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우라… 막말로 세상에 경우란 경우는 우리가 다 어기고 살지만 너하고 난 경우 따져야지.” 영화 에서 화란이와 세란이를 구하러 온 고니에게 곽철용이 한 말이다. 고니는 화란이와 세란이를 풀어주는 대가로 곽에게서 딴 돈을 돌려주고 2년 동안 그의 밑에서 일하기로 약속한다. 부하 용해가 의심하자 곽은 물어본다. “너도 쟤처럼 목숨 걸고 베팅할 수 있겠냐?” 용해는 고니에게 모욕을 주려는 순간 얼굴을 가격당한다. 곽은 호쾌하게 웃으며 고니의 제안을 받아준다. 거래 형태를 띤 사과가 통한 순간이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얼마 전 뒷광고를 하던 유튜버들의 사죄 영상이 이슈가 됐다. 검은 옷을 입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눈물 흘리거나, 스스로 원산폭격 받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진심을 호소하며 시청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사죄 영상은 조회 수가 폭발적이다. 그런데 이런 논란에 대처하는 양상은 미국이나 유럽 유튜버와는 차이를 보인다. 볼 테면 보고 말 테면 말라는 식의 그들과 달리 우리나라 유튜버는 사과에 극진하고 시청자는 사과를 요구한다. ‘너하고 난 경우를 따져야지’라던 <타짜>의 장면이 오버랩된 순간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화가 난 상황에서 상대에게 해명을 요구할 때 던지는 전형적인 말이다. 우리는 상황을 해석할 때 행위보다 관계 맥락을 더 중요하게 따진다. 인류학자 홀(Hall)은 문화적 의사소통을 ‘고맥락 문화’와 ‘저맥락 문화’로 구분한 적 있다. 고맥락 문화권에서는 의사소통의 핵심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선 메시지보다 상황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차 마시는 상황에서 ‘더 마실래?’라고 하지, 굳이 ‘차를 더 마실래?’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에게 긴한 부탁을 하러 갈 때, 상대방의 안부와 자신의 근황 같은 맥락 정보를 자세하게 설명한 다음 용건은 마지막에 아주 간단하게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떤 대상과 어떤 관계인가를 내포하는 용어와 존칭이 발달한 것은 그 사회가 얼마나 맥락이 발달했는지 알 수 있는 증거다. 우리 사회는 말할 것도 없이 대표적인 고맥락 문화다.
반면 저맥락 문화에서는 의사소통의 핵심이 상황적인 맥락보다 말이나 글과 같은 메시지가 더 중요하게 고려된다. 관계가 어떻든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아는 사람이 물건을 사든 모르는 사람이 사든 가격 변동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저맥락 문화는 의사소통 방식이 거래의 유형이다. 당연히 장기적인 관계보다 단기적 관계가 의사소통의 기본 전제가 된다. 주어가 없으면 문장이 되지 않는다. ‘거시기’는 통하기 어렵다. 물론 사람 사는 사회를 칼로 무 자르듯 이렇다, 저렇다 나눌 수는 없지만 대략적으로 영미권은 저맥락 문화에 속한다.
다시 유튜버의 사죄 영상으로 가보자. 고맥락 문화인 우리 사회에서 사과가 제대로 전달되려면 사과의 맥락이 매우 중요하다. 내가 얼마나 잘못했고 반성하는지는 그 사람의 말이 아닌 표정과 행동 같은 맥락으로 충분히 전달되어야 진정성이 완성된다. 유튜버가 사과할 때 입는 검은 옷과 화장, 원산폭격 같은 자학적인 행동은 모두 사과의 맥락에서 등장하는 문화적 문법이다. 맥락을 설명하며 사과하는 대상은 특별한 존재라는 의미다. 이런 사과를 받는 사람은 적어도 그 상황에서 VIP 대접을 받는 것이다. 사과하는 사람이 아주 유명한 셀럽 유튜버라면 시청자는 셀럽의 VIP랄까? 우리 사회에서 사과 영상의 조회 수를 폭발적으로 늘려주는 특성은 바로 이런 문화적 문법에서 기인한다.
반면 저맥락 문화에서는 웬만한 일에 사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과를 의사소통의 방식이 아닌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기호(sign)’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문제 있는 사람이라는 판단이 들면 그 사람의 모든 행동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유추한다. 각 사건을 꼼꼼히 따질 여유가 없는 요즘 사회에선 더욱 그렇다. 사람에게는 장단점이 있고, 단점을 보완하기보다 장점을 부각하는 것이 실용적이다. 거래의 맥락에서 보자면, 파는 사람이 누구인가보다는 파는 것이 무엇인가가 더 중요하게 판단되는 저맥락에서는 굳이 나쁜 것에 대해 사과할 필요가 없다. 좋은 것을 사면 되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안 사면 그뿐이고, 판단은 사는 사람의 몫인 것이다. 파는 사람이 애걸복걸할 이유도 없고, 설령 그렇게 한다고 해서 영향을 받을 것 같지도 않은 문화적 문법은 그들의 유튜브 콘텐츠에서도 드러난다.
사과의 문화적 차이는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까? 기본적으로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를 비롯한 1인 미디어라는 속성이 문화적 변동의 나침반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SNS의 파급력은 사용자 숫자와 비례한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는 자체적으로 만든 콘텐츠가 거의 없음에도 그 어떤 매체보다 많은 사용자를 끌어들였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사용자가 만든 콘텐츠에 사용자 친구들이 모여든 것이다. 친구들과 하는 소통은 모르는 사람들과의 소통과는 그 수준과 방법이 다르기 마련이다. 1인 미디어는 대중과 만나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미디어라기보다 사적이고 주관적인 측면이 강점이다. 1인 미디어를 구독하는 행위는 단지 공급자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그 콘텐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에 속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팬덤이라고 불리는 공동체는 막대한 조회 수와 ‘좋아요’ 그리고 구독으로 그 영향력이 표출된다. 영향력 지표는 수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이제 상식이 되어버렸다. 1인 미디어는 콘텐츠와 크리에이터를 중심으로 형성된 작은 세계이며, 그 세계관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숫자, 즉 관계가 더욱 중요한 비즈니스의 핵심이라는 의미다.
SNS가 파급되면서 개인주의 영미권에 관계주의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기술이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을 준 것이다. 1인 미디어가 발달한다는 의미는 관계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것이라는 의미와 통한다. 관계 유지를 위한 섬세한 의사소통이 저맥락 문화에서도 중요해지리라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 점에서 페이스북보다 훨씬 오래전 싸이월드를 만들어내고, TV에 콘솔박스를 연결해서 혼자 노는 비디오 게임 문화에 수십만이 접속해서 함께 노는 다중접속온라인게임(MMORPG)을 개발해 세계에 유행시킨 우리나라는 관계 문화권의 리더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관계는 만드는 것도 어렵지만, 유지하는 것은 더 어렵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감하는 삶의 상식이리라. 어려운 관계 유지 중 하나가 사과를 잘하는 것이다. 다양한 사과의 양식이 관계주의 선진국인 우리나라 유튜브를 통해 쏟아지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좀 더 지켜보면서 성공적인 사과의 규범이 나타날 것으로 생각된다. 요즘 우리나라 유튜버의 사과 영상과 그 결과를 유심히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일 뿐 아니라 기술이 바꾸는 문화의 변곡점을 지켜보는 행운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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