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Physital Experience
일상이 거의 비대면 방식으로 바뀐 현재, 변화에 빠르게 대응한 패션 브랜드들은 진보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피지털(Physital)은 오프라인 공간에 온라인의 편리함을 더한 방식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이번 시즌 루이 비통의 여성 컬렉션은 이 방식을 꽤나 신선하게 다뤘다. 쇼는 파리의 사마리텐 백화점 꼭대기 층에서 진행됐는데, 벽 전체를 영화 촬영 현장에서 사용하는 녹색 스크린으로 채웠다. 온라인에서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쇼를 감상하는 관객에게는 녹색 스크린이 아닌 빔 벤더스 감독의 <베를린 천사의 시>의 장면들이 교차하는 특별한 세트장이 나타났다. 또한 쇼에 참석한 게스트들도 카메라로 특수효과가 적용된 쇼를 감상할 수 있었다. 크리스찬 루부탱은 디지털 이벤트로 새 컬렉션을 소개했다. 증강현실 아바타 서비스인 제페토에 파리 생토노레 플래그십 스토어의 가상 버전인 루비 부티크를 비롯한 3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진 루비월드로 각국의 언론과 셀러브리티를 초대했다. 이벤트에 참석한 아바타들은 디지털화된 60개 이상의 슈즈와 액세서리를 체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각국의 뮤지션들이 공연하는 론칭 파티도 즐길 수 있었다. 발렌티노는 디지털 아트와 비디오 게임의 중간 플랫폼인 ‘발렌티노 인사이츠’로 브랜드 경험에 언택트 소비의 편의성을 도입했다. 발렌티노 웹사이트로 입장할 수 있는 이 가상 건축물은 발렌티노의 캠페인 촬영 장소이기도 한 가상의 지중해 해안가 소나무 숲에 위치했다. 사용자는 공간에 있는 퍼즐 같은 단서와 비밀 공간을 탐색하면서 브랜드 뉴스와 콘텐츠를 경험하고, 피에르파올로 파촐리가 직접 고른 1900년대 디자인 가구도 감상할 수 있다. 여기에 상호 작용이 가능한 콘텐츠를 통해 제품 구매로도 연결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언제 올지는 당장 예측할 수 없지만, 가까운 미래의 패션과 소비의 판도는 가늠해봄 직하다.
2 Neat Shirts
이번 시즌은 셔츠의 변화가 두드러졌다. 미니멀리즘으로 돌아간 프라다를 필두로 유수의 브랜드에서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셔츠를 선보인 것. 질 샌더와 르메르는 늘 그랬듯 우아한 실루엣의 셔츠를 보여줬고, 테일러링에 기반을 둔 디올 맨과 살바토레 페라가모도 가세했다. 작년 F/W 시즌 셔츠를 커팅하고 프릴 장식을 다는 등 셔츠의 다양성을 보인 루이 비통은 어땠을까? 이번 시즌에는 비대칭 선글라스와 캐릭터 인형, 원색의 수트 등 화려함을 강조했지만 셔츠 디테일만큼은 얌전했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옷 자체의 클래식함과 아름다움에 더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어수선한 세상 속 시대의 흐름을 읽는 담백한 디자인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3 1980’s Suit
널따란 어깨선, 여유로운 실루엣의 1980년대 풍 수트는 재택근무, 화상을 통한 언택트 방식의 업무에 최적화되었다. 더블브레스트 여밈의 와이드 재킷은 어느 하나 몸을 조이 는 것 없이 느슨하게. 살가운 리넨 소재나, 보드라운 실크, 얇고 가벼운 울 소재 등 물 흐르듯 팔랑이는 소재감, 그리고 차분한 색채들은 여유로운 실루엣의 평온한 무드를 한껏 극대화한다. 돌체앤가바나, 지방시와 같이 가느다란 실루엣의 팬츠를 매치해 재킷의 헐렁한 실루엣을 강조할 수도 있지만, 에르메네질도 제냐, 르메르, 자크뮈스 등에서 볼 수 있듯 신발을 온전히 뒤덮을 만큼 통이 아주 넓은 팬츠와 맞춘 크고 너른 실루엣이야말로 지금 가장 이상적인 봄의 수트.
4 Acid Pop or Soft, and Floral
이번 시즌은 유독 화사하고 생동하는 컬러와 패턴으로 채워졌다.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파스텔컬러가 가장 도드라진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부드러운 색감은 포근한 스웨터, 헐렁한 실루엣의 코트나 팬츠 등과 어우러져 더 느긋하고 말랑말랑한 무드를 이끌어낸다. 그러다 문득 강렬한 네온 컬러가 시선을 압도하는데, 발색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눈이 시린 컬러들은 상·하의를 통일하거나, 대조적인 컬러를 과감하게 매치하는 방식으로 강렬하게 작용한다. 다채로운 색감 위에 꽃무늬는 색 농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늘 그렇듯 디올 맨, 발렌티노 등의 로멘틱하고 풍요로운 꽃무늬는 물론이거니와, 베르사체, 톰포드, 구찌와 같이 큼직하고 선명한 꽃송이들이 채도 높은 색상들과 어우러져 남성적이고, 강인한 인상을 표출하기도 한다.
5 Cozy Core
패션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 했던가. 파자마, 스웨트 셔츠, 트랙 수트 등 재택 시대에 부합한 룩이 런웨이에서 돋보였다. 스웨트 셔츠 스타일은 담백하거나 방종하게 나뉘었는데 전자는 프라다, 후자는 언더커버가 좋은 예시다. 기민한 두 디자이너 에디 슬리먼과 뎀나 바잘리아의 컬렉션에서도 홈웨어를 마주할 수 있었다. 셀린느의 소년들은 껄렁한 후드 티셔츠와 파자마 팬츠를 입었는데, 현 상황의 옷차림과 일맥상통했다. 발렌시아가는 옷장을 찾아보면 있을 법한 1990년대 무드의 트랙 수트와 편안한 슬리퍼를 내놓았다. 파자마 역시 런웨이에서 심심치 않게 보였다. 특히 코치는 파자마 셋업 위에 점잖은 재킷을 매치해 파자마 스타일링의 다양성을 제시했다.
6 Animation Character Collaboration
하우스 브랜드의 컬래버레이션이 최근 명랑한 기류를 탔다. 구찌는 에필로그 컬렉션에서 디즈니 도널드 덕 패밀리의 모습을 다채로운 아이템에 더한 데 이어, 도라에몽 협업 컬렉션을 내놓으면서 친숙하고 귀여운 컬렉션을 완성했다. 도라에몽 컬렉션은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도라에몽을 기념하는 컬렉션으로 구찌뿐 아니라 도라에몽의 두터운 마니아층을 확실하게 공략할 예정. 구찌의 시그너처 로고 위에 도라에몽 캐릭터가 있는 40여 가지의 로고 플레이 아이템들이 4차원 만능 주머니에서 나온 것처럼 스니커즈와 가방, 티셔츠부터 시계와 수영복까지 다채롭게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로에베는 지브리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와의 캡슐 컬렉션을 공개했다. 생각지 못한 의외의 조합이지만 친절한 숲의 정령 토토로와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공유하고자 하는 로에베의 가치관과 궤를 같이한다. 가죽 재킷, 스웨트 셔츠 등의 아이템과 로에베의 아이코닉한 퍼즐 백과 해먹 백, 벌룬 백에도 토토로와 그의 친구들이 등장해 향수를 자극한다.
7 New Givenchy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스트리트 웨어 출신 디자이너가 하우스 브랜드에 입성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LVMH 그룹은 그 효과를 톡톡히 봤다. 루이 비통은 버질 아블로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후 높은 매출을 기록 중이다. 그래서인지 LVMH 그룹은 공석이 된 지방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에 근래 가장 뜨거운 디자이너 매튜 윌리엄스를 낙점했다. 그는 소싯적 버질과 함께 스트리트 브랜드 빈 트릴를 전개했던 인물. 이번 2021 S/S 컬렉션은 매튜 윌리엄스의 뉴 지방시가 베일을 벗은 데뷔 무대다. 우아하게 재단된 큼직한 재킷 아래 석고같이 빳빳한 가느다란 팬츠와 도발적인 뉴 안티고나 백. 파리 곳곳에 걸려 있는 사랑의 자물쇠에 영감받은 대담한 벨트를 비롯한 액세서리까지. 매튜는 지방시 쿠튀르의 명맥을 잇되 자신만의 스트리트적인 하드웨어를 절묘하게 가미했다. 로타 볼코바의 감각적인 스타일링과 더불어 첫 컬렉션 사진을 신인 사진가 혜지 신에게 맡긴 것도 매튜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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