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영화 <콜>에서 영숙(전종서)은 서연(박신혜)이 자신의 말을 귓등으로 듣자 “야!”라고 소리친다. 한 번은 서연이 전화를 한참 후에 받았을 때, 그리고 한 번은 경찰에 어떻게 잡히는지 알아봐달라는 그의 말에 서연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때다. 영숙이 전화기에 대고 큰 목소리로 호통치듯 “야!”라고 하는 순간, 우리도 정신이 번쩍 든다. “야!”라니… 혼내는 거야, 화난 거야? 초등학생이야, 뭐야? 저 사람 뭐야, 왜 저렇게 무서워? 엄마 친구나 이모 친구 중 한 명은 있을 법한 오영숙이라는 평범한 이름이 이렇게 소름 끼칠 줄은 몰랐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수없이 본 서태지 복장이 저렇게 섬뜩할 줄도 몰랐다. <캐리>의 시시 스페이식이나 <샤이닝>의 잭 니콜슨처럼 완전히 고립돼 있다가 결국 폭발해버린 영숙의 그 충동적이고 기묘한 에너지에 2시간 내내 호되게 당했다.
<콜>의 오영숙은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간 자주 봤던 악인, 연쇄살인마, 혹은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가진 사이코패스의 익숙한 전형을 따라가지 않는다. 한국 스릴러 장르물의 남자 빌런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다는 듯 흠 없는 태도로 친절한 척하거나, 무표정한 얼굴로 서늘하거나, 재미있는 놀이를 하는 것처럼 이죽거렸다. 그렇다고 또 기존 한국 영화 속 여자 빌런처럼 논리적인 서사를 가진 ‘복수 캐릭터’도 아니다. 영숙은 좀 이상하다. 퀭한 얼굴에 눈두덩이 부은 그는 심술궂기도 했다가 짜증내기도 했다가 초조해하기도 했다가 천진난만하게 굴기도 한다.
찌를 듯한 긴 눈과 코, 살짝 아래로 내려가 억울한 듯 보이는 입, 아이 같기도 했다가 신경질적으로 들리기도 하는 목소리와 말투, 저벅저벅 걷는 태도와 거침없는 움직임은 영숙을 도저히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든다. 그건 “그러게 전화를 왜 안 받아”와 “누가 사람이 말하는데 전화를 끊어” 같은 지극히 단순한 이유로 내면의 악마성을 드러낸 영숙의 캐릭터와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전종서가 목소리를 쓰는 방식, 몸을 쓰는 방식을 좀 더 자세히 보면 그간의 악인 클리셰와 상당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서연이 잠시 후에 다시 전화해달라고 하자 어이가 없기도 하고 조금은 화가 난 듯한 영숙을 카메라가 문밖에서 잠시 비추는 장면이 있다. 그때 영숙은 침대에 등을 기댄 채 두 다리를 쫙 벌리고 앉아 있다. 마치 아이처럼. 이런 장면도 있다. 자기를 죽이려고 한 새엄마에게 화를 낸 후 영숙은 문 삐걱거리는 소리 같은 신경을 긁는 웃음소리와 함께 허리를 90% 넘게 굽힌다. 그리고 이어 무심하게 말한다. “몰라.” 경찰인 줄 알고 겁먹은 채 문을 열었다가 서연과 그의 아버지가 찾아왔음을 알고 약간은 기분이 좋아져서 “엄마!”를 부르는 장면은 또 어떤가. 괴롭힐 대상을 찾았다는 듯 살짝 짓는 그 엷은 웃음은 너무 순진해서 당황스러울 정도다. 영숙의 감정은 조급함에서 짜증으로, 짜증에서 태연함으로, 태연함에서 심술궂음으로 계속 바뀐다. 그 변덕스러움은 자신이 얼마나 잘못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순수한 폭력성, 전화를 안 받는 서연이 재수 없다는 그 투명한 공격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며, 이야기 전개에 예측 불가능한 긴장감을 만든다. 실제로 전종서는 영숙이라는 캐릭터에 어울리겠다는 생각으로 시나리오에 없는 장난기 어린 웃음소리를 덧붙였으며, 영숙을 준비하면서 다른 영화나 캐릭터를 참고하는 대신 빌리 아일리시의 음울한 음악과 뮤직비디오를 듣고 봤다고 한다.
<버닝>의 이창동 감독은 전종서에 대해 “지금까지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배우”라며 “<버닝>의 해미라는 인물이 그렇듯 용모나 감성이나 내면 등 전종서에게서 속을 알 수 없는 모습이 보였다”라고 말했다. <콜>의 이충현 감독 역시 “<버닝>을 봤을 때 신비함, 알 수 없는 느낌이 인상적이었다. 어디로 튕겨나갈지 모르는 모습이 영숙 캐릭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고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전종서의 얼굴은 따뜻한 감정과 안정적인 신뢰감을 주는 고전적인 여자 배우 얼굴과는 조금 다르다. 가느다란 눈과 코는 날카롭다는 인상을 주며 어딘지 비밀스러운 느낌마저 풍긴다. 미스터리한 분위기의 얼굴은 종종 있었지만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이미지를 가진 여자 배우의 얼굴이 그간 한국 영화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하진 않았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전종서가 얼마나 이질적으로 보일지 알 수 있을 거다. 가장 중요한 건 약간 뜬 듯한 목소리다. 높거나 낮게 급변하는 목소리는 퉁명스럽게 들리기도 하고 불안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 목소리는 가볍고 자유로우며 손에 잡히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매끄럽진 않지만 그렇다고 서툴지 않은 모습, 꾸밈이 없지만 동시에 불편하기도 한 그 모습은 그가 맡은 캐릭터에 대한 호기심을 자아내며 혼란의 공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버닝>에는, 해미가 아프리카 여행 중 경험한 선셋 투어에 대해 곱창전골집에서 1분 조금 넘게 얘기하는 장면이 있다. 낯선 곳에서 겪은 황당함, 외로움, 경외감, 그리고 허무함을 얘기하는 이 장면에서 전종서는 다양한 얼굴을 하고서 여러 복잡한 감정을 순식간에 넘나든다. <콜>의 영숙처럼 해미 역시 절박하기도 했다가 느긋하기도 하며, 영악하기도 했다가 순진하게 굴기도 한다. 해미는 돈도 없고 삶의 의미도 없는 청춘을 상징할 수도 있지만 해석에 따라 허무 그 자체를 상징할 수도 있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어떤 무엇의 존재. 잡히지 않는 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전종서를 보면서 <버닝> 초반부 그의 대사가 계속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여기 귤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여기에 귤이 없다는 걸 잊어먹으면 돼. 중요한 건 진짜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러면 입에 침이 나오고 진짜 맛있어.” 확실한 건, 누구든 <버닝>의 해미와 <콜>의 영숙이 어떤 사람인지 말하기 힘들 거라는 것이다.
이제 막 두 편의 영화를 세상에 공개한 배우에게 지나친 기대와 과도한 찬사를 보내는 걸까? 새로운 얼굴과 새로운 목소리, 그리고 새로운 스타일의 배우가 탄생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 고개를 끄덕거릴 것이다. 가볍고 천진하며 자유로운 그의 연기 스타일이 큰 기대와 무거운 부담을 만나 어떻게 변모해가는지 지켜보는 것 또한 관객에게 주어진 즐거움이 아닐까. 과연 전종서는 정가영 감독의 <우리, 자영> 같은 연애물에서는 뻔한 것과 낯선 것을 어떻게 보여줄까? <밤을 걷는 뱀파이어 소녀>로 독특한 영화 문법과 미학을 보여준 애나 릴리 아미푸르 감독의 신작 <모나리자 앤드 더 블러드 문>에서는 어떤 미지의 세계를 우리에게 드러낼까?
우리가 할 일은, 새엄마를 죽인 후 브라운 후디 점퍼와 백팩 차림으로 길거리에 나선 영숙이 입을 실룩거리며 짓는 그 해방감을 떠올리며,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얌전히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것이다. 전화는 꼭 제때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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