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셰프가 온다. 국수 만드는 로봇, 커피 타는 로봇, 서빙하는 로봇, 배달하는 로봇 등 머지않아 로봇으로부터 로봇이 만든 음식을 배달받게 된다. 지금 세계 곳곳의 스타트업은 음식을 주제로 한 기술 개발에 열중한다. 위워크 랩스는 샌프란시스코와 오스틴에 F&B 스타트업 지원을 위한 위워크 푸드랩스을 설립했다. 대체육 개발, 로봇 셰프, 점원 없는 레스토랑 등 F&B는 재료부터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기술 개발을 이루고 있다. 2020년대 식음료계는 새로운 기술과 어떤 조화를 이루게 될까.
EDITOR 조진혁
미래 밥상의 근심
다시, 퓨처리즘이다. 우주에 첫발을 내딛던 때로부터 세기말을 지나 인류는 다시 ‘멋진 신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지난 시대의 퓨처리즘이 광활한 우주를 향했다면, 지금 시대의 퓨처리즘은 위기의 밥상을 향해 있다. 환경 파괴와 인구 고령화, 그리고 폭발. 세 가지 거대하고도 비관적인 문제를 끼고 사는 우리에게 미래 전망은 당장의 생존을 점치는 과학의 신탁이다. 기술 문명의 현재와 근미래를 망라해 전시하는 ‘CES 2020’이 라스베이거스에서 새해 벽두 열렸다. 한국 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나란히 가전 영역의 로봇으로 화제를 모았다.
LG전자는 로봇 주방 ‘클로이(CLOi)’ 라인업을 하나의 전시 존으로 구성했다. 무인 레스토랑을 콘셉트로 내세운 이 전시 존에선 클로이 로봇이 손님을 안내하고 테이블의 클로이가 주문을 받는다. 주방에선 로봇 팔 클로이가 국수를 만들고, 완성된 국수는 서빙 로봇 클로이가 테이블로 날라다 준다. 설거지도 클로이가 하고, 후식 커피는 로봇 팔 클로이가 핸드 드립, 아니 로봇 드립한다. 삼성전자가 선보인 ‘볼리(Ballie)’는 집 안의 가전제품을 제어해 생활 노동을 알아서 처리해 주는 반려 로봇. LG전자의 관점과 정반대 방향으로 입구를 택했지만 세계관은 같다. 볼리는 알람 시간에 전동 커튼을 알아서 열거나 반려견이 쏟은 물건을 로봇청소기로 치우는 등의 기능을 갖췄다. 큰 그림을 보자면 향후 좀 더 발전된 형태의 로봇 가전을 출시한 후엔 현재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알아서 해줄 인공지능 집사 겸 가사도우미로 진화할 것이라는 복선을 깔고 있다. 이를테면 저녁 식사 시간 전부터 냉장고에서 닭과 한약재를 꺼내 삼계탕를 끓여 시간 맞춰 차리고, 심지어 설거지와 그릇 정리까지 마치는 일 정도는 어렵지 않게 뚝딱 할 터다.
굳이 인간이 하지 않아도 될 허드렛일을 오차 없이 해내는 로봇 세계관은 원초적일지언정 이미 현재에 와 있다. LG전자가 선보인 클로이는 이미 현장에 투입되어 활용 중인 기술이다. 클로이 로봇 팔이 패밀리 레스토랑 VIPS 한 지점에서 즉석 국수 코너를 담당하고 있다. 마라탕면과 쌀국수를 만드는데, 하루 2백 그릇을 균일한 품질로 생산한다. 같은 CJ 계열의 제일제면소 지점 한 곳에서는 클로이 두 대가 서빙을 담당한다.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도 일찌감치 ‘로봇딜리버리셀’을 설립하고 결과물을 선보이고 있다. 네 개의 트레이를 한 번에 서빙하는 실내용 서빙 로봇 ‘딜리’의 경우 렌털 프로그램을 출시했을 정도로 실용화 속도가 빠르다. 1개월 90만원으로 서빙만 할 줄 아는 단순 업무 노동자를 고용하는 셈이다. 우아한형제들의 로봇은 이뿐이 아니다. 실외 도로를 달려 배달지 문 앞까지 가는 배달 로봇도 시험 중이다. 건국대학교 캠퍼스 내에서 베이글도 배달하고, 김밥도 배달했다. 아직은 건물 앞까지만 배달할 줄 알지만, 다음 단계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호수까지 찾아가는 수준에 이를 것이다.
먹고 사는 일에 결부된 노동에 대한 근심이 이토록 빠르게 해소되고 있다. 그렇다면 먹거리에 대한 근심은 어떨까. 2050년이면 지구 인구는 1백억 명을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인구가 늘면 사는 데 필요한 면적과 식량이 함께 늘어난다. 기존의 생산 방식으로는 1백억 인류가 배불리 먹고 살 수 없다. 20세기까지 유지됐던 농축산업 발전의 방향은 게다가 자연에 악영향을 끼치는 쪽으로 치우쳤다. ‘임파서블 푸드’는 “지구를 위협하는 기후변화, 생물다양성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육류를 대체한다”는 경영 철학(?)으로 비슷한 시기 출범한 비욘드 미트와 함께 전 세계적인 대체육 시장의 패권을 주도하고 있다. 임파서블 푸드는 버거킹과 함께 임파서블 와퍼를 출시했으며, 비욘드 미트는 맥도날드와 손잡았다. 비욘드 미트의 대체육은 동원F&B를 통해 국내에 유통되고 있다. 소고기 대체육으로 시장을 쌍끌이하는 두 업체는 이미 높은 수준에 진입해 있다. 이어, CES 2020에선 임파서블 푸드가 돼지고기 대체육을 공개하며 탄탄면, 슈마이, 미트볼 등 돼지고기 대체육으로 만든 메뉴를 선보였다. 버거킹을 통한 ‘임파서블 소시지’ 출시도 예정돼 있다. 대체육은 단지 채식주의와 같은 기존의 선택과 취향의 문제 너머, 곡물의 20배 이상 탄소를 발생시키는 축산업을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규정하며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방편처럼 광고되곤 한다. 식물 성분을 이용한 대체육 외에도 세포를 이용한 배양육 또한 주요한 대체육의 가능성으로 꼽힌다. 소고기, 돼지고기는 물론 닭고기와 생선, 해산물까지 세포 배양을 통해 살코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배양육도 합리적인 단가로 생산성을 확보하며 새로운 먹거리가 될 준비는 마쳤다. 상용화를 목전에 두고 안전과 윤리에 대한 기준을 잡아가는 사회적 합의 과정에 있다.
비단 동물성 먹거리만이 미래 밥상의 근심이 아니다. 채소 등 식물 재배 환경 또한 파괴되긴 마찬가지다. 산업화 기간 동안의 오염으로부터 안전한 방법으로, 인류는 인공 재배 환경을 발명했다. 흙 대신 식물에 필요한 영양을 함유한 양액으로, 희뿌연 태양 대신 광합성에 필요한 빛만을 내는 LED 전등으로 채소를 키우는 식물 공장의 원리는 이미 상용화되었다. 이 공장은 스마트팜이라는 이름을 달고 첨단 기술을 집약해 거의 인력 투입 없이 작물을 재배한다. 국내에서도 아쿠아포닉스(물고기를 양식하는 동시에 식물을 생산) 방식의 만나씨이에이, 엔씽, 팜에이트 같은 농업 벤처가 일찍이 등장했다. 폐쇄된 고속도로의 터널을 빌려 스마트팜을 지은 넥스트온은 샐러드용 채소 80종 이상과 과채류인 딸기를 생산하고 있다.
산업화된 식물 공장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의 슈퍼마켓 체인 크로거는 매장 내에 식물재배기를 두고 갓 수확, 아니 주문 시 수확하는 채소를 판매하고 있다. 다시 CES 2020으로 돌아가, 삼성전자와 LG전자도 냉장고 형태의 식물재배기를 선보였다.
미래는 오지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변화가 찾아오리란 점이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의 푸드 테크를 돌아보면 변화가 이미 현재로 다가와 있다는 확신이 든다. 머지않은 미래를 예측할 때 <인터스텔라>의 대사가 떠오른다면 지나치게 근거 없는 낙관일까? 아니, 분명 미래는 ‘멋진 신세계’일 것이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라는 말 그대로.
WORDS 이해림(푸드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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