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중단된 축구가 돌아온다. 그 누구보다 재개를 바라는 팀이 있다. 16년 만에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바라보는 리즈 유나이티드다. 리즈는 죽지 않았고, ‘리즈’ 시절이 펼쳐지기 직전. 전술에 미친 마르셀로 비엘사가 제자 주제프 과르디올라 앞에 혁명적인 3-3-3-1 포메이션을 선보이려고 한다. 그리고 카타르 자본이 리즈를 노리고 있다고!
“이 친구는 이때가 ‘리즈’ 시절이었다니까요. 하하.” 예기치 못한 순간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가 지닌 위대함을 느낄 때가 있다. 이 표현의 주인 격인 앨런 스미스는 은퇴한 지 오래고, 리즈 유나이티드는 2004년 강등된 이후 프리미어리그에 발도 못 붙이고 있는데 ‘리즈 시절’은 여전하다. 조금 진부하게 표현하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축구 지식 유무에 상관없이 이 표현을 쓴다. 한 축구 해설자는 여자친구를 휴대폰에 ‘리즈’라고 저장했다. 있을 법한 일이라고? 그 별칭을 정한 건 여자친구였다. 시쳇말도 생로병사가 있지만, 리즈 시절은 생명력을 이어갈 가능성이 상당하다. 리즈 유나이티드는 2019- 2020시즌 챔피언십(2부 리그) 37라운드 현재 1위다. 2위까지 1부 리그로 바로 승격할 수 있는데 3위 풀럼과 승점 차가 7점이기에 프리미어리그 복귀할 확률이 높다. 39라운드 3위 풀럼과의 매치에서 승리한다면 아주 유리한 고지에 선다. 리즈는 코로나19로 인한 휴식기 전에 5연승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래도 러셀 크로를 비롯해 리즈를 좋아하거나, 리즈의 과거를 아는 이들은 불안할 수 있다. 리즈는 2018-2019시즌 32라운드까지 1위를 달렸고, 42라운드까지도 2위에 머물다 마지막에 3위로 내려앉았다. 더비 카운티와 벌인 플레이오프에서는 스파이까지 보내 훈련을 훔쳐봤지만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리즈는 1999-2000시즌 UEFA컵(현 유로파리그) 4강, 2000-2001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오르며 화려하게 타올랐다. 당시 팀에는 앨런 스미스, 마크 비두카, 로비 킨, 해리 키웰, 리오 퍼디난드, 폴 로빈슨 같은 스타플레이어들이 즐비했다. 금발에 곱상한 외모를 지닌 스미스는 화려하진 않지만 알토란 같은 골을 기록했고 한국을 강타한 표현을 만들어냈다. 퍼디난드와 스미스는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박지성과 한솥밥을 먹었다.
리즈의 비극은 2001년에 시작됐다. 재정 문제로 인해 2007년에는 3부 리그까지 떨어졌고 영원히 빛을 잃는 듯했다. 2010년에야 다시 챔피언십으로 돌아왔고, 2017년 안드레아 라드리차니가 구단을 완전히 인수하며 조금씩 힘을 내기 시작했다. 리즈는 2018년 6월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을 데려오며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비엘사는 비현실적이고 집요한 전술과 기이한 언행으로 초반에는 팬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지만 시즌이 끝난 뒤에는 엄혹한 현실로 돌려보냈다. 비엘사의 별명은 ‘광인’이다. 순화해서 그렇지 사실 ‘미친 놈’에 가깝다. 평상시에도 그렇지만 축구에 관해선 더욱 적합하다. 비엘사는 축구만 보고, 축구만 생각한다.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들이 여전히 ‘스파이 게이트’를 두고 킬킬대고 있지만, 비엘사는 이기기 위해서는 더한 행동도 했을 것이다. 그는 25세에 처음으로 대학팀을 맡았는데 20명을 선발하려고 3천 명을 살펴보기도 했다. 그가 구사하는 축구는 미치도록 공격적이지만 이기는 데 가장 큰 의미를 둔다. 이상을 꿈꾸면서도 현실적으로 이길 수 있는 방법론도 함께 가르친다. “공을 소유하는 것과 되찾는 것의 중요성은 같다고 본다.” 주제프 과르디올라 맨체스터시티 감독은 그를 정신적 스승으로 생각하고, 손흥민의 감독 마우리시오 포체티노는 실제로 비엘사 밑에서 뛰었다. 과르디올라는 바르셀로나 시절 비엘사와 맞대결을 앞두고 ‘지상 최고의 감독’이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지난 5월, 폭탄 테러를 겪고 트라우마로 고생하던 영국 조각가 토니 클라크는 비엘사 감독 동상을 제작했다. 그는 자신처럼 정신 건강이 좋지 않은 이들을 위한 사업을 지원하려고 동상을 만들었다. 그는 2002년 10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2백2명이 사망한 폭탄 테러에서 살아남은 뒤 어려움을 겪었지만 리즈를 보며 힘을 얻었다. 클라크는 “리즈는 내게 구원자다”라고 말했다.
비엘사가 쓰는 포메이션은 그만큼 특별하다. 3-3-3- 1 포메이션(3-4-3, 3-3-1-3으로 변형 가능)을 쓰면서 상대를 무너뜨린다. 감독들은 대개 경기장을 수평(공격, 중앙, 수비)으로 나누는데, 비엘사는 이 포메이션을 쓰며 경기장을 수직으로 3등분한다. 중원에 선수 6명을 배치해 지배력을 강화하고, 기동력이 좋은 선수 4명으로 측면에서도 활발히 싸우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중앙을 단단히 하면서 수비하지만 공이 중앙으로 들어오더라도 측면 선수들은 중앙으로 따라 들어와 수비하지 않는다. 체력을 아끼면서 다음 상황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이런 포메이션은 어렵지만 잘만 활용하면 상대를 높은 곳에서 효율적으로 압박하고, 공수 전환도 빠르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선수들이 삼각 모양을 만들며 패스 길을 확보한다. 상대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비엘사는 예상과 달리 롱패스도 많이 사용하는데 수비수도 미드필더 같은 능력이 있기에 효율적이고 빠르게 상대를 위협할 수 있다. 13골을 터뜨린 중앙 공격수 패트릭 뱀포드는 리즈의 중심이다. 뱀포드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어떤 종류의 패스든 사뿐히 잡아서 골을 터뜨린다. 침투와 한 박자 빠른 슈팅은 변칙적인 리즈에서 가장 교과서적인 무기. 뱀포드가 막히면 2선에 있는 마테우스 클리크가 나타난다. 클리크는 흘러나온 공을 해결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 그의 슈팅은 느리다 못해 나른하지만 정확하고 치명적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뉴욕시티에서 임대 이적한 잭 해리슨의 왼발도 주목할 점이다. 측면 공격수지만 무엇보다 경기를 운영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아무리 팀이 조직적이더라도 안 풀릴 때가 있기 마련인데 이따금 해리슨이 마법을 부리며 팀을 구해낸다. 프랑스 대표팀 공격수 앙드레-피에르 지냑은 마르세유에서 비엘사와 함께한 뒤 이런 말을 했다. “그는 내 선수 인생에 영원히 남을 흔적을 새겼고, 내 축구관을 바꿔버렸다. 그는 말을 많이 하지 않지만, 그 방식은 어느 누구와도 다르다.” 아직도 못 믿겠다면 비엘사가 전술 회의 시간에 잠든 뱅자맹 망디(맨시티)에게 한 말로 마지막을 맺겠다. “언젠간 너도 모든 걸 알게 될 거야!”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