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말라면 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하는 질문은 선후 관계가 뒤바뀌었다. 프로이트가 오래전에 잘 설명했듯이, 금지하는 걸 하고 싶어지는 게 아니라 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금지하는 거다. 이 세상에 어떤 법도 인간이 망토를 걸치고 하늘을 날다가 비행기와 충돌하는 걸 금지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면 항공운항계의 큰 위협이 되겠지만, 아무도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도둑질을 금지하고, 폭행을 금지하고, 사적 복수를 금지한 이유는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데 내버려두면 공동체가 망가지기 때문이다.
음주운전을 생각해보자. 운전을 하면 편안하게 자기 차를 몰고 파티에 다녀올 수 있다. 음주를 하면 친구들과 즐겁게 놀 수 있다. 음주운전을 하지 않으려면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음주운전은 둘 다 포기하고 싶지 않은 자들의 어리석은 선택이다. 지금도 수많은 인간들이 음주운전을 한다. 조금씩 감소하고 있지만 아직도 매년 음주운전 사고가 2만 건 정도 벌어진다. 단속으로 적발된 음주운전 사례는 2018년에 16만3천여 건이었다. 환경도 요인이다. 우리나라에서 음주운전 사고가 가장 많은 동네는 강남 유흥가가 아니라 외진 공단 근처 유흥가다. 대리운전사가 찾아오기 힘든 곳에서 술 마신 사람들은 직접 운전하기를 선택하기 쉽다. 금지된 행동을 하고서도 적발되지 않고 넘어가는 비율이 높으면 그 욕구는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윤창호법 제정과 함께 한동안 음주운전 사고가 줄어드는 추세였지만, 최근 다시 늘었다.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단속을 잘 안 하기 때문이다.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치거나 적발된 사람들 중에서 바로 그 순간이 첫 번째 음주운전이었던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은 이미 여러 번 혹은 습관적으로 음주운전을 하던 사람들이 결국 걸린 경우다. 실제 2018년 기준 단속에 적발된 사례 중 3회 이상 상습 음주운전자 비율이 19.2%였다. 이들은 이미 음주운전에 중독된 자들이다. 이 지경이 되기 전에 첫 번째 음주운전에서 잡아내는 게 중요하다.
‘갑질’은 다 비슷한 것 같지만 스펙트럼이 꽤 넓다. 진상 고객의 난동에서부터 대기업의 체계적인 하청업체 쥐어짜기까지… 어떤 건 허술한 법체계가, 어떤 건 가해자의 정신 건강 문제가 원인이다. 매니저에 대한 배우의 갑질 사건은 약간 다르다. 아직 정확한 진상을 모르지만 이런 일들은 대개 요즘 말하는 ‘노동 감수성’의 문제다. 노동 감수성은 나를 위해 이루어진 일이 얼마 정도 값을 치러야 하는 노동인지, 그리고 내가 그 값을 제대로 치렀는지에 대한 판단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노동 감수성의 관점에서 갑질을 정의하자면, “실제로 노동을 요구하고는 그건 내가 지불할 노동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아둔한 짓”이다. 매니저와 배우 사이는 가까워지기 마련이다. 친한 사이는 서로 배려하고 부탁도 들어줄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으니 매니저의 배려는 의무인 반면 배우는 그런 의무를 모른다. 즉 둘은 처음부터 불균형 관계다. 그래서 배우는 매니저에게 어떤 노동을 ‘요구’하고는 ‘부탁’이라고 여기는 거다. 처음에는 작게 시작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점차 커진 부탁이 절친에게조차 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하면 사건이 된다. 사실 이건 배우와 매니저를 관리하는 기획사의 책임이다. 둘 사이에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명확히 알려주고 서로 침해하지 못하도록 관리하는 것도 회사 업무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이 문제가 단지 배우와 매니저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윗세대까지만 해도 별것 아니던 일이 지금은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는 사건이 계속 생기는데 이 유형의 갑질도 그중 하나다. 누구나 ‘갑질러’가 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당신은 쉽게 부탁을 하는데, 그는 당신에게 부탁을 하지 않는다면 이미 당신은 갑질을 저지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부당거래>의 명대사는 부탁과 요구 사이의 선을 넘는 당신을 향한 것이다. 계약서를 쓰는 이유도 그 선을 정하기 위함이다. 그러니 우리 제발 계약에 없는 노동은 부탁하지 말자. 친구는 공평한 관계에서나 가능한 거다. 받은 만큼 꼭 주자. 그게 21세기다.
왕따는 인류 역사와 함께해왔다. 어떤 공동체가 형성되고 유지되려면 일탈자에 대한 처벌은 반드시 필요했다. 역사 시간에 배웠던 고대 그리스의 ‘도편추방제’도 따지고 보면 제도화된 왕따였다. 어떤 문화권에서나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거나, ‘튀어나온 못이 망치질을 당한다’는 식의 속담이나 교훈이 존재한다. 지나치게 튀는 존재에 대한 제재 욕구는 사회적 인간의 본성이다. 청소년의 또래 폭력 현상을 연구하면서 깨달은 건, 애들이 어른 보고 배웠다고 하기에는 아이들의 왕따 행태가 너무 창의적이라는 점이었다. 그건 인간의 동물적 본성이다. 청소년기의 왕따는 그렇다 치고, 아이돌 그룹 내에서 벌어지는 왕따는 다를까? 큰 차이 없다. 가해자는 그 행동에 온갖 정당성을 가져다 쳐 바르겠지만 결국 근본을 따져보면 그냥 동물적인 본능대로 행동한 거다. 덜 사회화되고 미숙한 존재가 저지르는 한심한 실수들이다. 본능을 자극하는 상황의 탓도 있다. 어린아이들이 숙소나 방송국 대기실에서 하루 종일 아무 일도 못하고 모여 있기만 하다 보면 언젠가 이런 일이 터지는 거다. 여기에 다른 요소가 하나 추가될 수는 있다. 역시 그들의 소속 기획사다. 군대 내에서 부조리가 왜 벌어지는지 이해하는 분들은 내가 무슨 이야기하려는지 잘 아실 거다. 대개의 군대 부조리는 군 조직 내 상급자가 조장하거나 방치한 결과다. 정말 몰랐으면 무능한 거고. 그들이 왜 그러는가 하면 편하기 때문이다. 자기들끼리 알아서 일탈자 만들고 손봐주니 얼마나 좋은가. 마찬가지로 그룹 구성원들 사이에 엄격한 위계가 만들어지면 회사가 관리하기 쉽다. 그네들도 군 지휘관이나 똑같은 놈들이다. 따라서 그룹 내 왕따 사건이 벌어지면 나는 그들의 소속사가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보곤 한다. 거기서 회사의 수준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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