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차에만 적용되었던 디지털 기능들이 중저가 차량에도 속속 적용되고 있다. 운전 중에 창문을 내려 달라고 말하면 음성인식 시스템이 창문을 내린다. 온도 조절도 가능하다. 날씨나 뉴스 정보를 말하는 것은 기본이고, 신사동 삼겹살집을 추천해달라는 애매한 주문도 수행한다. 이런 기능이 유용할까? 날씨와 뉴스는 휴대폰으로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정보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아쉽지 않다는 뜻이다. 가짜 맛집이 넘치는 시대에 내 차가 진짜 맛집을 구분하는 변별력을 가졌을까? 그건 좀 의심스럽다. 온도조절은 유용한 기능 맞다. 하지만 인식이 잘 안 된다. 실내 온도 21도로 맞춰달라고 하면, ‘네 알겠습니다’하고는 26도로 맞춘다. 내 발음의 문제겠지만, 여름에 26도로 맞춰지면 덥다 정말 덥다. 또 창문 정도는 버튼으로 내려도 된다. 그래도 음성 인식 기능은 쓸모가 있다. 디지털 계기판은 또 어떤가. 풀 디지털 클러스터라는 이름은 듣기만 해도 멋지다. 계기판이 디지털화되면서 선명하고 화려한 디자인을 적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계기판 배경 화면으로 풍경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위치 기반 시스템을 활용해 날씨와 시간대에 맞는 화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마치 아버지의 휴대폰 배경 화면처럼. 노을 질 때는 노을 지는 초원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굳이 그럴 필요 있을까? 이게 어떤 감성을 자극하는 걸까? 이미 눈앞에 노을이 지고 있는데, 계기판 시인성이나 높여주지. 라는 요구도 생기곤 한다. 내가 이 옵션을 돈 주고 구입했다고? 후회가 들 때도 있지만, 옵션은 패키지로 묶여있다 보니 어느 하나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저렴한 가격대에서 만족감을 찾으려는 가심비 추종자들의 경우에는 민감한 문제일 수 있다.
가심비를 자극하는 ‘신박’한 디지털 기능들이 오히려 차의 기본기를 가리는 위장막이 될 수도 있다. 디지털 기능들이 별로라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키나 차량 내 결제 시스템과 같은 디지털 기능들은 나날이 발전 중이다. 최첨단 디지털 기능이 있지만 인식률이나 안전성이 뛰어나지 않다면 제안 정도에 그치는 게 맞을 것이다. 필요한 디지털 기능만 넣고, 필요 없는 디지털 기능은 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없을까? 앱 다운 받듯 소비자가 직접 자신의 가심비를 구성하는 시스템이야말로, 이 추상적인 개념을 만족시키는 적정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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