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가드비
Brien Godby @theotherground
자리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인터넷과 연결만 된다면, 작업을 온라인으로 주고받을 수만 있다면 비싼 사무실에 틀어박혀 창의력을 쥐어짜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무선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된 시절부터 노마드는 화두로 떠올랐다. 여행 다니며 일하는 사람이나, 재택근무로 워라밸을 충족하는 이상적인 이야기들이 오갔다. 노마드족이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 것은 그것을 선택한 사람들이 적었고, 또 그것이 실제 업무 환경과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브라이언도 그런 생각을 품은 사람이었다. 그는 플로리다 올랜도에 위치한 프로덕션 스튜디오에서 아트 디렉터 겸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다. 무려 7년 동안. 8년째 되던 해 그는 스튜디오를 나왔다. 세상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도로다. 그는 자신의 일은 사무실이 아닌 도로에서도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을 좇아 밴을 구매했고, 달리고 일하고 쉴 수 있도록 개조했다. 이후 브라이언은 미국의 숨은 보석을 찾아 달리기 시작했다.
폭스바겐 바나곤 웨스트팔리아 1984
36년이 넘은 밴이다. 광택이 흐르는 옅은 올리브색 밴에서 브라이언은 일하고, 먹고, 자고, 쉬고, 달린다. 노트북과 태블릿을 놓을 수 있는 테이블만 갖추면 일할 수 있는 그이기에, 밴의 내부는 사무실보다 집에 가깝다. “실내에는 싱크대와 스토브, 접이식 침대를 장착했어요. 루프톱 텐트는 실내와 연결해 지붕을 여닫을 수 있도록 만들었죠.” 브라이언의 밴은 언제든 손님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 숨어 있는 세컨드 침대를 펼치면 손님도 쉬어갈 수 있다. 사막과 같은 전력이 없는 환경에서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솔라 패널을 설치했다. 냉장고에 공급되는 200와트의 태양열 에너지는 음식의 신선도를 유지해준다. 이 정도면 될까? 밴 라이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브라이언이 답한다. “협소한 공간에서 생활하려면 편리함은 포기해야 해요. 양치질과 설거지 같은 작은 일조차 성가시거든요.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좁은 공간에서 불편한 생활을 감수할 자세를 갖춘다면 더 이상 준비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 “캠퍼 밴과 함께 어디든 갈 수 있을 겁니다.” 브라이언이 말했다.
집 밖은 창의성의 연속
인적 없는 캘리포니아 사막, 수천 년 된 나무들이 빌딩 높이로 자란 숲. 미국 내 어디를 여행하더라도 휴대폰은 신호가 잡히고, 노트북은 인터넷에 연결된다. 달리 말하면 미국에서 가장 깊은 오지를 탐험하더라도 전기와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면, 브라이언은 일할 수 있고, 생활비를 벌고, 내일에 대한 걱정 없이 하루를 즐길 수 있다. 이 현대적인 유목 생활은 8년 차 직장인 브라이언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에게 여행은 훌륭한 영감이 됩니다. 밴을 타고 지나온 모든 곳이 창의성의 연속이었고, 이 여행에서 얻은 영감은 곧 작업으로 이어지죠.” 브라이언은 밴을 타고 집 밖으로 나선 이후 자연에서 살아가며 깨달은 것이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가치다. 단순히 영감을 얻는 수준을 넘어 집 밖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 행복을 발견한다. 브라이언이 밴 하나에 의지해 대자연 속으로 뛰어들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자연과 친밀한 환경에서 자란 덕분이기도 하다. 그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농장이 즐비한 전형적인 미국 시골이다. 가족이 모여 살며 평화로운 유년기를 보냈다. 하지만 그 마을에도 문제는 있었다. 먼저 마을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고, 다른 지역의 문화나 생활, 가치관을 접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시야는 좁을 수밖에 없다. “여행하면서 마주한 문화적인 경험은 고향 마을에서만 생활하며 시야가 좁아진 저를 세상 밖으로 꺼내주었어요. 편견을 떨치게 되었죠.” 브라이언은 바깥세상과 교류하며 세상을 보는 관점이 유연해졌다. 결론적으로 인간에 대한 냉소가 해소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퍼시픽 노스웨스트를 보라
캠퍼 밴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다른 캠퍼들을 만나 어울리고, 음식을 나눠 먹기도 하고, 때로는 샤워 시설을 혹은 하룻밤 묵을 자리를 얻기도 한다. 사람들은 브라이언에게 말한다. 캠퍼 밴 라이프는 늘 위험이 도사린다고. “제가 항상 하는 말이지만 경험상 위험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브라이언이 말했다. 밴 라이프가 늘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다. 끝없이 이어진 미국의 도로를 운전하는 일은 지루할 법도 하다. “하지만 제가 원할 때 언제든 멈추고 머물 수 있죠. 운전은 하고 싶을 때 하면 되고요.” 그는 항상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것을 보기 위한 여행은 자신을 압박하는 것 같다며 손사래 쳤다. 그럼 그가 일부러 찾아 떠난 곳은 아니지만 우연히 만난 곳 중 가장 아름다운 장소는 어디였을까? “퍼시픽 노스웨스트는 제가 가본 곳 중 가장 아름답습니다. 절대적으로요. 바다, 산, 가파른 언덕, 푸른 숲을 동시에 보고 싶다면 그곳이 적격입니다.” 퍼시픽 노스웨스트는 경이로운 풍광은 물론 하이킹, 캠핑할 곳이 많아 미국 캠퍼들에게 인기가 많은 지역이다.
이미 그곳은 집
브라이언은 밴 라이프를 시작했을 당시를 기억한다. 그는 일주일간 한순간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지금도 그 시절을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꼽는다.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콜로라도 산맥의 눈 덮인 도로를 지날 때다. “밴은 통제력을 잃었고, 도로에서 미끄러지고 말았어요. 제가 가진 것들이 거의 부서졌죠.” 그의 오래된 밴은 수리를 마쳤지만 위험하고 또 느린 건 변함없었다. 그럼에도 다시 밴을 끌고 도로에 오른 이유는 뭘까. 브라이언은 느리게 이동하면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밴은 집과 마찬가지예요. 돌아올 곳이 없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에 얽매일 필요 없죠. 이미 밴이 집이니까요.” 1984년형 폭스바겐 바나곤 웨스트팔리아는 현재 그의 집이다. 그는 이 집이 완전히 노후되어 부서질 때까지 미국 전역을 떠돌며 살 것이다. 하지만 그도 언젠가는 정착할 계획이 있다. 단지 그는 지금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많은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기라고 했다. “도로를 달리며 인생의 많은 교훈을 얻었어요. 하지만 당장 정착할 수는 없다. 거대한 기회를 놓치는 것 같으니까요.” 가족에 대한 의무, 책임이 없는 지금이야말로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접하고 싶다고 말했다.
타임캡슐
브라이언은 자신의 1984년형 폭스바겐 바나곤 웨스트팔리아를 추억의 타임캡슐이라고 소개했다. 여행하며 모은 소소한 기념품도 있지만, 밴은 그가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과 장소를 떠올리게 한다. 밴의 내부는 그의 추억으로 채워져 있다. “함께 캠핑한 사람들과 밴을 타고 돌아다닌 장소를 떠올리는 건 매우 흥미로워요.” 브라이언의 지금 목표는 미국 대륙의 50개 주를 모두 여행하는 것이다. “그다음이요? 한국을 방문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언젠가 브라이언의 밴이 홍천 유원지에 있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