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변한다. 사용하는 물건이 달라지고, 소통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읽고 쓰는 형식은 물론 가치 판단의 기준도 전과 다르다. 이런 마당에 뉴스 기사가, 기업과 제품의 언론 홍보 형태가 변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단지, 너무 늦게 변한 이유가 궁금할 뿐. 보도자료의 결도 달라졌다. 정보만 적시하는 게 아니라, 홍보 담당자의 사견이 깊이 침투한 콘텐츠가 등장하기도 했다. 변화하는 미디어 생태계에서 언론 홍보의 돌파구는 어디에 있을까.
외국계 음반사인 유니버설뮤직이 자주 배포하는 보도자료는 새 앨범 발매 소식이다. 보도자료는 언론 홍보의 가장 기본인 소재로, 국내 엔터테인먼트사의 경우 가수의 컴백 소식부터 방송 출연, 팬 미팅 등 활동 기간 내내 보도자료를 통해 미디어에 소식을 업데이트한다. 새 음반이 나왔을 때 보도자료는 이를 처음 알리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무턱대고 많이 내보낸다고 해서 모든 아티스트가 유명해지진 않는다. 보도자료의 효과를 정확히 측정할 순 없으나, 미디어에 자주 노출될수록 아티스트 인지도가 올라가고, 아티스트의 명성은 자연스럽게 차트 성적으로 이어진다. 안타깝게도 여기서 외국계 음반사의 한계가 드러난다. 음반사의 경우 새 앨범 발매 외엔 보도자료로 다룰 수 있는 소식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소재 자체가 한정되어 미디어에 자주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해 드라마틱한 언론 홍보 효과를 누리기 어렵다. 또 국내 미디어는 국내 소식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해외 팝 아티스트의 신보 소식은 K-팝 스타의 컴백 소식과 비교해 기사로 보도되는 개수도 적은 편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해서 언론 홍보를 멈출 수 없는 노릇이다. 언론 홍보 담당자는 언제나 ‘어떻게 하면 우리 회사와 상품을 잘 알릴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세운다.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유니버설뮤직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정규 앨범은 물론 신인 아티스트의 디지털 싱글 발매 소식까지 보도자료로 내보냈다.
그러는 사이에 미디어 환경은 급변했다. 디지털 미디어는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력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고, 그 형태도 매우 다양해졌다. 유니버설뮤직 역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공식 채널을 비롯한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를 새로운 홍보 마케팅 수단으로 적극 이용하고 있다. 물론 기존대로 보도자료 배포도 계속하고 있다. 다만 그 전체 개수가 이전과 비교해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음악 장르와 소비층에 따라 각자 다른 홍보 마케팅 전략을 택하기 때문이다. 현재 유니버설뮤직은 크게 팝, 클래식, 가요 총 3개 장르의 앨범을 발매하고 있다. 프로덕트 매니저는 앨범 발매 전 보도자료 초안을 작성해 홍보 담당자에게 넘긴다. 홍보 담당자는 이를 퇴고하여 앨범 발매일에 배포한다.
하지만 모든 일에 명암이 존재하듯, 디지털 미디어가 중심이 된 홍보 전략 역시 그러했다. 보도자료는 미디어에 우리의 ‘상품’을 알리는 첫 단계인데, 이를 생략하니 좋은 기회가 찾아왔을 때 잡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기회는 바로 내한 프로모션이다. 입버릇처럼 하던 소리 중 하나가 “우리도 가수 직접 데리고 다니면서 홍보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 한국에 있지도 않은 가수를 홍보하려니 너무 힘들어”였다.
지금은 코로나19로 내한 프로모션이 모두 중단된 상태지만,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꾸준히 내한하는 아티스트의 숫자가 늘어나는 추세였다. 점점 많은 아티스트가 내한하며 겪은 어려움이 있다면, 바로 인지도가 낮은 아티스트의 미디어 프로모션을 잡는 일이었다. 음반사 직원 입장에선 익숙하지만 미디어 입장에선 아직 생소한 아티스트는 단신 인터뷰 하나 잡는 것도 녹록지 않았다. 음원 사이트 팝 차트에선 이미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어도, 정작 미디어 프로모션이 필요할 때 기자들이 몰라서 일이 성사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했다. 내한하는 신인에 대해 인터뷰를 요청하면 “아, 정말요? 근데 처음 듣는 아티스트라… 적극 추천하시니 얘기는 해보겠지만, 힘들 수도 있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인터뷰 진행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이런 대화가 오고갈 때마다 언론 홍보 담당자로서 자괴감을 느꼈다. 보도자료는 오직 기사로 보도되었을 때만 가치 있다는 근시안적 사고가 불러온 씁쓸한 결과였다. 즉각적인 효과만 볼 수 있는 홍보 마케팅에만 집착한 나머지 정작 아티스트를 다양한 채널에 소개하고 알려야 한다는 본질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기자가 하루 동안 받는 보도자료 메일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적게는 2백 개에서 많은 날은 5백 개 가까이 된다. 수많은 보도자료들 틈바구니에서 눈에 띄기 위해 유니버설뮤직은 ‘탈’ 보도자료 전략을 택했다. 싱글이든 앨범이든 발매일을 놓치면 시의성 때문에 보도자료로 내보낼 수 없고, 내한 공연을 열거나 시상식에서 상을 휩쓰는 정도가 아니면 우리 아티스트를 소개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지도가 거의 없는 신인 아티스트를 보도자료를 통해 알리기는 더더욱 힘들었다. 그렇게 신예 뮤지션에 대한 미디어의 인지도를 높이는 걸 목적으로 ‘이유식(이번 주 유니버설뮤직 소식)’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이유식’은 반드시 지켜야 할 글쓰기 규칙이 없고, 뮤직비디오나 오디오 링크를 메일 내에 바로 걸어서 감상할 수 있다. 이러한 장점들 덕분에 훨씬 더 다양한 소식을 다룰 수 있게 됐다. 그렇게 보도자료로 내보내기엔 늦거나 애매한 뉴스들을 매주 월요일 ‘이유식’을 통해 알리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눈여겨보고 있는 신인 아티스트 서너 명을 묶어서 소개하기도 하고, 동료 직원들의 추천 곡을 들려주기도 한다. 새롭게 합류한 레이블을 알리는 것도 보도자료가 아닌 레이블 담당자의 추천 곡 소개로 대체했다. 최근엔 전속 아티스트 A&R 담당자의 미니 인터뷰를 내보내기도 했다. 최근 레이디 가가의 새 정규 앨범 <Chromatica> 역시 보도자료가 아닌 ‘이유식’을 통해 다루었다.
다행히도 처음 우려와 달리 “신선하다” “잘 보고 있다” 등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꾸준히 받고 있다. 아직 초기 단계라 단정 지어 말하긴 어렵지만, ‘이유식’을 통해 미디어에 신인 아티스트 알리기라는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했다. 아마 쓰는 입장에서도, 읽는 입장에서도 부담 없는 가볍고 유쾌한 글이 가져다준 긍정적인 효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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