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용 대표,
이상욱 이사
우리나라의 유명 쌀 생산지로는 호남평야와 김포평야가 꼽힌다. 하지만 의외로 서울에서도 쌀이 생산된다. 한강주조는 서울 쌀만을 고집해 막걸리를 빚는다. 고성용 대표와 이상욱 이사 등 30대 청년 넷이 의기투합해 만든 ‘나루 생 막걸리’다. 이들이 사용하는 쌀은 서울 강서구에서 수확하는 ‘경복궁 쌀’이다. 경복궁 쌀은 친환경적인 우렁이농법으로 재배된다. 이들이 이 ‘비싼’ 쌀을 고집하는 이유는 ‘서울을 대표하는 술을 만들고 싶어서’다.
어떤 술을 만들고 싶었나?
막상 전통주 양조에 뛰어들고 보니 아쉬운 점이 여럿 보이더라. 대중은 전통주를 고루하다 생각하니까. 막걸리만 해도 ‘다음 날 머리 아픈 술이다’ ‘촌스럽다’ 등 부정적인 인식이 많지 않나. 또한 양조장의 홍보 방식도 ‘우리 술을 애용하자’ 등 감정에 호소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우리는 이런 방식을 탈피하고 싶었다. 막걸리지만 트렌디하고 20대도 찾는 술을 만들려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서울을 대표할 만한 술을 만들자는 것이 목표였다.
서울에서 나는 경복궁 쌀을 사용하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
꼭 그렇진 않다. 이런저런 쌀로 막걸리를 빚어봤는데, 경복궁 쌀이 우리 주조법과 가장 잘 어우러졌다. 운명처럼.
마트만 가도 많은 막걸리를 판다. 나루 생 막걸리만의 특징은?
우선적으로 쌀의 맛과 향을 최대한 살리고자 했다. 인공 감미료는 일절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막걸리보다 쌀 함유량을 월등히 높였다. 따라서 쌀의 맛과 질감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또한 탄산의 청량함보다는 부드러운 목 넘김을 내세운다. 무엇보다 자랑하고 싶은 건, 나루 생 막걸리가 서울 쌀을 사용하는 유일한 막걸리라는 점이다.
양조를 시작하고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최근 오랫동안 준비해온 지역 특산주 면허를 받았다. 서울에서 인정하는 지역 특산물은 경복궁 쌀과 수라 배, 양재에서 재배하는 허브 등 세 가지다. 나루 생 막걸리가 경복궁 쌀 100%로 만든다는 점을 높게 평가받아 서울시에서 지역 특산주 면허를 발급해줬다.
와, 정말 서울을 대표하는 술이 된 거네. 혹시 다른 술 개발 계획도 있나?
현재 경복궁 쌀을 사용한 약주를 개발 중이다. 화이트 와인처럼 달지만 끝 맛에 풍미도 있고 산미도 오래가는 약주를 만들려 한다. 그 이후에는 역시 경복궁 쌀을 이용한 증류식 소주를 빚어보고 싶다.
나루 생 막걸리
쌀 향이 제대로 느껴진다. 부드럽게 시작했다 뒤끝 없이 달달하다. 나루라는 이름은 연결성과 관련이 있다. 다리가 없던 시절 한강을 건너게 해준 나루처럼 역사 속 가양주를 재해석한 맛으로 과거와 현재를 잇겠다는 뜻. 현재 전국 주점 및 음식점 1백20여 곳에서 판매 중인데, <아레나>에만 귀띔해준 소식에 의하면 3월부터는 모 특급 호텔 바(Bar)에서 환상적인 칵테일 베이스로도 ‘변신’할 예정이다.
브루어리
이규민 대표
요리를 전공한 이규민 대표는 덴마크의 대표적인 ‘집시 브루어리(자체 양조 시설 없이 매번 다른 양조장에 주조를 위탁하는 곳)’인 투올(ToØl)에서 일하며, 맥주 양조에 처음 눈을 떴다. 하지만 그가 ‘진짜’ 만들고 싶었던 건, 크래프트 맥주가 아닌 젊고 신선한 막걸리였다. 그렇게 탄생한 곳이 바로 디오케이 브루어리다. 기존 막걸리에 젊은 층이 좋아할 만한 부재료를 넣어 세상에 없던 맛을 ‘창조’한다.
디오케이 브루어리는 무슨 뜻인가?
‘서양스럽다(?)’고들 하던데, 사실 한국적인 이름이다. 술과 장을 담는 전통 ‘독’에서 따왔다. 영어 알파벳 ‘O’ 대신 비슷한 소리를 내는 덴마크어 ‘Ø’를 쓴 건, 덴마크에서 일할 때 처음 막걸리 양조에 대한 청사진을 그린 만큼 ‘초심을 잃지 말자’라는 각오에서다. 또한 양조장을 브루어리라 칭한 건, 콘셉트를 유럽 크래프트 맥주에서 차용해왔기 때문. 실제 막걸리 제조 시에도 전통 누룩과 맥주 제조에 사용되는 ‘프렌치 세종’ 효모를 함께 사용한다.
그래서일까. 막걸리 맛이 매우 독특하더라.
전통주를 현대적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부재료를 사용한다. 석류와 히비스커스를 넣기도 하고, 레몬이나 라임, 홍차(잉글리시 브렉퍼스트) 등을 넣어 발효하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밤 막걸리나 바나나 막걸리처럼?
아니다. 그런 제품은 막걸리를 만든 후에 합성 재료를 첨가하는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하자면 바나나가 안 들어가는 바나나우유처럼 말이다. 이 때문에 주세법에서도 막걸리가 아닌 기타 주류로 분리된다. 반면 우리 술은 엄연한 막걸리다. 가향이나 착향이 아닌 막걸리 제조 과정 중 부재료들을 함께 넣어 발효한다.
세 종류의 막걸리를 선보인다. 어떤 막걸리들인가?
‘걍즐겨’와 ‘두유노’ ‘뉴트로’다. 걍즐겨는 석류와 히비스커스를 넣어 붉은색을 띠는데, 베리류의 맛을 내 와인 같다는 의견이 많다. 반면 레몬과 라임,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를 첨가한 뉴트로는 페일 에일 맥주 스타일이다. 두유노는 빵을 만들 때 이스트 대신 사용하는 천연 발효종으로 만든 막걸리로 청량함과 신맛이 묵직한 쌀의 맛과 조화를 이뤄 독특한 맛을 낸다.
앞으로 나올 술들도 이렇게 독특하겠지?
분기별로 새 막걸리를 출시하는 게 목표다. 다음 막걸리는 계피와 생강 등을 사용할 계획이다. 막연한 꿈이기는 하지만, 언젠간 다른 양조장과 협업도 해보고 싶다. 맥주 브루어리 혹은 막걸리 양조장과 함께 술을 빚어 리미티드 에디션을 발표하면 재밌을 것 같다.
걍즐겨
발효 시 석류즙과 히비스커스를 더했다. 상큼한 베리 향이 코를 즐겁게 하고 새콤달콤한 맛은 음료처럼 들이켜기 좋다. 이 대표는 맑은 윗술(청주)을 먼저 음미하고, 그다음 병을 흔들어 탁주로 즐기길 강권한다. 청주에서는 언뜻 로제 와인의 풍미가 느껴지는데, 섞으면 질감과 보디감이 살아나면서 내추럴 와인에서 느껴지는 쿰쿰한 맛이 살짝 고개를 든다.
신지연 팀장
술샘은 경기도 지역 특산물로 술을 빚는 제법 규모가 큰 전통주 양조장이다. 대표 술은 ‘2018년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 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증류식 소주 ‘미르 40’이다. 판매 중인 제품은 무려 30여 개. 매년 신제품을 두세 개 선보이며 ‘전통술 현대화’의 선봉에 섰다. 특히 술샘만의 독특한 술은 20~30대 젊은 층에게 강력하게 어필한다. 신지연 팀장은 술샘을 운영하는 신인건 대표의 딸로, 술샘의 변화를 이끈 숨은 조력자이기도 하다.
아버지를 도와 일하는 건 어떤가?
솔직히 처음에는 싫었다. ‘왠지 지하에서 술만 빚어야 할 것 같은 이미지’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일해보니 적성에 딱 맞는다. 나의 주 업무는 우리 술을 알리고 홍보하는 일이다. 고객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다음 신제품에 반영한다.
제품을 출시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라벨 디자인이다. 요즘 전통 주점을 가면 술 종류가 정말 많다. 시음을 해볼 수 없기 때문에, 대개 예쁜 술을 고른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하지 않는가. 나와 같은 20대 여성들이 예뻐서 마시고 싶은 술을 만드는 데 힘쓰고 있다.
술샘에서는 막걸리도 여럿 선보인다.
대표 제품은 ‘이화주’와 ‘술취한 원숭이’ 다. 이화주는 쌀 누룩에 쌀로 구멍 떡을 만들어 걸쭉하게 빚은 전통 막걸리로 일명 떠먹는 막걸리라 불린다. 고려 시대부터 상류층 여성들이 즐긴 술인데, 양반가 아녀자들이 품위 있게 술을 먹기 위해 개발됐다고 전해진다. 반면 ‘술 취한 원숭이’는 빨간 누룩균인 홍국으로 만들기 때문에 붉은빛이 감도는 것이 특징이다.
얼마 전엔 ‘아임 프리’라는 흰쌀 막걸리를 출시하기도 했다. 신제품을 소개한다면?
역시 소비자 의견을 반영해 만든 막걸리다. 생각보다 막걸리의 종류가 정말 많다. 그중에는 쌀로만 만든 막걸리도 있지만, 밀가루로 만들거나 밀가루를 섞는 막걸리도 있다. 또 밀로 만든 누룩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은 밀가루의 글루텐 단백질을 섭취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분들을 위해 오직 쌀 누룩만으로 만든 막걸리를 선보이게 됐다.
앞으로 꼭 만들어보고 싶은 술이 있다면?
아직 연구 중이기는 하지만 들고 다니면서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짜 먹는 막걸리를 연구 중이다. 기발하고 재미있을 거 같긴 한데, 제품화가 쉽지 않다.
아임 프리
술샘은 누룩을 빚는 회사로 시작했다. 쌀로만 만든 ‘이화곡(누룩의 일종)’을 빚었다. 아임 프리는 이화곡으로 만든 막걸리다. 경기미를 원재료로 세 번 발효하는 삼양주 기법으로 정성스레 빚는다. 원재료의 맛을 살려 주조한 덕인지 달콤한 쌀의 풍미가 짙다. 입에 닿는 순간부터 목을 타고 넘어갈 때까지 걸리는 것 없이 부드럽다. 살짝 풍기는 단맛과 산미의 조화도 훌륭하다.
이두재 팀장, 신동호 팀장, 양유미 팀장
인스타그램으로만 예약 판매하는 술이 있다. 예약 후에는 양조장까지 찾아가 직접 받아와야 하는 수고도 감내해야 한다. 그럼에도 공지를 띄우면 2~3일 만에 모든 술이 동난다. 올해 처음 선보인 쌀술 ‘만남의 장소’ 얘기다. 각기 다른 양조장에서 술을 빚던 신동호, 이두재, 양유미 팀장이 지난해부터 이곳에서 만나 빚는 술이다. 막걸리 대신 ‘쌀술’이라 이름 붙인 건, 막걸리에 대한 편견 없이 새로운 술처럼 음미해달라는 당부에서다.
라벨에 그려진 얼굴이 귀엽다.
‘연서복 이모티콘’이 아니냐고 하던데,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에서 영감받은 것이다. 반가사유상의 표정을 보면 기쁜 건지 슬픈 건지 쉽게 가늠이 안 가지 않나. 우리 라벨도 어떤 날엔 만족스러운 것처럼 보이고, 또 어떨 땐 슬퍼 보이기도 한다. 가끔 음흉해 보이기도 하고. 술 마시는 날 기분에 따라 달라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술맛은 항상 같겠지?
꼭 그렇지 않다. 화학첨가물을 전혀 넣지 않기 때문에 같은 레시피로 양조해도 배치(Batch·한 번에 막걸리를 만들어내는 발효조의 양)마다 조금씩 다른 맛을 낸다. 그래서 우리는 술병 뒤에 어느 배치에서 몇 번째로 나온 술인지를 표기하고, ‘Embrace the Moment(지금 이 순간을 맞으라)’라는 글귀도 넣었다. 배치 넘버를 확인하면서 조금씩 다른 맛을 느껴보는 것도 우리 술을 즐기는 묘미 중 하나다.
요즘은 다양한 방식으로 빚은 막걸리가 나온다. 만남의 장소는?
조금 손이 많이 가더라도 좋은 재료로 좋은 술을 빚고 싶었다. 재료는 철원 오대미를 쓰고 삼양주 방식으로만 빚는다. 삼양주란 멥쌀가루를 뜨거운 물에 익반죽해 쌀 범벅을 만들고 누룩을 더해 두 번 발효시킨 후, 중간에 고두밥을 한 번 더 넣어 총 세 번 발효하는 방식이다. 입국이나 수입밀 누룩 등을 발효해 만드는 양조장도 더러 있던데, 우리는 전통 누룩만을 고집한다. 또한 마지막 발효 직전에 레몬과 건포도, 통후추와 생강 등 부재료를 넣어 만든다.
2만7천원이다. 막걸리치곤 비싸지 않나?
그만큼 원재료 값이 많이 든다. 쌀도 정부미나 묵은쌀이 아닌 햅쌀만을 쓴다. 또 1백 일이 넘는 과정을 모두 수작업으로만 진행한다. 국산 생강을 사다 직접 다듬고 통후추를 갈아 쓴다. 심지어 라벨을 붙이는 작업까지 모두 우리 셋이 한다. 플라스틱 페트병 대신 유리병에 담은 건, 우리 술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다를 수 있다. 정말 다행인 건, 아직 비싸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 오히려 ‘제값 한다’고 해준다.
만남의 장소
지금까지 경험한 막걸리 맛이 ‘싹’ 잊힐 만큼 새롭다.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재료들의 오묘한 조화가 입안을 즐겁게 한다. 한 모금 머금고 삼키면 단맛, 쓴맛, 신맛, 짠맛, 감칠맛이 우루루 입안을 훑는다. 묵직한 쌀 맛이 느껴지는 듯하더니 이내 산뜻한 신 맛이 입안을 강타한다. 마지막을 책임지는 건 생강! 은은한 생강 맛이 천천히 몸을 달아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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