에 따른 호칭이다. 클럽하우스에서 사용자는 리스너, 스피커, 모더레이터로 나뉜다. 말 그대로 리스너와 스피커는 얘기를 듣거나 할 수 있다. 이들에게 말을 하거나 들을 권한을 부여하는 건 모더레이터다. 클럽하우스의 방을 만드는 사람이 곧 모더레이터가 된다.
그런데 모더레이터의 권한은 소수에게 집중되지 않는다. 선택의 문제지만, 최초의 모더레이터는 다른 스피커에게 모더레이터의 권한을 나눠줄 수 있다. 또 다른 모더레이터를 늘릴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그 방에 있는 스피커 전원을 모더레이터로 만들 수 있다. 리스너-스피커의 위치 변화도 자율적이지만, 모더레이터의 권한에 대한 규정은 여느 소셜 미디어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다. 애초에 리스너-스피커-모더레이터의 관계가 고정되지 않았다는 게 사실상 클럽하우스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쯤에서 클럽하우스가 시작된 계기와 당시의 사회적 환경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클럽하우스를 만드는 알파 익스플로레이션의 공동창업자 폴 데이비슨(Paul Davison)과 로한 세스(Rohan Seth)는 2011년에 처음 만났다. 그때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큰 인기를 얻고 있을 때였다. 둘 다 실리콘밸리의 개발자로 일하면서 이런 기술 변화와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에 관심이 없을 리 없었다. 두 사람은 소셜 미디어로 교류하면서 수년간 서로의 관심사를 깊이 공유하고 발전시켰다.
그러다가 2019년, 로한의 딸 리디아(Lydia)가 희귀병을 안고 태어났다. 그때 두 사람은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뉴미디어가 등장해도 수십 년 동안 전문 지식에 접근하기 어려운 문제점은 해결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두 사람은 ‘전 세계의 전문가들과 특정 주제로 연결되는 소셜 서비스’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이게 바로 클럽하우스의 원형이다.
그런데 2019년 미국은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가짜 뉴스와 소셜 미디어의 악영향이 전면에 드러난 때였다. 하지만 이건 단지 행정부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본질적으로 인터넷 미디어 환경, 광고 기반의 소셜 미디어 비즈니스 모델 등이 얼기설기 엮인 문제였다. 중요한 건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미디어와 사회적 건강성에 대한 고민이 깊은 시기였다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클럽하우스의 사용자가 점점 ‘모더레이터’로 성장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모더레이터의 영향력은 신뢰에서 나온다. 말을 많이 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하기보다는 잘 듣고 배려하고 모두의 이익에 우선하는 결정을 내리는 역할이 강조된다. 따라서 모더레이터는 클럽하우스의 가장 차별화된 특징이자 서비스의 가치를 좌우하는 자산이기도 하다.
유튜브의 핵심 자산은 ‘크리에이터’다. 덕분에 유튜브는 창작자의 툴이 된다. 인스타그램의 자산은 ‘인플루언서’다. 다수의 사람들에게 높은 영향력을 행사하며 광고 그 자체가 된다. 그런데 클럽하우스에서는 ‘모더레이터’다. 이들은 주제를 제안하고 대화를 이끈다.
이 셋의 차이는 메시지가 흐르는 방향에 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의 크리에이터와 인플루언서는 구독자에게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던진다. 그런데 클럽하우스의 모더레이터는 메시지의 흐름을 중재하면서 스피커와 리스너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맡는다. 실시간, 녹음 불가 같은 상황이 만드는 미묘한 차이다.
그런데 이런 클럽하우스의 구조는 탈중앙화(Decentralized)의 관점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탈중앙화는 블록체인의 철학인데, 이 논의가 현실성을 띤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였다. 이전까지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은행을 믿었는데 알고 보니 은행도 기업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 금융위기 이후의 교훈이었다.
하나로 집중된 신뢰 구조가 분산되어야 하는 필요성이 곧 탈중앙화라는 개념이다. 신뢰를 분산시키고, 누구도 임의로 그 구조를 변경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블록체인 시스템이다. 이 이론의 핵심은 신뢰라는 형이상학적이고 무형적인 가치를 어떻게 시스템적으로 구현할 것인가라는 데 있다.
다시 클럽하우스로 돌아오면, 여기서 신뢰란 리스너, 스피커, 모더레이터의 순환 구조에 기반한다. 세 개의 정체성을 왔다갔다하는 사용자들은 이런 구조적인 과정과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클럽하우스라는 거대한 커뮤니티의 성장을 돕는 ‘커뮤니티 리더’로 성장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신뢰는 사이버머니처럼 적립되고 사용자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요소가 된다.
모더레이터의 권한을 나눠줄 수 있다는 특징도 그중 하나다. 클럽하우스에서는 누구도 고정된 정체성을 갖지 않는데, 10만 명이 팔로우하는 사람이 어떤 곳에서는 리스너가 될 수도 있고, 다른 곳에서는 스피커가 될 수도 있다. 누구나 평등하게, 동시에 신뢰받을 만한 활동을 한 사람에게 팔로워를 몰아주는 시스템은 이 커뮤니티가 두터운 관계를 중심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어떤 방에 갑자기 연예인이 들어오고,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거기에 쏠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모더레이터가 그에게 발언권을 주면서 그쪽으로 관심이 몰리게 했기 때문이지, 시스템이 자동적으로 그를 주목하게 한 탓은 아니다. 모더레이터의 결정에 따라 방의 분위기가 바뀐다.
탈중앙화라는 관점에서 클럽하우스를 본다면, 이 서비스의 철학적 토대가 분산, 신뢰, 공동체의 유기적인 결합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누구나 커뮤니티의 리더가 되어 각자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지만 그 권한이 매우 유동적이고, 또한 권한이 분산될수록 더 강한 리더십을 얻게 되는 공동체가 바로 클럽하우스의 기본 구조다. 매우 신선한 이 시스템은 집단지성의 상징인 위키피디아와도 유사하다.
그래서 클럽하우스에서 리스너, 스피커, 모더레이터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사용자는 결과적으로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 한마디로 ‘좋은 시민’을 양성하는 역할도 수행하는 것 같다. 한 사회는 결국 구성원들의 토론과 상호 교류를 통해 천천히 발전해간다. 이 과정을 무시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인간에 대한 관심, 애정, 배려, 통찰을 갖춘 시민성(Citizenship)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다. 뭔가 부족하고 모자란 면도 있지만, 그럼에도 클럽하우스를 기존의 소셜 미디어와 전혀 다른 성질의 서비스로 보게 되는 건 이런 이유다. 내가 너무 유난을 떠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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