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단 1백 년이 흔한 유럽 축구계에서 2009년 창단한 RB 라이프치히는 신생팀이나 마찬가지다. 1부 리그인 분데스리가에 승격한 것도 2016-17시즌이 처음이다. 승격 첫해에 준우승을 그다음 해에는 6위, 3위로 준수한 성적을 보였다. 호날두보다 어린 32세의 감독 율리안 나겔스만 체제로 시작한 이번 시즌에서 RB 라이프치히는 분데스리가 1위 자리를 고수하며 강팀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정통 강팀도 버티기 힘든 리그에서 RB 라이프치히와 32세의 젊은 감독은 어떻게 강팀이 되었을까.
EDITOR 조진혁
매력적이고 이상한 클럽
프로축구에서 돈은 성공으로 직결된다. 부자는 강하고, 강하면 부자다. 첼시, 맨체스터 시티, 파리 생제르맹은 ‘쩐의 전쟁’을 벌여 단번에 챔피언에 올랐다. 분데스리가의 RB 라이프치히도 기본적으로 같은 부류다. 자금력 위에 올라타 단기간에 5부에서 1부까지 치솟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다. 스타 영입도 없고, 감독은 32세밖에 되지 않았으며 23세 이상 선수를 영입하지 않는다. 이상한 ‘자본주의’ 나라에서 온 라이프치히는 지금 분데스리가 1위를 질주 중이다.
RB 라이프치히의 주인은 에너지 드링크 회사 ‘레드불’이다. 시행착오 3년 끝에 2009년 공동창업자 디트리히 마테시츠 회장은 구 동독 도시 라이프치히 인근에 있는 5부 클럽 SSV 마르크란슈태트를 찾았다. 협상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엄밀히 말해 인수가 아니라 5부 리그 회원사 자격 양도였다. 레드불은 클럽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싹 갈아엎었다. 먼저 클럽명을 ‘Rasen Ballsport Leipzig’로 바꿨다. ‘RB 라이프치히’란 표기는 필연적으로 모기업 브랜드 ‘레드불(Red Bull)’을 연상시킨다. 거대 기업의 전폭적 지원 아래서 라이프치히는 7년 만에 분데스리가 승격에 성공했다.
하위 리그 기준으로 라이프치히는 압도적 부자였다. 하지만 쾌속 승격이 가능했던 요인에는 랄프 랑니크의 능력도 컸다. 대학에서 영문학과 체육학을 전공한 랑니크는 축구 지도자가 되어 3부 TSG 1899 호펜하임을 두 시즌 반 만에 분데스리가에 올려놓았다. 2012년 레드불의 마테시츠 회장은 당시 샬케 04 감독직에서 물러나 안식년을 보내던 랑니크를 ‘라이프치히 및 잘츠부르크 통합 단장’으로 영입했다.
랑니크 단장은 유럽 축구판 ‘머니볼’을 실천했다. 자기 발전 욕망이 극대화된 20대 초반 선수들을 집중 영입했다. 선진적 스포츠과학 기술을 활용해 선수단의 경기력을 극대화했다. 1980년대부터 함께 전술을 연구한 분석가 헬무트 그로스도 영입했다. 이탈리아 압박 전술의 대가 아리고 사키의 경기를 독일식으로 재해석한 두 사람의 전술은 요즘 팬들 사이에서 ‘게겐프레싱(역압박)’으로 불린다. 랑니크 단장은 <포포투> 인터뷰에서 “첫째, 최고의 득점 찬스는 볼을 빼앗은 뒤 10초 안에 찾아온다. 둘째, 볼을 차지하는 최고의 방법은 빼앗긴 뒤 8초 이내에 되찾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랑니크가 직접 감독을 맡은 2015-16시즌 RB 라이프히치는 2부 2위 자격으로 1부 승격에 성공했다. 독일 축구계는 신입생 RB 라이프치히를 혐오했다. RB 라이프치히는 축구 클럽보다 거대 기업이 소유한 ‘상품’으로 인식되었다. 유럽 축구 문화의 저변에 깔린 민중성이 철저히 결여되었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증오 속에서 분데스리가 승격 시즌이 개막되었다. 랄프 하젠휘틀 감독과 젊은 선수들은 2라운드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1-0으로 꺾었다. 경기 종료 1분 전, 19세 올리버 버크의 패스를 20세 나비 케이타가 결승골로 연결했다. RB 라이프치히는 승격팀 개막 최다 연속 무패 신기록(13경기)을 작성했다. 다음 해 5월 최종 순위표에서 RB 라이프치히 위에 있는 팀은 바이에른 뮌헨밖에 없었다. 승격 시즌 리그 2위, 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권 획득. 2019년 여름 라이프치히는 커다란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세계 축구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감독 율리안 나겔스만을 영입한 것이다. 랑니크 단장이 “이대로 발전하면 위르겐 클롭과 펩 과르디올라 수준까지 오를 수 있다”라고 극찬했던 주인공이다. 나겔스만은 랑니크 단장과 비슷한 길을 걸었다. 부상으로 일찍 축구를 포기한 후 대학에서 경영학과 스포츠과학을 전공했다. 2007-08시즌 아우구스부르크에서 상대 분석 담당자로서 토마스 투헬 당시 감독을 보좌했다. TSG 1899 호펜하임의 첫 풀타임 시즌에 나겔스만은 리그 4위로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획득했다. 스포츠과학 전공자답게 나겔스만 감독은 경기력 향상을 위해 첨단 장비를 활용했다. 훈련장에 카메라 4대를 설치했고, 그 화면을 한쪽에 들어선 40㎡ 크기의 대형 스크린에 뿌렸다.
나겔스만 감독은 RB 라이프치히 감독 부임 인터뷰에서 “RB 라이프치히와 나는 동일한 DNA를 지녔다. 이곳에 온 것은 논리적 판단이었다”라고 밝혔다. 나겔스만 감독과 RB 라이프치히는 11월 2일 레드불 아레나에서 마인츠를 8-0으로 갈가리 찢었다. 주전 스트라이커 티모 베르너는 3골 3도움으로 대폭발했다. 바이에른 뮌헨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허우적대는 동안 RB 라이프치히는 리그 6연승을 달려 분데스리가 선두에 올라섰다. 올 시즌 RB 라이프치히는 랑니크식 압박에서 나겔스만식 공격 축구로 변신했다. 리그 17라운드 기준, RB 라이프치히는 리그 8경기 연속 3골 이상을 기록 중이다. 팀 득점에서 스타 군단 바이에른 뮌헨(46골)보다 2골 많다. 경기당 득점이 2.82골에 달한다. RB 라이프히치의 올리버 만츨라프 사장은 “율리안이 부족한 부분을 메워 팀을 발전시키고 있다. 밀집 수비로 나오는 팀을 상대하는 해답을 찾았다. 지난 시즌 비기거나 패했을 법한 경기에서 올 시즌 우리는 승점을 더 많이 얻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공격 시 문전에 공격수가 3명 이상 들어감으로써 상대 수비 블록 전체를 박스 안으로 끌어당긴다. 세컨드볼이 흘러나오는 아크 부근에 생기는 공간에서 RB 라이프치히 미드필더들의 중거리포가 작렬한다. 올 시즌 최고 활약을 펼치는 마르셀 사비처는 “우리는 더 이상 거친 플레이를 하지 않는다. 극단적 전방 압박도 없다. 과거처럼 역습 위주가 아니라 점유하면서 경기를 푼다”라고 나겔스만 효과를 설명한다. 1부까지 치고 올라가는 과정에서 라이프치히가 돈을 연료로 태웠다는 사실을 부인하긴 어렵다. 하지만 분데스리가와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2019년 2월 RB 라이프치히는 연 매출 2억1천7백80만 유로(한화 약 2천8백1억원)를 발표했다. 바이에른 뮌헨(7억5천40만 유로)의 29%에 불과하다. 승격 네 번째 시즌을 리그 선두로 보내는 올 시즌, 라이프치히는 ‘스몰 클럽’에 지나지 않다. 하지만 가장 자본주의적으로 탄생했다. 누구보다 든든한 물주와 함께 1부까지 올라왔다. 그랬더니 RB 라이프치히는 갑자기 골리앗을 상대하는 다윗 신세가 되었다. RB 라이프치히는 정말 이상한 클럽이다. 충분히 매력적이고.
WORDS 홍재민(축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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