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우정수
고전과 신화, 서브컬처의 아카이브에서 길어 올린 상징과 기호들로 자신만의 세계를 빚어내는 회화 작가. 깊고 우묵한 우물 같고 거친 풍랑이 부는 바다 같은 그의 세계를 정처 없이 헤매며 건져낸, 금괴 같은 수집 목록.
루이스 보르헤 보르헤스
그의 마술적 리얼리즘은 한국 정서에 딱 맞다. 그의 모든 작품을 사랑하지만 <알레프>를 특히 좋아한다. 작은 구멍에 세상이 담겨 있듯, 그의 짧은 단편에도 밀도 높은 이야기가 있다. 남미 여행을 가서 그를 더 잘 이해하게 됐는데, 그곳엔 자연을 밀고 도시를 세운 게 아니라, 자연 위에 도시가 있더라. 자연의 힘과 왕성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왜 그런 환상문학들이 나오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보르헤스가 직접 고른 작가 40인의 164개 작품, 총 29권의 시리즈로 이루어진 <바벨의 도서관> 역시 굉장한 영감을 주었다.
모로호시 다이지로 <시오리와 시마코>
시오리와 시마코 시리즈 중 <바벨의 도서관>을 레퍼런스로 만들어진 듯한 에피소드가 있다. 희귀한 도서를 파는 방이 있는데, 책을 한 권 뽑으면 거기에 다른 책을 넣어야 한다. 원하는 책이 있으면 한 권씩 읽으면서 도달해야 하는 거다. 그 안엔 끝없는 미로가 펼쳐지고, 그 안에서 숙식하며 “내가 저 책을 꺼내려고 십 년째 여기 있다”는 사람도, 죽어있는 사람들도 있다. 책에 대한 사랑을 오싹하게 표현한 에피소드지. 내 작품 <월광: 육식의 시간>에선 모로호시의 <밤의 물고기>에서 영감을 받은, 이빨 달린 책이 나오기도 한다.
대서사시
모험을 그린 대서사시의 낭만을 좋아했다. 현대에는 그런 게 없거든. 옛날엔 타지로 떠나는 것만으로 모험이었지만 요새 여행은 비행기를 타고 신속하게 이동해서 ‘힐링’을 하는 개념이니까. 예전엔 보물섬에 가서 보물을 구하는 게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보물섬에 가서 관광을 하는 게 목적이된 시대랄까? 지금은 모든 게 좀 시시해졌다.
바다와 선박
바다와 파도는 고전 예술사에서부터 다양하게 얼굴로 등장해왔다. <오디세이아>의 주 배경도 바다고, 단테의 <신곡>에서도 이야기를 이어주는 건 배다. 세계이자 삶으로 은유되곤 한다. 어머니는 바다를 보면서 자란 여수 사람이라 도시에서도 항상 물을 찾으셨다. 나도 그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예전 놀이터들은 모래 놀이터로 비가 오면 놀이터가 물에 다 잠겼다. 거기서 모래로 둑을 쌓고 수로를 파고 소금쟁이를 띄우고 흙탕물을 잔뜩 뒤집어쓴 채로 왔는데도 엄마는 그걸 좋아해주셨다. 그때가 생각난다. 나도 의식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바다와 배를 그리고 있더라. 의식한 후로는 그 이미지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Where is My Voice
오는 11월에 여는 개인전 제목이다. 최근 전시를 많이 하며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목소리가 잘 안 나오더라. “내 목소리 어디 갔나”라고 혼잣말을 했는데, 그 표현이 재미있어서 전시 제목으로 삼았다. 목소리에 대한 설화와 신화를 떠올려보니 세이렌과 에코가 있더라. 세이렌은 인간의 목소리를 갖기 위해 인간을 유혹해 잡아먹고, 에코는 남을 따라 하는 목소리만 남아있는 존재다. 둘 다 사회적 약자고 여성인데, 하나는 괴물이 되어 복수를 하고 하나는 남을 따라 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게 아이러니하더라. 이런 존재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작업을 구체화하는 중이다.
마트스야
프로젝트 때문에 스리랑카에 머물 때 힌두교에 흥미를 가지게 됐다. 벼룩시장에서 ‘우파니샤드’의 표지를 발견하고 궁금해서 읽게 되었는데, 이중에 가장 매혹적인 신은 마트스야였다. 푸른 피부에 금빛 후광을 둘렀고, 연꽃을 쥐고 있다. 반인반어신으로 홍수의 신이라 불리며, 노아의 방주와 유사한 설화를 지니고 있다.
종교
비현실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이 세계의 역사 흐름을 지배해왔다는 게 흥미롭다. 동시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동네에 빨간색 십자가가 더 많더라. 세기말 ‘휴거 소동’이 깊은 인상으로 남아 <불한당들의 그림>으로 그렸다. 종교학을 공부하기도 했고, 사이비 종교들의 양상이 흥미로워 한국의 이단 종교들을 모은 책을 탐독하기도 했다. 어딘가 보르헤스의 불한당들과 닮은 구석도 있다. 과학과 지식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본성, 욕망은 그것을 넘어서는 힘을 갖고 있다고 믿게 된다. 물론 나는 무교이다.
성경
‘메시아 시대’라 예수뿐 아닌 예언자들이 엄청 많은 시대였는데 그 중에서 살아남은 이야기이니 흥미로울 수밖에. 서사 자체로 흥미로워 구약과 신약을 모두 읽었다.
지옥
단테의 <신곡>의 주된 콘텐츠는 지옥편이다. 지옥이 제일 재미있고 상상력이 풍부하게 발휘되지. 생각해보자. 보편적인 천국의 이미지를 상상한다면 여호와의 증인에서 보여주는 막연한 이미지 이상으로 떠오르는 게 있는가? 하지만 지옥은 굉장히 구체적이지. 어느 종교에서나 그렇다. 그리고 고통은 언제나 새로이 개발되고 상상될 수 있다. 그렇기에 천국보다는 지옥에서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내 작품 역시 그렇다.
윌리엄 블레이크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단테의 <신곡>과 구약의 <욥기>에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작은 그림으로도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담대한 구성, 밀도, 존재감이 놀랍다. 내가 좋아하는 신비하고 추상적인 소재들을 활용하면서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흥미롭다.
사무엘 베케트
독일 부조리극을 좋아한다. 연극보다는 희곡 자체를 좋아한다. 베케트 극은 무의미한 대사의 반복 끝에 의미가 만든다. 이 반복이 리듬을 형성하고,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한다. 내 작품에서도 반복적인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최근 작업 중인 작품에는 인물이 전부 왼쪽 방향을 응시하며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과거엔 강박, 분노, 넘치는 감정과 서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을 많이 했는데 작가로서 태도가 변화한 것 같다. 점점 더 관조적이고, 담백하게 표현하는 방식들을 찾아가게 된다.
이승훈 시집 <당신의 방>
과거 한국 시인들의 서정적 전통에서 벗어나 실험적이고 구조적인 시들을 쓴 시인이다. 반복적인 시구가 조금씩 변주되면서 감정이 고조되고, 현상에서 환상으로 건너가는 리듬과 배열이 내가 그림 그리는 방식과도 닮아있다. 무의미한 이미지를 반복해 배열하다가 간극에 서사를 넣을 때가 있거든. 동시대 시인 중엔 황인찬 시인이 그와 닮았다고 느낀다. <희지의 세계>는 정말 좋아하는 시집이다.
아가일 패턴
요즘 내 작품의 특징은 패턴을 반복한다는 거다. 아무런 뜻도 없이 작품 내에서 밀도를 만들어내는 장치라 좋다. 바리케이트처럼 이미지와 이미지를 분절하고, 시작과 끝을 만들 수도 있다.
F(X) ‘송곳니’
이 그룹의 은유투성이의 가사를 좋아한다. 특히 ‘송곳니’가 훌륭하다. 흔히들 말하는 걸그룹의 어떤 컨셉 분류에 들어가지 않는 그룹이란 점에서도 좋아했다. SM이라는 대형 기획사에서 기획하고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뒀다는 점이 신기하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