➊ <젤다의 전설>에서 <원신>으로
<원신>에 꽂혔다. <원신>을 시작한 이유는 <젤다의 전설>에서 영감받은 게임이기 때문이다. <젤다의 전설>은 내가 오랫동안 플레이한 게임 중 하나로 <원신>과는 조작 방식부터 비슷하다. 캐릭터를 육성하고 모험하며 장비와 무기를 구하고 미로를 통과해야 한다. 미로를 통과하기 위해 풀어야 할 퍼즐 게임들이 촘촘하고 섬세하게 펼쳐져 있어 조작이 까다로운 게임과 달리 이야기에 몰입된다. 뚜렷한 서사를 읽는 재미와 캐릭터가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과정은 내게 거대한 쾌감을 선사한다.
➋ 게임과 전시
첫 번째 개인전은 게임 속 아이템에서 영향받았다. 게임에서 내가 가진 아이템을 확인할 수 있는 인벤토리 창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떠올리게 한다. 전시장에 놓인 작가의 작품이 인벤토리 창에 채워진 아이템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개인전에서는 동일한 크기의 박스들을 나열한 후 각 박스 속에 광물이나 칼 같은 게임 장비들을 놓아두었다. 이어진 두 번째 전시에서는 게임 속 맵을 주제로 기획했다.
➌ 우리는 게임처럼 걷는다
두 번째 전시에서는 화산 지대나 용암으로 게임 맵을 구현했다. 캐릭터가 모험하는 게임 맵은 아주 광활하다. 제작자는 게임 맵 속에 장비나 도구를 얻을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해 플레이어가 그 장치만을 따라가도록 교묘히 설정했다. 하지만 오픈 맵이라 할지라도 플레이어가 가지 못하는 곳은 무수히 많다. 전시장도 마찬가지다. 관람객은 모두 비슷한 방향으로 걷고 입구에는 ‘전시 보는 순서’가 그려진 맵을 노골적으로 비치하기도 한다. 전시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마트, 백화점 등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동선에 따라 그날 경험할 수 있는 스토리가 달라진다. 이렇듯 게임 속 맵과 일상 속 맵의 유사성을 개인전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바닥에는 검은색과 빨간색의 네모난 카펫을 교차하여 깔았다. 검은색은 밟아도 되는 돌을 의미하고, 빨간색은 밟을 수 없는 용암을 의미한다. 색을 달리하여 관람객의 동선을 정함으로써 내 캐릭터가 갈 수 있는 곳이 한정되듯 넓은 전시장에서도 내 작품을 보기 위해선 밟을 수 있는 곳이 한정된다는 것을 표현했다.
➍ 만지는 게임
전시장을 방문할 때면 작품을 만지고 싶은 갈망에 휩싸인다. 이러한 갈망을 앞서 말한 개인전에도 녹여냈다. 한 가지 예로 캐릭터가 사과를 집어 들었는데 사과가 캐릭터에 비해 비대하게 크다면 현실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 캐릭터는 심지어 자신보다 아주 큰 사과를 한 손으로 들고 먹는 퍼포먼스까지 선보인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모습을 관객이 직접 만져보고 체험해보기를 바랐다. 거대한 사과를 그대로 본뜨는 대신 무게를 최대한 줄여 캐릭터의 퍼포먼스를 이해하게끔 만들었다. ‘아 그래서 캐릭터가 사과를 한 손으로 들고 먹었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만지고 직접 느껴보는 걸 중시해 내 작품도 관객에게 선뜻 내어준다. 이 때문에 큐레이터는 반복해서 되묻는다. ‘정말 괜찮겠냐’고.
➎ 게임을 미술로
RPG, 퍼즐, 슈팅 등 모든 게임에는 미술이 녹아 있다. 영상미를 돋보이게 하는 것도 미술의 영역이다. 하지만 미술에 게임을 담아내는 건 쉽지 않다. 특히 게임 세계관을 예술로 표현하는 건 내겐 어려운 영역이었다. 세계관 없이는 전시를 구상하기 힘들다. 게임 속 아이템과 풍경까지 게임의 스토리나 세계관에 따라 파생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개인전에서 그 어려움에 직격탄을 맞았다. 게임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세계관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게임의 내용으로 구성한 내 전시를 위해선 나만의 세계관을 구축해야만 했다. 그래서 판타지 소설 같은 내용을 담았다. 스토리에 맞게 작품도 몇 번의 수정 과정을 거쳤다. 캐릭터는 산에 올라 중요한 열쇠를 얻어 와야 하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산에 올라야 한다면 처음 기획했던 단순한 바위 배경이 아닌 거대한 풍경으로 인식될 만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처음 기획 시 조명으로 어둡게 만들려 했던 전시장 벽에 커다란 현수막을 걸었다. 화산과 용암이 펄펄 끓는 사진으로, 중대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캐릭터의 극단적인 상황을 극대화했다.
➏ 조각과 기운
두 번의 게임 시리즈 개인전을 마친 후 두 가지 고민을 했다. 첫 번째는 게임 속 조각을 빚어내는 것이다. 대부분의 게임은 특정 마을에 들어서면 돌로 만든 조각상이 하나둘 자리하고 있다. 부족적인 성격이 강한 마을에는 뼈로 만든 조형물이 있듯 판타지 요소가 가미된 가상의 조각상들을 실제 조각으로 빚어보고 싶다. 두 번째는 게임 속 이펙트를 실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펙트는 무형의 ‘기운’ 같은 것이다. 레이저나 장풍 쏠 때 발현되는 빛의 움직임이나 바람의 형상을 말하는데, 이를테면 드래곤볼의 에네르기파를 예로 들 수 있겠다. 게임에서 캐릭터가 특정 기술을 사용할 때 플레이어가 타격감을 실제로 느끼기 위해선 이펙트는 필수적이며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선 구현할 수 없어 물리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선 구상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 두 가지 고민에 대한 해답이 나온다면 게임 시리즈 전시는 막을 내리지 않을까.
차슬아 조형예술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이 차슬아에겐 재료다. 철사를 꼬고 실리콘으로 모형을 만들며, 석고로 온갖 모양을 본뜬다. 투박한 점토는 그녀의 작은 손을 거치면 하나의 거대한 작품으로 재탄생한다. 그녀의 작품 세계는 현실과 가상을 오간다. 게임 속 가상 세계를 떠돌며 마주치는 풍경, 캐릭터가 구사하는 기술, 장비와 무기 같은 아이템을 점토로 빚고 조각으로 깎아냄으로써 현실 세계를 구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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