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축구의 인력 시장은 자유무역주의다. 드래프트, FA 자격 조건, 포스팅 시스템처럼 복잡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에서 콩나물 흥정하듯이 클럽과 선수, 클럽과 클럽 등 이해 당사자끼리 직접 담판을 짓는다. 선수가 잘만 하면 기존 계약과 상관없이 여기저기서 달려든다. 소속 클럽은 연봉 계약을 갱신하며 선수를 붙잡으려고 애쓴다. 독보적 선수 주위에서 이적설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손흥민의 행적을 보면 시장 반응이 얼마나 즉각적인지를 알 수 있다. 18세 손흥민은 함부르크 데뷔전에서 골을 터트렸다. 클럽은 곧장 연봉을 올리고 장기 계약을 맺었다. 세 번째 시즌 첫 두 자릿수 득점에 도달하자 분데스리가 강자 바이어 04 레버쿠젠이 역대 최고액으로 손흥민을 데려갔다. 레버쿠젠에서 손흥민은 UEFA챔피언스리그에서 골을 터트리는 등 주전 공격수로 활약했다. 두 시즌을 뛴 손흥민은 두 배 몸값으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에 입단했다. 토트넘에서 6시즌째 보내는 손흥민은 지금까지 계약을 두 번이나 갱신했고 그때마다 연봉은 100%씩 인상되었다. 손흥민의 실적에 비례해 빅클럽 수요가 증가하므로 토트넘은 선수와 계약을 키워 타 클럽의 도전을 방어해가는 일련의 과정이다.
2020-21시즌 들어 손흥민의 셀링 파워는 토트넘의 방어벽을 또 넘어서고 있다. 시즌 반환점을 돌기도 전에 16골(1월 10일 기준)을 기록 중이다. 해리 케인과 합작 득점 수가 올 시즌만 13골, 통산 33골에 달한다. 단일 시즌 최다 합작 득점 기록(13골)에 어깨를 나란히 했고, 잔여 경기 수를 생각하면 올 시즌 안에 두 선수는 프랭크 램파드와 디디에 드로그바의 통산 36골 기록도 넘어설 확률이 높다. 강력한 우승 후보 리버풀과 맨체스터 시티의 스타플레이어들이 주춤하는 상황이 겹친 덕분에 손흥민과 케인은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및 유럽 축구에서 가장 크게, 가장 자주 보도되는 2인으로 각광받고 있다.
축구 시장은 재빨리 반응한다. 토트넘은 2023년까지인 손흥민의 계약을 갱신하려고 준비 중이다. 보유권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다. 괜한 조치가 아니다. 유럽 현지에서 레알 마드리드(이하 ‘레알’)가 손흥민의 영입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기 때문이다. 손흥민은 잘하고 레알은 급하다는 게 둘이 연결되는 배경이다. 현재 레알은 ‘포스트-호날두’ 혼란기에서 허우적거린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가레스 베일이 떠났다. 30대 초·중반인 카림 벤제마, 루카 모드리치, 토니 크로스, 세르히오 라모스가 여전히 중추를 맡고 있다. 물갈이 작업은 더디다. 비니시우스 주니오르, 호드리구 고에스, 페데리코 발베르데, 마르틴 외데고르, 쿠보 다케후사는 아직 어리고, 즉시 전력감이라며 큰돈 들였던 에당 아자르와 루카 요비치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챔피언스리그 3연패의 위풍당당한 스쿼드를 재건해야 할 판에 각종 판단 미스와 코로나19 불황이 겹쳐 레알의 고민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손흥민이 레알 수뇌부의 눈에 들어오는 건 매우 자연스럽다. B급 대회인 유로파리그 클럽에서 뛰는 프리미어리그 최고 공격수라고? 당장 대니얼 레비 회장과 손흥민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야 한다. 얼마면 돼?
궁극적 물음표는 손흥민의 레알 이적 가능 여부에 찍힌다. 아쉽지만 쉽지 않다. 레비 회장의 스타일과 코로나19 불황 때문이다. 레비 회장은 유럽에서 가장 협상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협상의 기본인 타협이 없다. 상대는 레비 회장이 결정한 안을 받든지 말든지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2008년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적을 마감 직전까지 몰고 간 끝에 3천1백만 파운드를 받아냈다. 당시 프리미어리그 이적료 최고액에서 1백50만 파운드 빠지는 금액이었다. 2012년 모드리치, 2013년 베일을 연달아 레알로 넘기면서 1년 새 1억2천5백만 파운드를 챙겼다. 백미는 크리스티안 에릭센이었다. 레비 회장은 6개월 후 계약이 만료되는 선수를 1천7백만 파운드나 받고 인테르 밀란에 팔았다. 에릭센과 인테르의 조급함을 물고 늘어진 성과였다. 현재 토트넘과 손흥민의 계약은 2023년까지 유효하다. 레비 회장이 손흥민을 적당한 선에서 놓아줄 리가 없다. 영국 현지에선 레비 회장이 이적료 기준가를 케인은 2억 파운드, 손흥민은 1억5천만 파운드라고 본다. 과거 성향상 충분히 가능한 셈법이다.
예전의 레알이라면 충분히 달려들었다. 그걸 가로막는 장애물이 코로나19 불황이다. 2020년 여름 레알은 선수를 한 명도 영입하지 않았다. 4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심지어 선수단 급여를 일괄 삭감했다. 현재 레알은 적자 경영으로 버티는 실정이다. 2021년 안에 자금 숨통이 트일 확률도 매우 낮다. 유럽 현지의 9천만 유로 준비 설은 코로나19 변수를 계산하지 않은 ‘뇌피셜’일 가능성이 높다. 레알이 손흥민을 원하는 것은 상황상 팩트에 가깝다. 하지만 9천만 유로는 신빙성이 떨어진다. 레알이든 다른 빅클럽이든 새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선 보유 선수를 처분해야 한다. 실제로 2020년 여름 유럽 이적 시장에서는 맞트레이드와 임대 이적이 급증했다. 코로나19 불황으로 현금줄이 말랐기 때문이다.
현재 레알이 손흥민을 영입하기 위해 제안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자르 카드다. 둘을 맞바꾸는 딜이다. 값어치만 놓고 본다면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한다. 토트넘의 조제 모리뉴 감독이 첼시에서 두 번째 경질 수모를 당했던 원인이 바로 아자르의 반란이었다. 다시 도돌이표. 레알은 손흥민을 영입하려면 최소 1억 파운드 이상 내야 한다. 지금 레알은 그만한 현금이 없다. 현재 유럽 축구계에서 그만한 현금을 쓸 클럽은 중동 슈퍼리치가 소유한 맨체스터 시티와 파리 생제르맹뿐이다. 손흥민의 이적 현실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방향은 레알이 아니라 그쪽이다. 땅 파서 돈을 벌고, 이적 평가액이 비싼 선수들(트레이드 카드)을 다수 보유했으며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클럽들 말이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