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업으로 정한 게 언제였는지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사진에 관한 몇몇 편린이 기억에 새겨졌을 뿐이다. 1970년대 후반이었다. 당시 아버지는 광고 관련 일을 하셨다. 아버지는 일을 시작할 때부터 든든한 우군으로 삼았던 무기가 있다. <커머셜포토>다. <커머셜포토>에는 당시의 다양한 사진들이 실려 있었다. 정확히는 상업 사진 트렌드를 소개하는 잡지였다. 아버지가 곁에 두었던 책이라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어려서는 그림책 삼아 놀기도 했다. 이후 <커머셜포토>는 상업 사진가의 길로 나를 인도해준 길잡이가 되었다. 지금도 가끔 펼쳐 보곤 한다. 세월이 지난 책이지만 여전히 그 속에는 놀라움이 가득하다.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얼리어답터였다. 아버지는 지금보다 더 젊고 잘생겼던 시절, 새로운 전자제품이 나오면 직접 써보는 남자였다. 1990년대 중반에는 8mm 캠코더가 유행했다. 손안에 착 감기는 작은 캠코더였는데, 아버지는 그걸로는 부족하셨는지 커다란 캠코더를 사오셨다. 일본에서 직접 꼼꼼히 따져보고 구매한 제품이다. 지금 보면 PD들이 쓸 법한 전문가용 장비인데, 아버지는 이 캠코더로 우리 가족을 촬영하셨다. 순전히 취미용이었다. 자식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남기고자 하는 아버지의 의지가 담긴 캠코더다. 8mm 테이프에 담긴 영상을 지금 다시 보는 건 쉽지 않다. 캠코더와 TV를 케이블로 연결하고 틀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번거로워 잘 보게 되진 않는다. 최근에야 촬영을 위해 캠코더를 꺼냈을 때 테이프를 재생했다. 영상 안에는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 영상이 아버지의 시선이라고 깨달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버지는 나를 저렇게 바라보셨구나. 낯설고 익숙하고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1990년 10월 27일.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젊은 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식을 한 날이다. 그리고 이 시계는 부모님 사랑의 증표. 두 분은 20대 초반 풋풋한 나이에 만나 7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하셨다. 이 시계를 서로의 팔목에 채우며. 1년 후 내가 태어났고 9년 후 동생이 태어나는 등 여러 가지 일을 치러내셨다. 30년의 세월은 부모님에게 주름을 주었고 반짝이던 금시계에는 녹이 많이 슬었다. 올해는 부모님의 결혼 30주년이다. 이제는 내가 웃음꽃 피우실 수 있게 보답할 차례다. 우선 결혼기념일 선물로 녹슨 예물 시계부터 반짝이게 고쳐드려야겠다.
할아버지께서 사진관을 운영하셨다. 이 카메라는 과거에 사진관에서 대여용으로 사용한 물건이라는데, 그래서 집에 뒹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버지는 이 녀석의 피사체로 어머니를 자주 담으셨던 것 같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은 이혼했고, 어머니 사진은 대부분 사라졌다. 나도 이 녀석으로 내 여자친구들을 종종 찍었다. 굳이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로 남기려던 기억들은 헤어지면서 역시 정리되었다. 이제 사진은 찍는 것보다 없애는 게 중요하다. 디지털은 어딘가에 남아 영원히 복제될 우려가 있지만, 아날로그는 찢고 태우는 순간 분명히 없어진다. 일상을 SNS에 전시하는 요즘, 중요한 건 정말로 무엇을 남길 것인가다. 한때 사랑했던 감정은 당신 영혼에 남을 테니, 부디 헤어진 이의 사진과 영상은 꼼꼼히 없애시라. 그것이 사랑한 사람에 대한 헤어짐의 예의다. 지금은 소멸의 의미를 되찾아야 하는 시대다.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의 책장을 자주 기웃거렸다. 무엇인가 재미있는 책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어서였다. 하지만 초대 교회사를 전공한 아버지의 책 중에 어린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은 거의 없었다. 다만 그 가운데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이 눈에 띄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젊은 날에는 마니교를 믿었으나 이후 개종해 초기 교부철학을 정립한 뛰어난 철학자이자 신학자로, <참회록>은 그의 대표작이다. 신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매우 이성적인 방식으로 드러내었는데, 어쩐지 그게 나는 좋았다. 나는 그 책을 내 책장으로 몰래 옮겨왔다. 직접 받은 것은 아니지만 부모의 책이란 그렇게 자식에게 넘어오는 법이다. 나는 결국 신앙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는 이 책이 나에게는 이상한 위안처럼 여겨지고는 했다.
아버지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물받은 음반. 기타 연주자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열심히 연습하던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유럽 출장을 다녀오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물하신 음반이다. 막 음반을 모으기 시작할 무렵에 받았기에 신이 나서 턴테이블에 올려놓았는데 그 당시에 내가 좋아하던 음악과는 거리가 있어 곧바로 수납장에 꽂아놓은 기억이 난다. 그 후로 10여 년이 지난 지난해 수납장을 뒤적거리다가 이 음반을 다시 듣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과는 다르게 너무 좋아서 쉬고 싶은 날이면 종종 꺼내어 듣는다.
2008년 12월 아버지는 휴대폰을 바꿨다. 당시 애니콜 햅틱은 무척 신선했다. 터치로 작동하는 폰이라니. 아버지는 임직원가로 큰 마음 먹고 완납하며 구입했다. 아버지가 이 휴대폰을 구입한 이후 집 안에는 격변의 세월이 닥쳤다. 그 기억이 각인돼 아버지는 세월이 지난 지금도 이 휴대폰을 보관하신다. 몇 가지 큰 사건이 기억난다. 아버지는 내 대학 합격 소식을 이 휴대폰으로 들었다. 대입에 계속 떨어지고 예비로 밀려나고, 집 안 분위기가 우울했는데 최종 합격 소식을 듣자 아버지는 무척 기뻐하셨다. 그리고 이 휴대폰으로 바꾼 뒤 아버지는 회사에서 부장으로 진급하셨다. 회사원에게 승진이야말로 가장 큰 이벤트다. 업무가 늘어난 만큼 야근도 늘었다. 아버지는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 인도에서 6개월간 장기 출장을 할 때에도 이 휴대폰과 함께였다. 아버지의 기쁨과 피로, 외로움이 담긴 애증의 휴대폰이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