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과 백. 임시완을 보면 떠오르는 것. 청신한 얼굴을 한 청년은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자주 먼지투성이가 되고 피와 얼룩을 묻혔다. 그럴수록 그는 더 하얗게 빛났다. 말간 낯으로 촬영장에 성큼 들어온 임시완은 소매 없는 흰 상의를 걸치곤 자연스레 몸을 움직였다. 모든 질문에 대차게 답했고, 눈을 반짝이며 “어떻게 느끼셨죠?” “어디서 그런 점을 보셨어요?”라며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내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바뀐 건 아닌지 착각하게 했다. 임시완은 자주 “알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궁금하고, 알고 싶고, 하고 싶은 건, 살고 싶은 것이라고, 그 마음이 뜨거운 것이라고. 한 해의 마지막 날, 하고 싶은 일은 잔뜩 있지만 새해 소망은 아무것도 빌지 않겠다는 남자를 만났다. 그는 그것이 행복이라고 말했다.
촬영은 어땠나? 너무 ‘멋진 척’하긴 싫다고 미리 말했다.
난 오글거리는 걸 정말 못한다. 움직이고, 눈을 감고, 자연스러운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좋았다.
아이돌은 어떻게 했나?
아휴, 쉽지 않았지. 직업이니 열심히 했지만. 하하하.
맑다, 선하다, 순수하다. 사람들이 임시완에 대해 느끼는 인상이다. 실제로도 그렇나?
그렇게 봐주시니, 더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다. 오히려 내가 그 프레임에 맞춰간 것에 가깝다. 예전엔 너무 엄격한 도덕적 잣대가 생길까봐 그런 이미지를 탈피해야 하나 싶기도 했는데, 벗어나는 게 더 노력해야 할 일이더라.
남들이 보는 프레임에서 벗어난 임시완의 모습은 어떤가?
반듯한 이미지가 있다 보니, ‘쟤는 어떤 재미로 살까’ 의구심을 가지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 난 흥이 되게 많다. 휴대용 노래방 마이크를 들고 다닐 정도다. 돌발적인 면도 있고, 노는 걸 좋아해서 아프지도 않다. 아프면 못 노니까.
욕심 많나?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엄청 강하다. 작품을 선택할 때도 주변에서 제발 좀 쉽게 가라고 할 정도로 고생스러운 캐릭터와 연기에 마음이 끌린다. 스스로를 극단까지 밀어붙여 지치게 할 때도 있다. 이젠 내 성격을 인정했다.
왜 스스로를 그렇게 몰아붙이나?
지금보다 좀 더 날 채찍질하면, 원래 내가 가진 것보다 잘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 난 연기를 처음 할 때 다른 배우들보다 시작점이 월등히 떨어졌다. 연기를 배운 적이 없었으니까. 흉내 낼 수도 없고, 어떤 척을 할 수도 없고, 진짜를 연기해야 했다. 필연적인 일이었다.
당신에게 진짜란 무엇인가?
거짓 없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
거짓말 못 하나?
티 난다. 많이 난다. 가짜를 진짜처럼 설득할 자신이 없다. 그런데 내가 진짜를 하면 그건 의심의 여지 없이 진짜 아닌가? 그러면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는 거다.
‘척’을 못해서 진짜 해버리고 말지 않나. <오빠 생각> 촬영할 땐 피아노 치는 척하기 싫어서 쇼팽 녹턴 4번을 배워서 직접 쳐버렸다고. 왜 척하는 게 싫은가?
내게는 그런 DNA가 없는 것 같다. ‘척’을 잘하면 분명 편한 게 있는데, 너무 못하니 어떨 땐 불편할 정도다.
최근에도 ‘척’하는 게 싫어서 진짜 해버린 게 있나?
영화 <보스턴 1947>에서 마라톤 선수 서윤복을 연기하면서 마라톤을 배웠다. 포즈만 연습한 것과 실제로 마라톤을 하는 건 엄청난 차이가 있다. 대회에도 두 번 나갔다. 손기정배 마라톤에선 손기정 선수의 번호표를 달고 뛰니 책임감이 들더라. 10km를 45분에 뛰는 게 목표였는데, 책임감에 불타올라 아드레날린이 솟구친 나머지, 41분에 주파했다. 41분이라니 또 아쉬운 거다. 3월에 나갈 대회에선 30분대에 완주하는 게 목표다. 그리고 또 하나, 몸을 만들었다. 지방을 빨리 연소시키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그런 것엔 감흥이 생기지 않더라. 내 힘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난 성향상 몸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 반복 운동을 유독 괴로워하고, 삼시세끼 닭가슴살 먹는 것도 고역이고. 하지만 결국 체지방률을 7%로 만들었다. 온 세상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다! 나 스스로 못하는 것 하나를 지운 거니까.
포기를 모르는 남자네.
실현 가능한 일은 하면 되는 거니까.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일은 시간을 들여 노력하면 이뤄낼 수 있다. 대신 지나간 건 지나간 거다. 뒤돌아보지 않는다. 과거보다 현재가 더 중요하니까.
지금 임시완에게 가장 두려운 건?
현재를 흘려보내는 것. 24시간을 꽉 채워 살고 싶다. 20대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이젠 아니다. 하하. 연기하며 앨범도 준비하고, 팬미팅, 화보 촬영, 예능도 하고, 새로운 사람들과도 많이 만나려 한다. 세상에 나가고 싶은 욕구가 크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고, 신년 목표는 중국어, 즉흥적으로 연주할 수 있는 악기를 배우는 것, 노래하는 것이다. 노래는 만국 공통어니까.
가수로서의 욕심도 여전한가?
물론. 솔로 앨범을 상의 중이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서 이 업계에 발을 들였고, 그게 나의 시작이었다. 살아가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졌다. 솔로 곡은 부족해도 직접 작사 작곡하고 싶다. 회의 결과 나온 결론은 중구난방이라는 것. 하하. 추려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좋은 의미에서 집요함, 호기심 같은 것이 느껴진다.
어떤 면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나? 어쩐지 내 치부를 끌어내는 것 같은데, 모르는 세계를 알고 싶다. 동시대 사람은 모두 같은 세상에 있지만, 누군가는 더 많은 걸 보고 느낀다. 그런 걸 파헤치고 싶다. 더 많은 걸 보고 싶거든.
인터뷰어에게 역으로 질문을 퍼붓는 게 그 방증이다. 예능에 출연해 “저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요”라며 MC에게 묻는데 눈이 반짝이더라.
모르는 세상을 하나라도 더 알고 싶은 마음이다. 마니아나 컬렉터만 아는 세계도 있지 않나? 왜 저렇게 열광할까? 저기에 뭐가 있어서? 그래서 언어를 더 배우려 하는 거다. 해외에서 소통되는 만큼 누리는 게 달라지더라.
어딜 다녀왔길래?
싱가포르. 작은 지구를 보는 것 같았다. 정돈된 도시 국가인데, 모든 걸 한데 모아놓았더라. 여기 가면 이 나라, 저기 가면 저 나라 같고, 도시 한복판에 있다가도 20분 만에 휴양지에 닿을 수 있다. 다음엔 깨끗한 바다를 가고 싶다. 아프리카에도 세이셸 같은 좋은 휴양지가 많다.
임시완은 배우가 안 됐다면 뭘 했을까?
기계공학과를 나왔으니 엔지니어를 했겠지. 어릴 적 부산 외곽 동네에 살았다. 연예인은 나와는 너무 먼 직업이었고, 시야도 좁았다. 시키는 공부 열심히 하고, 내성적이고. 반장도 남이 판을 깔아줘서 된 거다. 속으로 ‘나 추천해주면 좋겠다, 준비해왔는데’라고 생각하는 애였다.
평범했던 대학생 임웅재를 떠올리면 어떤 게 바뀌었나?
사회성이 생겼지. 진지하기만 한 성격이었다면 이젠 재미도 추구한다. 과거의 나라면 더 비판적으로 삶을 봤을 거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만족하나?
확신하는 건, 다른 일을 했더라면 난 행복하지 않았을 거다. 배우는 호기심과 모험심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이다. 삶의 만족도가 아주 높은 상태다.
임시완은 왜 연기를 하고 싶나?
평소엔 극단적인 감정을 마주할 일이 거의 없다. 일상적인 감정 안에서 살아가다 연기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극단적인 감정을 겪게 되면, 나도 모르는 나의 새로운 얼굴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게 무척 흥미롭다. 누구나 자기 자신을 다 알지 못한다. 스스로 모니터링하며 계속해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직업이란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할 건가?
로맨스. 일부러 안 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많이 하지 못했다. 멜로든 로맨틱 코미디든, 마음먹고 하고 싶다.
결국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거네. 임시완은 사랑이 중요한 사람인가?
사랑은…, 늘 주변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자기장 같다. 지구를 감싸고 있는 어떤 것.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고, 남녀 사이를 편협하게 이르는 게 아니라 남녀노소를 모두 아우르는 것이다. 그 안에 나도 있다. 단지 그렇다.
시인 같다.
공대생 같지 않나? 하하.
애주가로 유명한데, 오늘도 한잔하나?
당연히. 그런데 난 애주가라기보단 미식가다. 술을 음식으로서 좋아한다. 술의 고유한 맛과 향을 즐기기 위해 마시는 거지, 취하는 기분을 만끽하려 마시는 게 아니다. 보통 술을 좋아한다고 하면 ‘부어라, 마셔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런데 난 그런 걸 즐기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술자리는, 술의 테이스팅 노트를 공유하고, 어울리는 음식을 페어링해 나눠 먹는 자리다. 화이트 와인과 굴, 좋은 트러플 요리는 위스키와도 어울린다. 술 문화에도 이런 건강한 음주 문화가 있다!
요리하는 것도 즐기지 않나?
삶의 행복도를 높이는 것 중 하나다. 내가 한 음식을 누군가 맛있게 먹어주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자랑을 좀 하고 싶은데, 이 사진은 치킨 데리야키 덮밥, 저건 조리병에게 배운 비엔나소시지조림, 저건 마늘밥인데 풍미를 살리려 마늘햄을 다져 넣고 색감을 위해 깻잎을 찢어 넣었다. 레시피를 열심히 찾아 보고, 열심히 차려 먹는다.
한 해 마지막 날이다. 어떻게 보낼 건가?
가까운 사람들과 서로 잘하는 요리를 해서 나눠 먹기로 했다. 어제 처음 돼지불백을 해봤는데, 너무 맛있어서 오늘 재료를 또 사놨다. 술은 일품 진로를 곁들이려 한다. 새해 소원은 빌지 않을 거다. 난 그저 행복을 추구하고,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게 이미 행복이라고 생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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