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 Perth
호주의 서쪽 끝. 가족과 함께 퍼스에 사는 친척집을 방문했을 때다. 시간이 남아 피너클(Pinnacles)이라는 돌기둥이 가득한 사막에 갔다. 별 사진을 찍고 싶었다. 사막에 도착하자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사진 찍을 준비를 마치고 어둠이 완전히 내리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밤은 오지 않았다. 사막에는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다. 돌기둥은 그렇게 세월을 견뎌왔다. 한국에 이런 명소가 있다면 사진 찍는 사람으로 가득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는 차도 없는 사막에서 혼자 사진 찍는 기분은 이상했다. 외로움과는 다른 종류의 기분이었다. 다시 하늘을 봤다. 까만 밤도 아닌데 달은 너무 크고 밝았다. 여기까지 온 게 아쉬워 차분히 셔터를 눌렀다. 구름이 많고 달이 밝아 맑은 별 사진을 담진 못했다. 사진을 몇 컷 더 찍고 싶었지만 차에서 기다리는 가족 때문에 자리를 떠야 했다. 차가 출발하고, 창밖으로 사라지는 사막을 보며 다짐했다. 시간 내어 호주에 다시 오리라. 까만 밤 반짝이는 사막의 별들을 모으리라고. 어서 산불이 멈추고 평화로운 사막이 제 모습을 드러내길 바라본다.
WORDS & PHOTOGRAPHY 윤지영(영상감독, @justshootpic)
유타 Utah
로드 무비를 좋아한다. 영화에서처럼 미국 서부를 버스로 여행하고 싶었다. 서부 버스 여행은 말 그대로 하루 종일 버스만 탄다고 들었지만 그럼에도 수많은 영화에서 보았던 그 도로들을 직접 접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새로운 풍경에 대한 호기심은 이내 지루함으로 바뀌었고, 익숙하게 되었다. 몇 시간을 달려도 끊임없이 보여 신기했던 소 떼 풍경은 둘째 날부터는 당연한 것이 되었다. 버스에서 많은 시간을 로드 무비들을 감상하면서 보냈는데 당연한 풍경 속에서 해가 뜨고 지는 순간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아서 카메라로 담아두었다. 해가 뜨기 전 새벽이었고 멀리서 오는 차의 라이트와 버스 라이트에 반사된 표지판들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89번 도로는 로드 무비의 한 장면이 되는 순간이었다.
WORDS & PHOTOGRAPHY 이수환(포토그래퍼)
바투 카라스 Batu karas
한국인인 나와 일행을 신기해하는 사람 반, 반가워하는 사람 반. 지난 11월 다녀온 인도네시아 치줄랑(Cijulang)에 위치한 작은 어촌 마을 바투 카라스는 서퍼들 사이에선 유명한 장소이지만, 서핑에 관심이 없다면 동남아의 깡촌이라 할 시골이다. 스마트폰 사용이 가능한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 흔한 기념품 가게도, 환전소도, 술집도 없었다. 웬만한 가게는 간판은 물론 상호도 없었다. 현지인에게 물으니 모두 와룽(Warung, 인도네시아어로 가게라는 뜻)이라 부르면 된단다. “여기는 해변 앞 와룽, 뒤편엔 삼거리 와룽, 골목 와룽….” 도시인에게 여러모로 불편한 이 마을의 밤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뭘까. 어쩌지 못하고 있는데 현지 친구가 생겼다. 아니, 함께 파도 타던 사이니까 자연스럽게 뭉쳤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다. 이름은 안디(Sandi)와 하비비(Habibie). 안디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딸 나디아의 듬직한 아빠고, 하비비는 그 동네에서 유명한 플레이보이다. 두 사람은 바다와 모래밭에선 못하는 게 없는 비치 보이며, 동네 홍반장이라고 바꿔 말해도 무방했다. 두 친구는 한 달 가까이 우리의 서프보드를 맡아주고, 빌려주고, 도와줬다. 그뿐만 아니다. 담배도 나눠 피우고 함께 술도 마시고 농담도 따 먹고 가이드 역할도 자처했으며, 인도네시아말로 이름도 지어줬다. 덕분에 우리는 현지인만 아는 명소를 다녔고 그 모른다. 안디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현지 물정에 비하면 엄청난 부자”였다. 그래도 두 사람에게 우리가 어떤 의미인지는 묻지 않았다. 물어 뭐해, 함께 파도 탔으면 다 친구라고 믿는다. 떠나기 전날 안디에게 바투 카라스의 단어 뜻에 대해 물었다. “‘강한 돌’이라는 뜻이야.” 그러니까 안디와 하비비는 바투 카라스처럼 단정한 사람들이었다. 안디와 하비비는 늘 웃는다. 그 웃음은 맑다. 꼼수나 요행을 바라는 동네 청년 무리에 섞여 여행자로선 경험할 수 없는 지역 문화와 온기를 나눴다. 야자수 아래 모여 기타를 튕기며 생경한 언어의 노랫말을 서로 따라 불렀고, 말이 안 되면 스마트폰으로 이미지를 보여주며 손짓 발짓으로 대화했다. 정전이라도 된 듯 깜깜한 어촌 마을에서 그렇게 풍성한 밤을 맞이할 줄이야. 사실 나와 일행은 안디와 하비비에게 큰돈 펑펑 쓰며 몰려다니는 남자들로 보였을지도 사람은 그렇게 웃지 못한다. 그 미소를 본 우리 모두 한마음처럼 느끼고 믿어서 그렇게 섞이게 된 게 아닐까. 우리는 바투 카라스를 떠나 추운 서울로 돌아왔지만, 앞으로도 친구일 것이다. 바다 건너 생경한 마을에 반가운 친구를 남겨두는 일. 우리의 여행은 끝났지만, 추억은 남았다.
WORDS & PHOTOGRAPHY 양보연(<데이즈드 코리아> 피처 에디터)
모로코 Morocco
해외 출장을 자주 다닌다. 한 번은 북아프리카로 촬영 갈 일이 생겼다. 그렇게 처음 모로코에 갔다. 서양 문화권과는 전혀 다른 이국적인 땅이었다. 모로코에서의 첫날밤을 맞아 숙소 밖을 나섰다. 해가 질 무렵 들른 휴게소에서 호기심에 셔터를 눌렀다. 우연한 순간 완벽한 이미지가 포착됐다. 넓은 도로를 건너는 사람, 지나가는 오토바이, 사람을 향해 비추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그 뒤로 떨어지는 붉은 노을. 연출된 이미지가 아니다. 모로코에서 느낀 이국적인 정서가 사진에 담겼다.
WORDS & PHOTOGRAPHY 두윤종(포토그래퍼)
밀라노 Milano
길눈이 어두워서 현재 거주하는 서울에서 길을 자주 잃는다. 처음 간 밀라노에서도 길을 잃었다. 화려한 도시 야경과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밀라노 한복판을 걷고 있었는데 정신 차려보니 한적한 곳이었다. 계획 세우지 않고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해 여행지에서는 항상 길을 잃는 편이다. 그때마다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진다. 시선이 머무는 것들을 카메라에 담아내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낯선 사람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호기심이 두려움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탈리아 여행 사진 중에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되었다.
WORDS & PHOTOGRAPHY 이수환(포토그래퍼)
오사카 Osaka
물질적인 풍요보단, 정신적인 풍요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다. 지난해 11월 일본에 다녀왔다. 오사카를 시작으로 야마나시현을 돌아 다시 오사카로 복귀하는 모터사이클 투어를 했다. 투어를 마무리하고 저물 무렵, 어느 조용한 주택가를 산책했다. 따뜻한 색감의 조명이 비치는 창문이 예쁜 가정집을 보았다. 마음속에 그려온 이상적인 집이었다. 거실에서는 셀로니어스 몽크의 피아노 곡이 나지막하게 흘러나오고, 주방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저녁 식사를 하며 함께 하루를 정리하는 모습. 그동안 꿈꿔온 행복의 표상이다. 긴 여행을 마치고 오사카 주택가에서 발견한 사진 한 컷이 행복한 삶의 이정표가 되었다.
WORDS & PHOTOGRAPHY 이정규(포토그래퍼)
홍콩 Hongkong
3년 전, 홍콩으로 출장 간 적이 있었다. 홍콩 방문은 그때가 처음이었고 그 후로 다시 홍콩을 찾은 적은 없다. 그 도시가 나에게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내게 남긴 조용하면서도 강한 울림만큼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명하다. 현지에 살고 있는 친구의 안내로 우리 일행은 소호 거리 조용한 골목에 위치한 프라이빗 클럽에 갔다. 그곳에서는 현지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부분 서양에서 온 젊은 사람들이었다. 얼핏 활기차 보였지만 외로움을 달래려고 밤거리로 쏟아져 나온 젊은 이방인들이었다. 그녀는 그 클럽의 주인이었다. 웃는 것 같으면서도 담담한 그녀의 얼굴 기색이 한눈에 나를 사로잡았다. 크게 울리는 음악 소리와 다투기라도 하듯 모두가 큰 소리를 외치며 들뜬 모습이었지만 그녀의 담담한 무표정만큼 활기차진 못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정말로 당황한 것 같지는 않았다.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을 뿐이다. 내가 카메라 렌즈를 그녀 쪽으로 향했을 때 눈을 피하며 수줍은 듯 지은 미소가 사진에 담겼다. 눈치채기 힘들 만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녀의 무표정을 무방비하게 만드는 그 순간이 내가 사진을 찍으며 느끼는 큰 즐거움 중 하나다. 내가 클럽 앞에서 친구와 얘기 중일 때 그녀가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please be quiet.” 밤이 늦었고 조용한 골목이기 때문에 주민을 배려해달라는 경고였을 것이다. 그 얼굴에서는 강요하는 기색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그녀의 얼굴이다. 3년이 지나 홍콩 사회가 떠들썩한 요즘 그녀의 담담한 무표정과 작은 외침은 내 마음속에서 어떠한 투쟁보다도 큰 울림으로 남아 있다.
WORDS & PHOTOGRAPHY 김선익(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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