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알아? 넌 행복한 게 어울려.” “너의 마음을 알아줄게, 너의 마음을 안아줄게.” 한 달 전부터 방송을 타기 시작한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 광고는 위로와 격려의 말을 쉼 없이 쏟아낸다. 어느 술집 내부에 네온사인으로 걸린 문구나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에서도 마주치는, 이런 문구의 한없는 가벼움. 더구나 이 광고는 대국민 격려 캠페인이 아닌, ‘갤럭시 S펜’을 이용해서 직접 쓴 희망의 글귀를 SNS에 올리라고 유도하는 이벤트 공고다. ‘위로’ 자체가 콘텐츠인 셈이다.
물론 이런 말들은 메시지가 도달하는 대상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힐링’이라는 제 역할을 해낼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이 약해지면 누군가 예쁘게 빚어낸 공허한 말뿐 아니라 하트를 껴안고 있는 스누피 그림이나 강아지가 수박을 먹는 유튜브 클립을 보면서도 감동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법이니까. 그러니 ‘힐링’이란 오로지 받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결과적인 감정이다. 그렇기에 ‘힐링’을 보편적인 형태로 만들어 ‘제가 지금부터 힐링을 시켜드리겠습니다!’ 소리쳐 판매하고, 강요하듯 ‘이게 진짜 힐링이지!’라며 정형화시키는 행위는 늘 괴상하고 어딘지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제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린 텔레비전 ‘힐링 예능’처럼.
당연한 이야기지만 치유를 위해선 증상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치유’ 대신 ‘힐링’이라는 영어 단어를 사용하면 굳이 아픈 부위를 찾아 짚어낼 필요가 없어진다. 이미 언어 자체가 하나의 시장을 가리키게 된 ‘힐링’이란 개념은, 다소 둔하고 천진한 처방이더라도 최대한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어내는 것이 목적인 대중 상품이 되었다. 예능은 이렇게 사고팔 수 있는 개념이 되어버린 ‘힐링’을 가장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매체다. 그들은 시청자가 텔레비전 예능을 통해 상처를 짚어내는 방식의 근본적인 해결을 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전제로 삼고, ‘힐링’의 모범 답안을 그려냈다. 그들이 지정한 환자는 ‘바쁜 현대인’이고, 병명은 ‘번아웃’이며, 처방은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나른한 얼굴로 마주 앉아 진솔한 대화로 마음을 터놓고, 평소에 먹지 못하는 특별한 식사 메뉴를 다 함께 즐기는’ 이벤트다. 따라서 ‘힐링 예능’이란 장르는 정확한 증상의 진단이 필요 없는 만인을 위한 ‘엄마손은 약손’ 같은 플라시보 효과이며, 잠시나마 통증을 완화하는 미약한 효과의 진통제다. <삼시세끼>와 <꽃보다 OO> 시리즈, <O식당> 시리즈, 그리고 올해 방영된 <여름방학>까지 tvN의 인기 ‘힐링 예능’들이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tvN <여름방학>에서 배우 정유미와 최우식이 한 달간 머문 강원도 고성의 주택 거실에는 칠판이 있다. 그곳엔 ‘매일 일기를 쓰고, 매일 운동을 하고, 하루에 한 끼는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여름방학 숙제가 적혀 있다. 그 세 가지 규칙이 <여름방학>이라는 예능의 전부다. 복불복 게임으로 야외에서 취침할 사람을 정한다든지, 사탕수수를 다 베어야 밥을 먹을 수 있다든지, 매 끼니 새로운 재료로 요리를 해야 하는 미션도 없고, 구성상 트레이드마크였던 제작진의 인위적인 개입 또한 없어졌다. 이로 인해 현재까지 <여름방학>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소극적인 연출 때문에 어디서 재미를 느껴야 할지 모르겠고, 지루하다’는 평과 ‘억지스럽지 않아 더욱 보기 편하다’고 말하는 평이다. 나는 <여름방학>이 후자의 반응을 염두에 두고 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힐링’이란 받는 사람이 내놓는 결과적 감상이 아니라, 만드는 입장에서 작정하고 팔 수 있는 하나의 콘텐츠임을 보여준 뒤, 앞으로도 계속 ‘힐링’이 무엇인지 그 정형성을 만들어보겠다는 각오처럼 느껴진다.
갤럭시 노트의 이벤트 광고 속 수많은 ‘치유의 메시지’가 진짜 사람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결국엔 ‘갤럭시’의 유저를 늘리고, 단말기를 많이 팔기 위해 고안된 상술의 일부라는 사실 자체엔 변함이 없다. 예시로 나열한 문구들은 피상적으로 각인되고, 이런 상황이 누적되며 사람들은 ‘힐링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 자체에 도리어 피로감을 느낀다. 아마 ‘힐링을 파는’ 입장에서도 이런 반감을 모르는 것은 아닐 테다. 다만 광고는 직접적인 참여를 유도해 매출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니 메시지의 진정성에 대한 검열을 스스로 할 필요가 없을 뿐이다. 그러나 ‘힐링 예능’은 콘텐츠에 대한 관심과 평이 곧 실적이자 매출이다. 그래서 자신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힐링’을 선사하고 있으며, 그것이 어떤 효과로 이어지는지 과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있는 사람만이 가능한 ‘슬로 라이프’를, 마치 누구나 욕심을 버리고 눈을 돌리면 가능한 것처럼 보편화시키고, 누군가에게는 생활의 터전인 농촌, 어촌, 산촌 마을을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가공하고,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인간과 함께 생활하는 게 부자연스러운 동물을 출연시켜 이목을 끄는 것도 모두 그 때문이다. 평소에 텔레비전 예능을 통해 잘 볼 수 없던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선한 인물의 등장은 주제나 형식보단 단순한 캐릭터 비평으로 시선을 돌려 실제로 많은 시청자가 출연자에 대한 애정 때문에 방송 자체를 옹호하게 하며, ‘이 프로그램은 진짜 힐링을 가능하게 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봉쇄한다. 그리하여 대리만족에 그치는 ‘힐링 판타지’의 효용을 따지는 비판을 비롯해 출연한 동물들이 인기 종이 되는 문제, 촬영 후 해당 장소의 관광지화로 겪는 현지인과의 갈등이나 자연환경 파괴 같은 부작용 또한 모두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양적인 반응으로 산출되어 ‘힐링 예능’이라는 장르의 몸집을 불리는 것이다.
요즘 나는 MBC 시사교양국 소속이었던 최별 PD의 유튜브 채널 <오느른>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서울 집의 전세 보증금 4천5백만원을 빼서 전북 김제의 1백15년 된 폐가를 구입해, 덜컥 전입신고를 해버린 30대 초반의 직장인은 ‘귀촌’ 생활의 모든 과정을 브이로그 형태로 공유하고 있다. 아버지에게 통보하듯 시골살이를 시작했다 알리고, 무너져가는 낡은 폐가를 열심히 복원하고, 일곱 가구 정도 살고 있는 작은 마을에서 그들의 이웃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인터넷이 설치되는 데 한 달이 걸린다는 말에 좌절하고, 치우고 치워도 끝이 없는 폐가 앞마당에 주저앉아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하며 도시인다운 자책에 빠지기도 한다. 계속해서 불평과 고민을 반복하는 답답한 포맷이지만 바로 그 지점이 ‘힐링’을 말하려는 많은 기성 콘텐츠들과 확연한 차이를 만든다. ‘내가 왜 이곳에 왔나’ ‘나는 대체 무엇을 얻으려 했고, 무엇을 버리려 하나’. 그의 자문 속에 청년이자 방송국 PD로서, 성인이 되면 복잡한 도심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게 ‘당연한’ 것인지, 그리고 그 외의 삶은 낙오되지 않은 자들을 위한 배경으로 전락시켜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읽힌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고민을 덮지 않고, 판타지에서 멀어지려는 태도가 ‘힐링’을 말하는 예능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힐링’을 팔기 위해 현실은 원래 팍팍하며, 누구든 어떤 낭만적인 산촌, 자연, 이국으로 도피해야 하는 것이라 정의하는 행위를 의심한다. 나를 모르고, 나와 관계없는 사람들이 던지는 아무 이유 없는 위로의 언어에 속아 방황하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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