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는 공공의 책이다.
개인의 감흥에 취한 에세이집도 아니고 현학적인 철학서도 아니다.
공공이 읽는 공공의 글, 그게 잡지다.
그래서 잡지 기자는 글을 잘 써야한다.
여기서 ‘잘’ 쓴다는 것은 쉬워야 한다는 뜻이다.
많이 알수록 글이 쉬워진다.
쉬운 글은 정보와 체험이 밑그림이 되어야 한다.
최상의 정보는 농밀한 취재를 말함이다.
기자라는 직함이 주는 무기를 이용해 ‘최단 시간, 최장의 정보’를 취해야한다.
정보가 충만해지면 이제 거꾸로 접근해야 한다.
아는 걸 과시하는 오류를 범하면 안 된다.
아는 걸 삭혀서 발효시키는 손맛을 발휘해야 한다.
그게 기자가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인 ‘겸손한 거꾸로 접근법’이다.
건축가 부상훈은 거꾸로 학습하는 것이 순차적으로 배우는 것보다 쉽다고 했다.
a를 학습하고 b를 배우고 c,d로 이어나가는 것은 항상 잘 아는 방향에서 모르는 방향으로의 이동이어서 오류를 범할 확률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d를 먼저 학습하고 c,b,a를 검증하면 항상 자기가 아는 방향으로의 학습이 이루어져 오류가 적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건축의 예를 들어 부분적인 디테일보다 전체 프로젝트를 먼저 진행해 보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건축과 잡지의 ‘거꾸로 학습법’에 동의하는 바를 몇 가지 적어 보겠다.
-제목-전문-본문-캡션을 탄탄하게 쌓아올린 하나의 기사를 완성함에 있어서 취재를 통해 학습한 d,c,b가 기사의 주춧돌이 되는 독자의 요구 a를 검증해 나가는 방향을 취해야 오류가 없다.
-한 줄의 글과 형용사 한 개를 취사선택하는 것보다 칼럼 전체의 골격 구조를 명확히 하는 게 정답이다. 더 나아가 칼럼의 골격보다 더 우선하는 것은 잡지 전체의 프로젝트 기획서를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다. 명패가 아니라 설계도를 보라는 것인데, 이 귀 무르도록 일반적인 문장 한 줄이 가장 간과하기 쉬운 명제며 모든 잡지 글의 오류는 여기서 출발한다.
-건축뿐만 아니라 모든 세상살이가 다 마찬가지지만 거대 프로젝트 나아가서는 창간 작업을 해본 기자가 매달 비슷한 류의 고정물만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기자보다 실력이 빨리 는다. 그래서 기자는 ‘좀 무리다’ 싶더라도 거대 기획물에 도전해야 한다. 창간 작업을 해봐야 하는 건 필수 코스다. 그 과정이 없으면 아무리 연차가 높아도 잡지의 골조, 기반 공사에 대한 감을 잡기란 어렵다. 또 ‘잡지 좀 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아는 게 많은 선생이 가장 쉽게 원리를 설명할 수 있다.
머릿속에 이론의 단계가 명쾌하게 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쉬운 설명 끝에 오래 묵힌 조언 한마디 덧붙이는 것이 대가의 패턴이다.
그러면 학생들은 고개 조아리고 하산하는 것이다.
이 글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안성현식 잡지론>이라는 개인 작업물(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다는 의지에서 출발한) 중 한 단락을 발췌 후 요약한 것이다. 이것은 <아레나> 작업 강령 제 1조 쯤에 해당한다. 체험 학습을 통해 잡지 강령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게 이 바닥 생리긴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고민 많은 후배들에게 미리미리 정답을 공개해 주는 이론 학습의 장도 필요한 게 아닐까 하여 마감의 끝을 이 글로 막는다.
P.S
위의 모든 원칙을 충실히 이행한 <아레나>의 빛나는 별책 부록을 챙기셨는가? 당신의 가방 안에, 당신의 책장 한 켠에 항시 두고 평생을 펼쳐보아도 좋을, 칭찬 받아 마땅한 공공의 책이라 자부한다.
아레나 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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