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구석에는 책을 쌓아두고 고글을 쓴 채 기괴한 실험을 벌이는 과학자. 두터운 안경을 코 위에 얹은 진중한 모습. 밴드 ‘루시’를 탐구할 때 떠올린 것들이다. 루시는 음악을 연구한다. 그들의 연구실 아니 합주실 풍경은 이렇다. 신예찬은 활로 바이올린을 문지르고 조원상은 베이스 기타 줄을 긁는다. 신광일은 드럼 스틱을 돌리고 최상엽은 악보집을 든 채 목소리를 얹는다.
스튜디오에서 소리만 찾을 것 같던 그들에게 최근 변화가 생겼다. 곧 앨범이 발표되는 것. 논문 발표를 앞두면 긴장하던데, 이들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아요. 모든 게 꿈처럼 흘러가고 있는 기분이에요. 팬들에게 받는 선물과 그림이 늘어나는 것도 믿기지 않고요.” 조원상이 말했다.
루시의 연구 성과를 살펴보자. 그들은 특정 상황의 소리를 삽입하는 앰비언스 장르를 활용한다. 곡에 일상 속 다양한 소음을 버무렸다. ‘난로’는 추운 겨울 차가운 공기를 피해 온기를 마주하는 장면을, ‘선잠’은 버스 하차 벨 소리로 바쁘게 흘러가는 도심을 표현했다. 미세한 소리 하나에도 장면의 온도와 날씨가 떠오른다. 신광일은 마이크를 들고 뛰쳐나가 일상 소음을 녹음하는 이유를 말했다. “추억이 떠오르는 곡을 만들고 싶어요. 음악을 들으면 날씨와 감정이 들어 있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지도록. 앞으로도 그런 음악을 통해 스토리텔링을 하고 싶어요.”
카메라를 향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 그들에게도 속사정은 있다. 다음 실험 소재에 대한 고민, 실험 결과에 대한 대중의 생각. 하지만 무거운 질문도 유쾌하게 받아쳤다.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에 대한 걱정도 있어요. 얼른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하지만 우리 음악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 매 순간 행복해요.” 신예찬이 말했다.
그들 눈에 비친 세상은 위로가 필요했나 보다. 노랫말에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사랑에 갈등을 겪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실려 있다. 통증을 꼬집는 노랫말들이 창작되는 순간이 궁금했다. “머리를 감으려 삼푸를 묻혔을 때, 잠들기 직전 갑자기 악상이 떠올라요. 또 하나는 일상에서 스쳐가는 단어 하나도 놓치지 않아요. 모두 적어놔요. 시간이 지난 후 그렇게 모아놓은 글에서 가사와 곡 소재를 뽑아내죠.” 최상엽이 말했다.
경연 프로그램 <슈퍼밴드>를 통해 다양한 실험을 펼쳤지만 이제는 완전체 루시만의 실험을 선보일 차례다. 루시에게 모든 현상은 새롭다. 그래서 갈증도 있었다. 다양한 시도가 급하다고 했다. 완전체 루시의 목표는 뭘까. “색이 뚜렷한 밴드가 되는 게 목표예요. 파란색도 코발트 블루, 로열 블루 등 종류가 무척 다양해요. 파란색 계열 안에서도 색마다 느낌이 다르고요. 루시는 다양한 파란색을 보여주는 밴드가 되고 싶어요. 길을 걷다 우연히 들은 음악이 파란색을 떠올리게 하는 청량한 곡이면 루시를 생각해주세요!” 이제 루시는 어떤 음악을 비이커에 담아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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