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석
소설가
글로 웃기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더군다나 허구의 이야기를 짜내어 독자를 문장으로 끌어들이고, 이야기에 빠진 독자의 뒤통수를 가격하며 호탕한 웃음을 선사하기란 도무지 쉬운 일이 아니다. 최민석은 그 어려운 걸 해내는 작가다. 지난 2016년 <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에서 초단편 소설의 맛을 알렸던 그에게 또다시 초단편 소설을 의뢰했다. 그가 보내온 ‘맞은편 할머니’는 민망함과 유쾌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나에겐 원래 좀 청개구리 같은 면이 있다. 직업이 소설가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집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외출이 어렵게 되자, 집 밖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마구 샘솟았다. 평소라면 이런 욕구가 전혀 생기지 않는데, 어쩐단 말인가.
그때 인터넷에 떠도는 미국 주택가의 사진을 봤다. 사진 속 미국 시민은 자가격리 중이라, 자기 정원에 캠핑용 의자를 놓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는 누군가를 보고 대화하는 중이었다. 상대는 바로, 맞은편 주민. 그 역시 자기 정원에 캠핑용 의자를 놓고, 맞은편 주민과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이었다. ‘그래. 이거야!’ 내가 사는 곳이 연립주택촌이지만, 어떠하랴. 캠핑용 의자도 없지만, 또 어떠하랴. 나는 책상 의자를 하나 들고, 마스크를 쓴 채 오후 햇살이 내리쬐는 집 앞 골목가에 나가 앉았다.
예상했지만, 나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해서 처음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듣고, 나온 김에 독서도 좀 하고, 정 심심하면 팟캐스트도 들었는데, 사흘째가 되니 한 할머니가 나타났다. 할머니는 무슨 영문인지, 꼭 쓰레기 분리 배출하는 자리 옆에 낚시 의자를 하나 갖다 놓은 채 앉아 있었다.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어서, 첫날에는 대화 없이 바라만 봤다. 다음 날에는 눈인사 정도. 그러고 사흘째가 되자, 대뜸 할머니가 자기 자리에서 외쳤다.
- 영감. 왜 이제 왔수?
두리번거렸다. ‘영감이라니?’ 아무리 둘러봐도, 골목엔 나밖에 없다. 순간, 할머니에게 영험한 기운이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갑자기 일어서더니, 내게 다가오는 게 아닌가.
- 영감. 거기 왜 그러고 앉아 있어요?
할머니는 분명 내게 말하고 있었다. 의아했다. 혹시 치매를 앓고 계신가. 그런데 치매 노인이라 보기엔 주소와 연락처가 적힌 목걸이도 없고, 보호자도 없다. 그런데도 사흘째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나와서 앉아 있다가, 저녁 6시가 되면 낚시 의자를 들고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맞은편 빌라로 들어갔다. 나는 어리둥절했기에 반문했다.
- 혹시 사람 잘못 보신 거 아니에요?
그러자 할머니는 갑자기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아… 아니에요? 우리 종석 씨… 아니에요? 잘생긴 우리 종석 씨, 키 크고 훤칠한 우리 종석 씨 아니에요?
독자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할아버지가 키 크고 잘생겼다 하니 헷갈릴 만하다. 어쩌면 할머니는 치매에 걸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노인이 되면 자연스레 시력이 떨어지는 것이고, 간혹 정우성 아니냐고, 행인들이 물으며 사인해달라고 하므로, 이런 착각 정도야 누구라도 할 수 있다.
- 아니에요. 할머니. 저는 최민석이라는 소설가예요. 2010년에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라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단편 소설로 창비 신인 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2012년에는 역시 <능력자>라는 지구를 들썩이게 할 장편 소설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어요. 평론가들은 저를 두고, 얼어붙고 침체된 한국 문학에 심폐소생술을 제공할 천재라고 했어요. 하하하. 하지만 사실 전 그냥 심심해서 좀 끼적거렸을 뿐이에요. 사인해드릴까요?
그러자 할머니는 일순 정색했다.
- 아. 그래요? 죄송합니다.
그러고선 낚시 의자를 챙기고, 다시 빌라로 들어가버렸다.
괜히 할머니에게 웃음 좀 드리려 했다가, 쓸데없는 말만 잔뜩 늘어놓은 격이 됐다. 또 할머니를 마주치면 딱히 할 말도 없어, 일주일간 다시 칩거하며 밀려 있던 원고를 썼다. 일주일간 글만 썼기 때문일까.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다. TV를 켜니, 이미 열 번은 넘게 본 영화, 출연자의 농담까지 외울 법한 예능, 자막의 오타까지 기억하는 여행 프로그램이 또 나오고 있었다. 하여 참신한 게 없나 싶어 채널을 돌리다가, 그만 낯익은 얼굴을 보고야 말았다.
맞은편 할머니가 TV 브라운관 속에 있었다. 할머니는 나와 마주쳤을 때와 똑같은 복장, 똑같은 자세로, 주택 골목가에 놓인 낚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리둥절했다. 마치 우리 집 앞 골목과 할머니가 함께 TV 속으로 공간 이동을 한 것 같았다. 할머니가 말했다.
- 영감. 왜 이제 왔수?
맞은편에는 아무도 없었다. 할머니는 또 말했다.
- 영감. 거기 왜 그러고 앉아 있어요?
그러자 TV 속 행인이 할머니를 쳐다봤다. 할머니는 또 말했다.
- 아… 아니에요? 우리 종석 씨… 아니에요? 잘생긴 우리 종석 씨, 키 크고 훤칠한 우리 종석 씨 아니에요?
행인은 의아해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갑자기 한 중년 여인이 나오더니, 행인에게 사과했다.
- 죄송합니다. 저희 어머니가 정신이 오락가락하셔서….
행인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할머니, 전 아직 총각이에요.
그러더니 할머니는 낙담한 듯이 말했다.
- 아. 그래요? 죄송합니다.
맙소사. 할머니는 연기자였다. 단역 연기자라, 못 알아봤을 뿐이었다. 게다가 이 할머니 연기자는 그 역할을 어찌나 잘 소화하고 싶었는지, 극에서 맡은 역할 그대로 생활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즉, 메소드 연기를 신봉하는 배우였다. 말로만 들었던 메소드 연기자를 내가 직접 만났을 줄이야.
나는 허탈한 기분에 젖었다. 할머니가 나를 상대로 자신의 연기를 실험했을 줄이야. 극 중 상황을 그대로 재현해 의상과 도구까지 빌려와 매일 연습했을 줄이야. 그런 배우 앞에서, 너스레를 떨었다니. 집 안에 혼자 있었지만,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침대에 누워서도 허공에 발길질을 몇 차례 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도, 이불 안에서 발길질을 했다. 그러고 보름간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냉장고에 먹을 게 다 떨어져 어쩔 수 없이 집 앞 편의점에 가는 길이었다. 맙소사. 그 할머니가 또 낚시 의자에 앉아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이번에도 내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 최민석 작가님. 저번에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제 연기를 꼭 한번 실험해보고 싶었거든요. 매번 단역만 맡고 그 후론 일이 안 들어왔는데, 이번에 연기가 너무 좋았다고, 좀 더 큰 배역을 맡게 됐어요. 작가님 덕분이에요. 그리고 여담이지만, 작가님 정말 천재 맞으시더라고요.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든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는 역시나 제 독서 인생에서 최고의 황홀경을 선사했고, 지구를 뒤흔든 <능력자> 역시 제 예술 인생의 등불이 되어………… ……(이하 쑥스러워서 생략. 단, 말줄임표의 개수가 말해주듯, 격찬의 시간이 상당히 길었음을 소심하게 밝혀 둔다)…….
이렇게 나는 독자 한 명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하하. 약간의 부끄러움만 감수하면, 요렇게 자기 지경을 넓힐 수 있다.
- 그럼 사인해드릴까요?
그러자 할머니는 또 정색했다.
- 아뇨. 그럼 중고 서점에 못 팔잖아요.
역시, 철두철미한 계획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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