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요른&카샤
Björn&Katja @beelzebus
우리는 누구를 위해 살고 있을까? 이 질문은 잘못됐다. 우리가 왜 누군가를 위해 살아야 하는지가 맞는 질문일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살아남으려다 보니까. 우리는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잊곤 한다. 목적이 상실된 삶은 쳇바퀴를 돈다. 쳇바퀴를 굴리는 중에는 쳇바퀴 너머가 보이지 않는다. 주어진 목표를 향해 움직이지만 그 목표가 내가 진정 원했던 것인지 다시 고민해본다. 그래도 쉬이 답을 찾지 못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가 쳇바퀴에 갇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요른과 카샤는 스웨덴 사람이다. 그들은 집을 팔았고, 모은 돈을 몽땅 털어 낡은 밴을 구입했다. 그 밴을 타고 떠났다. 세상 밖으로 나왔고, 목적지는 오로라가 떠오르는 곳이거나, 단풍이 지는 곳이다. 그들은 전 세계를 여행하겠노라는 포부를 갖고 있다. 그들의 바이브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적게 일하고 자신에게 더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쳇바퀴를 멈추면 비로소 나를 보게 되고, 바퀴 너머가 보일 것이란 뜻이다.
메르세데스-벤츠 508D 1984
오늘날 메르세데스-벤츠의 대표 밴은 스플린터지만, 그 이전에 활약했던 밴은 508D다. 미니버스로 쓰이거나, 내부 좌석을 모두 제거하고 화물차로도 오래도록 활약했다. 업계에서 은퇴한 지 오래된 차량이지만, 이런 낡은 차를 가져다 새 생명을 부여하는 사람들이 있다. 비요른과 카샤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1984년 모델로 할 일 다 하고 퇴역한 차량을 가져와 직접 수리했다. 전면 그릴조차 제대로 없던, 보닛 커버도 없는 차량이었다. 가진 건 골격뿐이었다. 심지어 흰색과 자주색의 괴상한 색상도 골칫거리였다. 비요른과 카샤는 주요 부품을 탈거하고, 섀시를 직접 채색했다. 번쩍이는 회색빛은 36년 된 밴을 최신 차량처럼 세련되게 만들어줬다. 성공적인 드레스업이다. 심장도 바꿨다. 508D에 백만 마일을 달린다고 알려진 4기통 디젤 엔진을 장착했다. 그리고 밴 라이프를 위해 편의 사양을 추가했다. 크루즈컨트롤이나 애플카 같은 기능 말고, 수온 온도 조절 장치을 설치했고, 샤워 시설과 화장실도 갖췄으며, 주방과 침대, 거실 공간도 만들었다. 와이파이 작동을 위해 태양열 시스템도 장착했다. 지붕의 루프랙은 508D 크기에 맞춰 직접 제작하고 설치한 것이다. 지붕에서 쉴 수 있도록 나무 데크도 구비했다. 이쯤 되면 움직이는 리조트가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차량에 이름을 부여했다. 베엘제부스(Beelzebus)로 명명하자 36세 밴은 생명을 갖고 붉은빛을 내기 시작했다.
로포텐제도
무턱대고 밴을 구입해서 여행한 것은 아니다. 비요른과 카샤는 노르웨이로 휴가를 떠난 적 있다. 자동차 여행이었고, 그들의 발이 되어준 차량은 링컨 내비게이터였다. 자동차 여행 그러니까 로드 트립에 매료된 그들은 베엘제부스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베엘제부스를 타고 북유럽을 여행 중인 그들은 비요른과 카샤 그리고 털이 복슬복슬한 반려견 발타자르. 셋이 함께 경험한 여행 중 가장 인상적인 곳은 노르웨이에 위치한 로포텐제도다. 오로라를 관측할 수 있는 로포텐제도는 노르웨이 로드 트립의 꽃으로 불린다. 아이슬란드보다 더 높은 북극권에 위치한 지역이다. “로포텐제도는 매우 경이로웠죠. 수많은 산세가 험한 지역이었고, 고래 사파리도 방문할 수 있었어요.” 비요른이 말했다. 비요른과 카샤는 하늘을 뒤덮은 오로라를 배경으로 베엘제부스와 함께한 사진을 보여줬다. 하지만 눈 덮인 북극권을 여행하는 건 결코 쉬운 여행이 아닐 것이다. 밴 라이프에 앞서 준비할 것은 무엇일까. “예상치 못한 지출과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비한 준비가 필요해요.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모르니 보험도 필요하죠. 기본적인 수리 도구와 스페어타이어 같은 것들도요.”
나를 위한 시간
밴에서 먹고 자고 휴식을 즐기는 건 집을 떠나 즐기는 일탈이다. 밴 라이프는 일탈과 다르다. 여행이 일상이고, 도로가 터전이며, 집은 네 바퀴 달린 밴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미래에 대한 고민이 있지는 않을까? 예측할 수 없는 내일이 불안하지는 않을까? “집을 팔았어요. 그 외 가진 모든 것을 처분했죠.” 비요른의 대답은 놀라웠다. 현재 그들이 가진 건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베엘제부스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없다는 게 불안하지는 않아 보였다. “일은 덜 하지만 더 많은 걸 경험할 수 있죠.” 스웨덴의 다른 사람들처럼 직장을 갖고 미래를 준비하던 비요른과 카샤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고 한다. 인생의 소중한 시간들, 아니 대부분의 시간을 다른 이들을 위해 일하는 데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이건 누구에게나 해당될 것이다. 또 그 시간은 인생에서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고. “덜 일하고 나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게 가장 중요해요. 적어도 우리에게는 말이죠.” 내 삶을, 그러니까 하루의 시간을 대부분 나를 위해 쓴다는 것. 그 경험은 그들의 가치관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그들이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 “세계를 여행하고 탐험하는 건 감사한 일이에요. 우리를 더욱 개방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줬어요. 또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고 믿고요.”
사고의 순간
밴 라이프를 산다고 해서 매일 운전하는 것은 아니다. 비요른은 하루에 여섯 시간 이상 운전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매일 장거리 운전을 하는 것은 차에게도 비요른과 카샤 그리고 발타자르에게도 피곤한 일이다. 그들은 이동하기보다 머무는 편이다. 흥미로운 장소를 발견하면 최소한 2~3일은 머문다. 더 오래 머물 때도 많고. 장거리 운전을 피하는 것은 피로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루할 법도 하다.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이라 하더라도 몇 시간씩 보는 건 힘들 테니까. “고속도로만 계속 달리는 건 당연히 지루하죠. 하지만 달리는 차 안에서 많은 풍경과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그럼 어디로 이동할까. 그들은 북유럽 대자연을 배경으로 한 사진들을 보내줬다. 그다음 목적지가 궁금했다. “유럽 모든 국가를 여행하려고 해요. 지금 계획 중인데 곧 시작할 거예요.” 유럽 여행을 마친 뒤에는 어떻게 될까? “전 세계를 여행하지 않을까요?” 비요른과 카샤는 밴 라이프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자유를 만끽할 때라고 말했다. 그들이 원하는 곳 어디든 가고, 어디서든 살아볼 수 있다. 물론 위험한 순간도 있다. “산길을 달리던 중 전속력으로 달려온 역주행 차량과 충돌했을 때예요. 좁은 산길이라 멈출 수 없었죠.” 다행히 절벽으로 떨어지진 않았지만 그날의 기억을 가장 무서운 순간으로 꼽았다.
스웨덴 로망스
밴 라이프와 다른 여행의 차이는 나만의 집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호텔이나 모텔에 머무는 것에 비하면 아주 저렴하죠.” 비요른이 말했다. 밴을 개조하는 데 쓴 비용이나, 밴의 감가상각에 대해 말하고 싶었지만 그런 건 의미 없는 질문 같아 관뒀다. 대신 그들이 정착하지 않고 노마드를 지속하는 이유를 물었다. “전 세계를 탐험하고 싶어요. 어디를 가든 우리는 서로가 가장 중요하고 필요해요. 멈추는 곳이 정착하는 곳이고, 우리가 함께 있다면 그걸로 됐어요.” 이것이 북유럽식 로맨스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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