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토요일 오후 대명이가 말했다. “드라마를 잘 마쳤으니 인터뷰를 하자. 네가 해줘.” 대명이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재미있게 봐준 분들에게 보답하고 싶고, 혹시라도 자신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이 계시다면 최대한 진솔하게 들려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 인터뷰는 친구가 해줘야 한다고. 인터뷰와 화보 촬영은 내가 운영하는 한남동의 카페에서 진행했다. 그것 역시 대명이가 정했다. 나는 대명이가 나에게 선물을 주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의심할 바 없이 대명이라는 존재 그 자체다. 한 명의 배우로서, 아니 사람으로서, 대명이를 존경하고 대명이에게 배운다. 그래서 나는 여기 분명히 적어둔다. 대명이는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 혼자 있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사실이다. 부디 이 인터뷰가 내 친구 대명이를 응원하는 팬들에게 선물이 되면 좋겠다.
어떤 질문하면 좋겠어?
글쎄. 내가 질문할까?
갑자기 노트를 왜 꺼내?
나 인터뷰할 때 원래 이래. 이상한 얘기할까봐, 대답하면서 단어를 적는 게 버릇이 됐어.
너 이 시계 오래 찬다.
돈 벌고 산 거야.
이거 한 2만원 정도 해?
어, 그쯤. 종로 시계 골목에서 샀어. 요즘은 이런 거 안 나오지. 다 LED잖아. 근데 이건 누르면 불빛 나와.
좋은 거 좀 사라.
이거 좋아. 어릴 때부터 갖고 싶었던 거야. 돈이 없어서 못 샀지. 아무튼 40대가 되니까 어때?
갑자기? 너 요즘 계속 그 얘기 하더라.
서른 살 되던 날 노래방에서 ‘서른 즈음에’를 불렀거든. 내가 중년의 삶으로 들어가나 보다, 이런 생각을 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굉장히 어렸더라고. 마흔이 넘어서야 그 노래 가사의 의미를 조금 알 거 같아.
정말 알겠어? 조금이나마?
알겠다기보다 조금 습득을 했다? 인간관계에 대해. 이렇게 하면 사람들한테 상처를 안 주겠구나 정도는 아는 거 같아.
네 자신을 너무 구속하지 마. 상처 주고 상처 받아. 난 네가 자유로워지면 좋겠어. 사람도 많이 만나고.
하하, 우리 5년 전에도 비슷한 얘기한 거 같다. 그렇지?
지나가다가 사람들이 알아보면 아직까지는 신기하고 좋지?
그럼. 감사하지. 예전에 인터뷰할 때도 비슷한 얘기를 했던 거 같은데, 만약에 내가 20대 초·중반에 이런 경험을 했다면 막 신났겠지만, 오히려 지금 이런 경험을 해서 다행인 거 같아.
왜?
들뜨지 않을 수 있어서.
들떠 있으면 왜 안 돼?
들떠 있으면 실수해. 그러면 나와 연결된 많은 존재, 작품이 될 수도 있고 같이 연기하는 친구들이 될 수도 있고. 나 때문에 피해를 보고 상처를 받아야 하니까. 너도 내가 구설수에 오르면 기분이 안 좋을 거 아냐.
아니, 나는 너를 믿어.
그렇지만 조심해야 해. 내가 조금이라도 잘못된 행동을 해서… 음, 특히 걱정되는 건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끝냈잖아.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할지도 몰라. 저런 의사가 진짜 있으면 좋겠다, 내가 아는 누군가가 저런 사람이면 좋겠다. 근데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그 사람들의 바람이 깨져버리는 거잖아. 내가 진짜 의사가 아니고 진짜 양석형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에이 그럼 그렇지, 저런 의사가 어딨어, 김대명도 그냥 저런 사람이네, 실망하고 그게 작품을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잖아. 나는 이런 것이 중요하거든. 이걸 지켜내는 것. 나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
다행? 뭐가?
<미생> 김 대리도 그렇고 <슬기로운 의사생활> 양석형도 그렇고 사람들이 좋아해주잖아. 마음에 와닿는 게 있다는 거겠지? 나는 그 감정을 지켜주고 싶어. 그리고 다행인 건, 연기하면서 나도 그 둘처럼 살려고 노력했고 여전히 그래. 어떤 이야기인지 알겠지?
내가 볼 때는 김 대리도 이미 너고, 양석형도 그래. 너랑 닮은 존재를 연기한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야. 너는 정말로 그렇게 살았고, 그 삶을 배우가 되어서도 이어가는 느낌이야.
그런가? 조금이라도 그렇게 보인다면 작가님, 감독님 덕분일 거야.
30대 때도 연기를 했고 40대인 지금도 연기를 하잖아. 조금 달라?
다르지. 더 잘하고 못 하고를 떠나서 30대의 나와 40대의 내가 뭐가 다를까 생각하면, 결국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어. 그게 연기에 영향을 주는 거 같아. 연기도 결국 사람이 하는 거잖아.
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가 되는 걸까?
그 지점을 늘 고민해. 좋지 않은 사람이 하는 연기가 과연 좋은 연기인가, 라는 지점. 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이길 바라지, 나도.
근데 요즘 학교 다닐 때 갔던 냉면집 얘기 자주 하던데, 옛날 생각 많이 나?
응.
왜?
내가 다닌 초등학교에 자주 가. 고등학교 운동장도 가고. 그때의 내 모습이 보고 싶은가봐. 가면 마음이 편해져. 내가 잘 살고 있나 보다, 그때의 나한테 이야기를 하지. 나 지금 잘 살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그때의 나한테 말해주고 와.
응. 근데 우리 마흔 살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려 보이지 않냐? 누가 우릴 40대로 봐!
예전에는 결혼해서 애 낳고 사는 친구들 보면, 어떡하냐, 아저씨 다 돼가지고… 이랬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런 친구들이 대단한 거 같아. 슈퍼맨이지. 사람들이 나보고 ‘동안’이라고 하면 좋으면서도 미안해. 내 삶이 평범한 40대 삶보다 나아 보이는 거 같아서. 나은 게 없는데….
철들었니?
철든 건가? 40대가 되니 이런 생각을 하네.
앞자리가 ‘4’로 바뀌니 확실히 많이 달라져. 심지어 우리 엄마 아빠는 나를 어려워하는 거 같아.
그렇지. 그게 너무 속상하더라고. 너도 알겠지만 우리 집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잖아. 아버지는 작은 교회에서 아직 목회 중이셔. 소신이지. 나는 아버지 존경해. 소신을 지켜드리고 싶어. 그러려면 생활비를 내가 책임져야 하는데, 그것 때문에 부모님이 부담 갖거나 어려워하실까봐 걱정돼. 조금 복잡하지. 자식 입장에서는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편하게 사셨으면 좋겠는데. 부모님은 자식 돈이니까 마음대로 못 하시겠다는 거고….
돈 많이 벌자. 부모님이 너한테 기대어도 부담되지 않을 만큼. 나도 너한테 기대어도 부담되지 않을 만큼.
옛날에 비하면 나는 지금도 좋아. 빚 없이 사니까. 너는 요즘 어때? 5년 사이 변한 게 많잖아. 사업체도 운영하고, 이렇게 큰 카페도 꾸려가고. 배우 친구가 너 일하는 데 와서 화보 촬영하니까 기분 어때?
갑분 카페 홍보? 나는 그냥 친구가 잘돼서 좋아.
네가 분명하게 서 있는 게 나는 좋아. 기준점이랄까, 신호등 같다고 할까. 쟤가 바르게 서 있구나, 나쁜 짓 안 하고. 자주 안 봐도 너는 늘 거기 서서 네 삶을 잘 살고 있어. 그래서 언제든 나는 네가 있는 곳으로 찾아올 수 있어.
글 쓰는 재주 덕분에 친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나는 많이 좋다.
나도 마찬가지야. 이 카페에서 화보 찍고 싶었어. 가게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면 좋겠다, 이런 생각도 했고. 난 이 공간이 좋아. 네가 공들여서 만든 공간이니까.
이런 말 하는 거 홍보 멘트 같지만, 카페 조명이랑 네 얼굴 톤이랑 어울리더라.
다행이다. 하하. 아까 사진 봤는데, 어떤 느낌이냐면. 공간이 안 느껴진다고 할까. 보통은 사진을 보면 공간이 어떤지 형태가 그려지잖아. 그런데 오늘 찍은 사진은 공간보다는 빛이 느껴진단 말야. 이런 공간이 드물잖아.
좋구나, 친구랑 일하는 건.
복 받은 거야, 우리는. 복 받은 거야.
복 받았다는 얘기를 왜 두 번이나 해?
다르게 해석할 수가 없어. 내가 뛰어나게 연기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뛰어나게 잘생긴 것도 아니고.
연기 잘해, 너.
아니야.
엊그제 네가 그랬잖아. 밖에 돌아다니기보다, 혼자 충분히 있고, 힘을 덜 쓰고, 그렇게 해서 축적된 정서나 감각 등을 연기할 때 쏟아 붓고 싶다고.
나를 좀 더 잡아두고, 내가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최소화하는 거지.
즐거움은 연기할 때 얻는 거지?
그렇지.
그런 마음이면 연기를 못할 수가 없겠어.
그래도 두렵지. 그렇게 했는데도 못하면 얼마나 슬프겠냐.
앞으로 시상식에서 수상자가 된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어?
다행이다.
어떤 게?
내 삶도 그렇고. 상 받은 것도, 여기까지 배우 생활 잘해온 것도, 다행이다.
부모님이 네가 나오는 작품 다 보셔?
다 보시지.
<슬기로운 의사생활> 보고는 뭐라셔?
많이 웃으시지. 내가 그런 모습으로 나와서 좋으신가봐. 나는 진짜 작품이 되게 좋았어. 뭐가 좋았냐고 물어본다면, 음… 중·고등학교를 다시 다니는 기분이었어. 같이 연기하는 친구들, 감독님, 스태프, 작가님 모두 존경하고 좋아해. 이런 작품을 했고, 이런 작품이 어딘가 남아 있다는 게 정말 좋아. <미생>도 어딘가 그렇게 잘 있겠지.
나는 네가 나오면 잘 안 봐.
부끄러워?
몰라, 왜 그런지. 이번 드라마도 인터뷰 때문에 봤어. 그런데 와, 저기 내 친구가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이랑 스태프들이랑 일하고 있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어.
다행이다.
사실 걱정도 했어. 다들 유명한 배우들이어서, 카메라 꺼지면 너한테 시크하게 굴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걱정.
그런 사람 없어. 정말로. 감독님과 작가님이 좋은 배우를 데려다놓은 거 같아. 그만큼 고민을 많이 하신 거지.
네 연기가 제일 좋았어.
아니야.
나는 냉정해.
그렇지, 너는 냉정하지. 고맙다. 내가 드라마 마지막 회에 이런 대사를 하거든. 친구들한테… 시간 가는 게 너무 아깝다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 거라고. 그때 나 울컥했거든. 내가 나한테 하는 이야기 같더라고.
연애도 하자.
때가 있겠지. 조심스럽지.
네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뭔지 알아? ‘조심스럽게’ ‘상처 안 주게’ ‘팬들은 죄가 없다’ 이거 세 개.
결국엔 나한테 하는 이야기야.
이 정도만 할까?
그래. 냉면이나 먹으러 가자.
근데 이 인터뷰 많이 볼까? 우리 열심히 준비했는데 많이 안 보면 서운할 거 같아, 나는.
잘 써주세요.
나는 당연히 잘 쓰지. 그런 걸 떠나서 너 좋은 애야.
그렇지도 않아. 조심스러워.
악! 그만 좀 조심해.
하하. 이런 게 활자화되어서 공개되는 게 걱정스럽기도 해. 김대명 좋은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할까봐. 나 좋은 사람 아닌데. 그냥 평범한 사람인데.
내가 또박또박 적을 거야. 얘 좋은 사람입니다. 쓸데없이 걱정 진짜 많이 합니다.
그런 것들이 어쩌면 잘해야 한다는 일종의 무게감 같은 게 되겠지.
넌 그 무게를 받아들일 거잖아.
응.
됐어, 그럼. 냉면 먹으러 가자. 다음 인터뷰는 반백 년 살았을 때 하자.
야, 금방일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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