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사람들 만나느라 바쁠 것 같다.
자가격리 이후에는 방송 촬영을 몇 편 했다. 그 외에는 오랜만에 사람들 만나서 반가운 시간을 가졌고, 일상도 바쁘게 보내고 있다. 현재는 부산에서 지낸다.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운동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대뜸 야구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2020년은 김광현의 메이저리그 진출 첫해다. 적응하기 바쁜 첫 시즌인데 눈에 띄는 성과를 거뒀다. 3승 1세이브에 평균 자책점도 1.62였다. 경기 수가 비약적으로 적은 시즌이라 아쉬움은 남지만 그래도 뛰어난 성적이다. 내셔널리그 신인왕에 거론될 정도로 주목받았다.
사실 그렇다. 이번 시즌은 60경기밖에 없었다. 메이저리그는 한 해 평균 1백62경기를 치르는데, 그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정확히는 평년의 37%만 치렀다. 첫 시즌에 거둔 성적도 37% 정도의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내년 시즌에는 경기가 100%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에 거둔 성적에 곱하기 3 정도 해서 세 배의 성적을 거두고 싶다.
시즌 초만 해도 메이저리그 개막이 불투명한 상태였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은 상황에서도 경기를 치렀다는 데 의미가 있다.
개막이 차일피일 미뤄질 때는 정말 힘들었다. 2월 말에 한국에서 코로나19가 유행한 이후 미국에서 확산되기 시작했는데, 메이저리그가 개막할 시기였다. 경기는 시작도 못 하고 상황은 불안정하기만 했다. 그때 한국에 들어오지 않고 미국에서 버틴 덕분에 좋은 성적을 거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새로운 팀, 낯선 환경이었다. 적응하기에도 바쁜데 예상 밖 상황이 펼쳐졌다. 이 상황을 견뎌내는 건 결국 ‘멘탈’이다. 주변 상황이 급변해도 야구에 집중할 수 있는 동력이 필요하다. 김광현의 동력은 무엇이었나?
메이저리그 진출 첫해에 포기하고 귀국했다면, 도전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힘들었다. 선수들도 힘든 한 해를 보냈다. 나뿐 아니라 모든 선수가 야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참고 버티기 위해 노력했다. 또 미국 선수들과 구단에서도 위로와 격려를 해준 덕분에 극복할 수 있었다.
문화적 배경이 다른 선수, 코치들과 한 시즌을 보냈다. 함께 훈련하다 보면 신선한 충격도 받고, 새로운 발견도 했을 법하다.
당연하다. 메이저리그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곳이다. 다른 선수가 운동하고 훈련하는 것을 지켜보다 보면 그들이 왜 최고의 선수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아무리 그들이 최고의 선수라 할지라도 팬데믹 사태로 힘든 건 마찬가지다. 그들이 팬데믹을 어떻게 견디는지 지켜봤는데 다들 자신만의 운동법을 찾아서 하더라. 어떻게 해서든 운동은 반드시 한다. 자신만의 운동 루틴을 깨뜨리지 않고 3개월간 꾸준히 한 점은 정말 대단하다. 그런 모습을 보고 최고의 선수들도 항상 엄청나게 준비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셧다운 시기에 운동을 안 하고 휴식을 취했다면 시즌 중에 부상당한 선수들이 엄청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모든 선수들이 특별한 부상 없이 시즌을 마쳤다. 코로나19에 감염된 선수들도 있지만 부상 없이 시즌을 치른 건 놀라울 정도다.
훈련장에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선수들은 어떤 훈련을 하나?
예를 들면 이렇다. 일주일 동안 호텔에서 격리 생활을 해야 하는 시기가 있었다. 그때 한 선수가 자신의 운동법을 영상으로 찍어서 팀원들에게 공유했다. 침대 매트리스를 벽에 세워두고, 매트리스에 공 던지기를 하더라. 공 던지기에 협소한 호텔 방인 경우에는 어떤 운동이 적합한지 공유하기도 했다. 호텔 방에서의 어깨 운동이라든지 이것저것 선수들끼리 운동법을 공유했다.
김광현 선수도 매트리스 꺼내서 훈련했나?
그렇다. 매트리스에 공 던지는 영상을 한 선수가 올렸는데, 코치가 그걸 보더니 각 방에 공을 서너 개씩 넣어주더라. 매트리스에 던지라고.
팀에 녹아드는 건 어렵지 않았나?
처음에는 인종차별이 있으면 어떡하나 걱정도 됐다. 막상 팀에 와보니 그런 차별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외국에서 왔다고 더 챙겨주더라.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무시하는 경우도 없다. 그런 발언조차 찾아볼 수 없다. 선수들은 내가 영어권 국가 출신이 아님에도 영어를 알아듣는 걸 보고 잘한다고 격려해줬다. 역으로 한국말 알려달라고 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팀원들이 생각이 깊고 배려심도 있었다.
KBO 시절의 김광현은 야구 도술을 전부 깨우친, 하산할 일만 남은 도사 같았다. 그즈음 머리를 기르기도 했고. 더 이상 이룰 게 없어 보였는데, 갑자기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과감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메이저리그는 어려서부터 꿈꿔왔다. 개인적인 소망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메이저리그 진출 당시 많은 사람들이 내가 한국에서 편안하게 운동하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광현은 우승도 해보고 이것저것 다 해본 선수니까. 그런데 내 꿈은 메이저리그 야구장에서 공을 던지는 것이었다. 늦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꿈을 이루고자 도전한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자신감도 있었다. 도전에 의미를 두었고, 실패해도 된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자신 있게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메시지였으니까. 사실 취업난이 심각한 요즘은 서른 즈음 취직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런 사람들에게 늦은 나이에도 어떻게든 도전하고,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정점을 찍은 후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건 쉬운 선택이 아니다. 그러나 도전이야말로 앞으로 전진하게 해주는 힘이라고 생각된다.
메이저리그는 어렸을 때부터 꾼 꿈이어서 가능한 선택이었다. 한국에서 기대했던 성과를 이루었을 때 기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에서의 경험을 발판 삼아 나아갈 수 있었고, 최종적으로는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메이저리그 첫 경기는 어땠나? 기대가 큰 만큼 긴장됐을 텐데.
긴장 많이 했다. 그래도 내가 야구를 1, 2년 한 것도 아니고 20년 차가 다 되어간다. 야구는 어딜 가나 똑같다고 생각한다. 첫 경기는 항상 떨리는 법이고. 한국시리즈도 그렇고, 개막전도 그렇다. 모든 첫 경기는 많이 떨린다. 메이저리그에서는 경기 중간에 마운드에 올라서 마무리 투수로 공을 던졌다. 그때 많이 긴장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세이브를 기록했다. 운이 많이 따라주었던 경기다. 그 운이 한 시즌 내내 이어졌고.
긴장을 완화하는 방법이 있나?
그런 건 없다. 긴장하면 집중이 안 된다. 몸이 붕 떠 있는 느낌이다. 긴장될 때는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타자에 대해 생각한다. 타자한테 공을 어떻게 던질지, 계획을 짜다 보면 자연스레 경기에 집중하게 된다.
이번 시즌은 마무리 투수로 시작해서 선발 투수가 되었다.
그동안 선발 투수로 활동해왔기 때문에 선발 투수가 된다는 건 기쁜 일이었다. 그리고 코로나19 때문에 팀이 14일간 경기를 쉬었다. 휴식기를 거치면서 선발 투수가 되었는데, 그 당시 선수단은 거의 패닉 상태였다. 리그가 언제 재개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팀에서는 나보고 선발로 출전하라고 하는데, 14일간 쉬었기 때문에 과연 6이닝을 채울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투구 수를 채울 수 있을지가 가장 걱정됐다. 다행히 70개 정도의 투구를 했고, 이후 기회가 이어졌다. 첫 경기를 치르면서 자신감이 고취됐다.
8번의 경기 중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언제였나?
밀워키와의 경기다. 7이닝 던졌으니 이번 시즌 가장 많은 이닝이었고, 상대 투수가 린드블럼 선수였다. 잘 던진 것도 같아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럼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언제인가?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가는 순간이다. 세인트루이스는 선발 투수가 먼저 마운드에 올라야 나머지 야수들이 자기 위치로 뛰어간다. 마운드에 서서 팀원들이 준비 됐는지 확인한다. 내가 마운드에 걸어서 올라가고 내 뒤로 야수들이 자기 위치를 향해 뛰어올라가던 그 순간, 아나운서의 장내 소개 멘트가 나오고 음악이 흐른다. 소름끼칠 정도로 좋았다. 평생 꿈꿔왔던 순간이니까.
마지막 질문이다. 김광현 선수에게 2020년은 어떤 해로 기억될까?
2020년은 기회를 만들 땅을 고르는 해였다. 꽃을 활짝 피우기 위해서 밭을 갈았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 다음 시즌에는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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