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카바 라이프 최지연 대표
처음 김소라 작가를 섭외하기 위해 올랐던 학교의 언덕길이 기억난다. 맑은 늦여름 오후, 땀을 뻘뻘 흘리며 찾아간 작가의 작업실은 학교에서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 커다란 공간이었는데, 복도를 여러 번 꺾어 가야 만날 수 있는 김소라 작가의 작업대는 무척이나 작았다. 막 세수한 듯 맑은 얼굴로 조용히 작업물을 하나씩 꺼내어 보여주는 작가와 어딘가 기묘한 아름다움과 섬세함이 뒤섞인 그녀의 작업들이 무척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정교하고 매끈하며, 유려하지만 소박한 단 한 알. 동시대 문화권의 물건처럼 여겨지지 않아 줄곧 바라보고 뜯어보고 만져보고 싶은 즐거움이 있는 작품이다. 은호두 케이스는 카바 라이프에서 소개하는 그의 여러 작품들 중 하나로, 작고 소중한 것을 넣어두는 합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손바닥에 꼭 들어차는 질감과 무게감에 우선 만족감을 느끼고, 반짝이는 뚜껑을 열어서 무언가를 숨겨둘 생각에 얼른 호주머니 속에 넣고 싶어지는 작품이다. 이런 생각은 나만 하는 게 아닌지, 이제 재고가 몇 개 남지 않았다. 카바 라이프의 베스트셀러다.
② 오티드 오충환 대표
오티드는 햇볕이 창을 타고 넘는 오후 5시를 바라보며 만들었다. 빈 거실 한쪽에 접어두고 보는 책처럼 느긋한 물건을 소개한다. 이런저런 걸 찾다가 작가의 작업실에 돌진해 새로운 걸 만들기도 하고, 필요한 걸 만들어 쓰다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은 건 판매도 한다. 먹감나무 커피 필터 스탠드도 그런 제품이다. 염동훈 작가에게 트레이 제작을 부탁했던 날, 그가 내려준 커피를 마시다 작업실의 커피 필터 스탠드가 예뻐 유심히 살펴봤다. 먹감나무면 좋을 것 같았다. 바람에 꺾인 감나무 상처 틈으로 비가 스며들어 나무가 서서히 타면 먹감나무가 된다. 불에 덴 듯 숯처럼 변하는데, 탄 흔적은 먹이 번진 듯 농도가 다르다. 나무를 쪼개기 전엔 먹감나무인지 확신할 수 없고 구하기 어려워, 눈보다 손이 빨라야 얻을 수 있다. 마음을 정돈하듯 커피를 내릴 땐 그에 어울리는 태도가 필요하다. 체를 치듯 숨을 고르고 커피를 기다리는 마음을 위해서 만들었다. 같은 원두라도 내리는 사람의 기분과 날씨에 따라 맛이 다르듯, 만들 때마다 모양이 달라지는 먹감나무 커피 스탠드는 어디든 마음의 새로운 자리를 만든다.
③ 네스트한남 정세영 대표
집에서 일한다. 집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판매한다. ‘언택트’ 시대의 소비를 살핀다.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면서 네스트한남은 시작됐다. 브랜드를 론칭하는 데 소요된 시간은 고작 하룻밤. 더치 디자이너 알도 바커의 테이블, 포르투갈 왕실 비누 클라우스 포르토 등을 업로드했다. 내 생활에서 자주 쓰는 물건들을 소개하자 지인들의 주문이 이어졌다. 네스트한남의 생활용품은 판매자가 오래 사용해오며 만족감을 느낀 것들이다. 역사가 한 세기를 훌쩍 넘긴 제품들이 주를 이룬다. 영국의 문구회사 아키비스트와 파리의 디자인 스튜디오 비-폴즈가 함께 만든 빈티지 성냥 박스 역시 오랜 시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온 제품이다. 간결한 텍스트로 제품의 특성을 설명한 모던한 디자인의 성냥 박스는 어디에 놓아도 훌륭한 오브제가 된다. 백 퍼센트 분해되는 친환경 재지로 제작됐으며, 기다란 10cm의 성냥개비가 1백50개 들어 있어 넉넉히 사용할 수 있다. 요가 캔들에 불을 켤 때나 생일 케이크에 초를 켤 때, 한 권의 책을 꺼내듯 두툼한 성냥 박스를 매만지는 일이 즐겁다.
④ 39etc 정현지 대표
내게 ‘바잉’의 기준은 딱 두 가지다. “얼마나 재미있는가? 얼마나 완성도 높은가?” 히포 플레이트는 이 두 가지 모두를 완벽히 충족했다. 아프리카 대륙의 짐바브웨는 ‘돌로 만든 집’이라 불릴 정도로 석재가 풍부한 나라다. 짐바브웨에서 가장 많은 원석인 서펜타인으로 만든 히포 플레이트는 돌의 질감과 형태를 그대로 살려 조각됐다. 서펜타인은 뱀을 뜻하는 라틴어 ‘서펜티누스’에서 유래했는데, 뱀의 초록빛을 닮았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뱀독을 치유해준다는 믿음 때문이라고도 한다. 초록색부터 검은색까지 다양한 돌의 색과 무늬에 따라 형태가 다양한 이 제품은 모두 품절되어 단 한 개만 남아 있다. 가을밤, 팔로산토 같은 우드나 말린 허브를 태우는 스머지 버너로 추천한다. 서펜타인 플레이트 위에서 단향을 뿜으며 은은히 타들어가는 팔로 산토를 보고 있자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물을 자박하게 채우고 작은 수초나 이끼를 키워 하마의 얼굴을 꾸미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테라리움이 완성될 것이다.
⑤ 라운디드 유정규 대표
소재별로 작업하는 작가들을 발굴하던 중 콘크리트를 주재료로 사용하는 스튜디오, 그레이 스펙트럼을 알게 됐다. 새로웠다. 콘크리트는 실생활에 밀접하게 닿아 있지만 제품 소재로는 익숙지 않으니까. 알아보니 콘트리트는 재료의 배합에 따라 컬러 및 경도를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는 많은 가능성을 지닌 소재였다. 그레이 스펙트럼이 제품을 바라보는 시각은 새로운 소재와 사소한 관점에서 시작된다. ‘Picture You’ 액자는 자석이 붙게끔 콘크리트 재료를 배합해 사진, 메모지 등을 디스플레이할 수 있으며, 양면의 질감이 달라 앞뒷면 모두 사용하기 좋다. 간결한 디자인에서 돋보이는 디테일은 네 개의 동그란 자석 홀더다. 붙여 쓸 수도, 하나씩 떼어 쓸 수도 있다. 압정처럼 흠을 남기지도 않고, 포스트잇처럼 자국을 남기지도 않는다. 난 데스크에 두고 명함을 부착해 사용하는데, 이 제품 하나만으로도 삭막한 사무 공간에 포인트를 줄 수 있었다. 삶의 패턴을 바꾸는 건 사실 큰 이슈보다는 이런 사소한 것들에서 비롯되지 않던가? 이것은 나와 라운디드가 늘 생각하는 가장 큰 관심사다.
⑥ 챕터원 김가언 대표
MAD et LEN은 2013년 파리 그라스 지방 출장 중 처음 만난 공방이다. 그라스 근처의 파리 남쪽 마을 생쥘리앙 뒤르동에서 알게 된 그들은 자연물만을 재료로 사용해 포푸리를 소량 생산하고 오래 숙성시키는데, 그 모든 과정이 지극히 예술적으로 다가왔다. 현무암과 자수정, 호박석을 직접 채취하고, 이 원석들에 향을 입혀 숙성시키는 작업은 2, 3개월이 소요된다. 때문에 흙, 숲, 밤바람 등 자연의 향임에도 불구하고 금방 휘발되지 않고, 강렬한 향을 오래도록 품는다. 거칠고 날것의 느낌을 풍기는 케이스 또한 마을의 대장장이가 철을 두드리고 불에 그슬려 까맣게 만들어낸 것이다. 향을 공예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제품임이 분명해 챕터원이 국내에 처음 이 제품을 들여왔고, 아직까지도 특별히 여기고 있다. 초창기 제품인 현무암 포푸리는 투박하지만 그래서 더 애정이 긴다. 침대 머리맡 협탁 또는 원하는 곳에 원석을 낱개로 두어 향이 은은하게 배어 나오도록 사용하는 걸 추천한다. 명상과 숙면에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⑦ 오르에르 아카이브 김재원 대표
프레파의 유리 그릇은 심플하면서도 미묘한 곡선이 아름다운 제품이다. 스튜디오 프레파(STUDIO PREPA)는 히라 씨 부부가 운영하는 ‘불어서 만드는(Blown Glass)’ 유리 공방인데, 나가노현 산골에 위치한 공방 이름을 ‘PREPA’라 지은 것은 ‘preperation’, 즉 생활 도구를 준비하는 방에서 따왔다고 한다. 연꽃을 뜻하는 로터스(Lotus)라 이름 지은 이 유리 보울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온 것은 너무 극적이지도 너무 단호하지도 않은 나긋한 곡선과 희붐한 색상, 그리고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는 매력 때문이었다. 미묘한 단순함이 어떤 정점에 올라 극치를 이룬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단순하고도 작은 변화를 주는 이 그릇을 사용할 때면, 무엇을 담을지 상상하기에 앞서 마음이 먼저 풍요로워진다. 가벼운 화채도 좋고, 토핑이 화려한 샐러드도 좋을 것이다. 이 그릇을 사용할 때면 늘 히라 씨 부부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이런 점이 공예가의 물건을 가까이 두는 이유인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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