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 호빵이 나오면 곧 흑당 호빵이 등장한다. 올해 식품업계에선 마라와 흑당의 대격돌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대결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힙한’ 음식들은 곧 도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될 테니까. 지금 벌꿀 아이스크림과 대만 카스텔라를 파는 점포를 서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듯이. 한국에선 특정 메뉴가 빠른 시일 내에 ‘유행’을 탄다. 뭔가가 광풍처럼 유행하면 곧장 베끼기 가맹점, 공장식 프랜차이즈, 온갖 ‘괴랄’한 제품들이 쏟아진다. 마라와 흑당이 ‘누가 더 잘나가나’ 대결하는 동안, F&B 업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EDITOR 이경진
대만 카스텔라는 맛이 좋았다
최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음식 트렌드를 조사해 <외식 인기 메뉴 및 트렌드 변천사>를 발행했다. 2019년 트렌드로 꼽은 것은 흑당 버블티, 무한 리필, 샌드위치, 배달 애플리케이션, 마라, 스페셜티 커피다. 여름내 번졌던 흑당 버블티는 벌써 전소되었고 무한 리필은 저가 식재료가 풍부해지며 나타난 수익 모델, 샌드위치 트렌드는 새삼스럽고 배달 애플리케이션은 시대의 흐름이고, 마라는 이제 한국 음식의 서브컬처쯤 되지 않았나 싶다. 스페셜티 커피는 부산의 모모스커피에서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이 탄생하고 블루보틀까지 서울에 선보이며 올해의 키워드로 꼽힐 만했지만 새로운 현상으로 꼽자면 민망하다. 지금이 한국 스페셜티 시장의 최전성기일 뿐, 지난 10여 년간 지속적으로 발전해왔으니.
아무튼 2019년 트렌드는 현재의 일이라 살갗에 닿기는 한다. 그러나 지난 9년을 되돌아보면 현실 감각이 상실된다. 2010년에는 수제 버거, 2011년엔 막걸리와 주먹밥, 밥버거, 2012년엔 수제 크로켓과 스몰 비어, 2013년은 샤부샤부와 샐러드 바, 포차 주점이 트렌드로 꼽혔다. 2014년은 프리미엄 김밥과 4+4 고기 전문점, 빙수와 아이스크림, 한식 뷔페 레스토랑, 2015년엔 프리미엄 어묵 베이커리, 1인 상차림, 저가 커피, 꿀, 2016년은 대만 카스텔라, 펑리수와 누가 크래커, 푸드트럭을 주요한 트렌드 키워드로 꼽았다. 2017년은 핫도그와 평양냉면, 편의점 도시락, 태국&베트남 음식의 해로 정의했고, 2018년은 냉동 삼겹살과 뉴트로, 꼬막비빔밥, 골목상권, 소곱창의 해였다. 이 의미 없는 단어들은 실존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한때의 정분 같은 뜨거운 기억이 남았다. 누구의 기억이었는지,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도 어느덧 흐릿하다. 대개 잠시 뜨겁다 말았고, 일부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지만 트렌드의 영역은 아니다. 그나마 2018년은 여전히 군불 정도의 온기를 유지하고 있다.
영화 <기생충>은 대만 카스텔라를 중요한 메타포로 인용했다. 1대째 기생충 가장의 인생을 결정적으로 깊은 벙커 아래로 파묻은 것이 대만 카스텔라 전문점이었다. 들불처럼 화르륵 번졌던 커다란 카스텔라를 우리 모두 기억하고 있다. 한 방송이 악의적으로 재료로 사용된 식용유를 문제 삼았지만 사실 대만 카스텔라의 몰락이 무고한 식용유 때문은 아니었다. 모두가 영원히 대만 카스텔라만 먹고 살 것처럼 도처에 대만 카스텔라 전문점이 미투, 미투 하며 돋아난 것이 문제였다.
나는 이런 아이템을 ‘떴다방’이라 부른다. 신축 아파트 단지 앞에 와글와글 몰려드는 부동산처럼, 평야에 나타났다가 모든 것을 갉아먹고 사라져버리는 메뚜기 떼처럼 거대하게 몰려왔다 흔적 없는 파국을 남기는 것. 대만 카스텔라 전문점이 그렇게 사라졌고, 핫도그 전문점이 그렇게 사라져가고 있고, 겨울 한파를 맞닥뜨린 흑당 버블티가 그렇게 사라질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날까. 누군가의 욕망 때문이다. 돈에 대한 욕망이다. 자영업 정글에선 돈을 벌고 싶은 프랜차이즈, 돈을 벌어야 하는 자영업자의 욕망이 왕왕 버무려진다. 돈을 쓰고 싶은 소비자의 욕망을 부풀려 묘사하고, 부풀린 묘사보다도 더 부풀려 낙관하는 나른하고 합법적인 사기극이 시종 반복된다. 이 참극 한복판에서 대만 카스텔라는 정작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 누군지 몰라도 허름한 가격에 그 정도 맛을 만들어낸 것은 칭찬할 일이었다. 나는 나아가 대만 카스텔라가 조급한 욕망에 학대당한 끝에 멸종당했음을 주장하고 싶다. 대만 카스텔라는 맛이 좋았다. 무사히 무럭무럭 자라 몇 년을 견뎠다면, 그 또한 매일은 아니더라도 1, 2년에 한 번쯤은 생각나는 간식으로 성장하지 않았을까. 지하철역에서 델리 만주 향을 맡으면 기어이 한 봉지 사게 되는 것처럼,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어가면 의례인 양 호두과자를 사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도 대만 카스텔라를 돌보지 않았고, 미래를 내다보지 않았다. 대만 카스텔라를 더 맛있게, 더 완성도 높게 만들려는 생각을 아무도 하지 않았다. 그 끝에 이토록 말끔하게 사라졌다. 소모된 생애. 쓸쓸하고 가엾은 절멸이다.
2010년부터 2018년까지의 트렌드 키워드를 다시 읽어보자. 이 중 현재에도 유효하게 이어지는 것은 수제 버거, 프리미엄 김밥, 저가 커피, 편의점 도시락 정도다. 수제 버거는 골목 상권의 장인들과 쉐이크쉑을 위시한 파워 브랜드로 양분되어 성장했고, 프리미엄 김밥은 브랜드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동네 상권에까지 뿌리 내렸다. 저가 커피는 예견된 번창. 맛이나 향 아닌 카페인 그 자체를 원하는 소비자의 니즈를 여전히 저격하고 있다. 덤으로 꽤 마실 만한 품질까지. 편의점 도시락은 그야말로 공상과학 미래 도시 같은 신인류의 식문화를 보여준다. 기술 개발로 갓 차려낸 식사 한 상처럼 맛이 발전했고, 제때에 트렌드를 차곡차곡 담아 넣는 구색까지 혀를 내두르게 한다. 공통점이 읽힌다. 돈과는 별 관계없다. 시대의 맥과 상통하는 필연에 의해 탄생했고, 양적 팽창과 질적 발전이 동시에 이행되었다는 것이 차이다. 돈의 욕망 이전에 인본의 욕망에 따라 움직였다. 더 나은 음식을 선택하고 싶다는 소비자의 욕망을 이해했고, 더 나은 음식을 완성하고 싶다는 장인의 성취욕이 이끌었다. 그리 대단한 장인 정신까지는 아니어도, 시도 때도 없이 들끓고 식어버리는 어지러운 푸드 트렌드의 격류 속에서 소외되고, 소모된 채 사라져가는 것들은 고되고 허망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 매사가 솔로몬의 말대로다. 유행이란 파도 같은 것이라, 잔물결이 찰랑이다 부서져 사라지기도 하고, 쓰나미처럼 덮칠 때도 있다. 그 안에서 완전하고도 불가역적인, 인간의 선의가 담긴 무엇이 해변에 남겨지기도 하니 마냥 고독하지는 않아도 좋다. 파도는 남길 것을 틀림없이 남긴다. 누군가 파도에서 잔해를 건져 올려 보듬기도 한다. 그러니까 마라 호빵과 흑당 호빵이 편의점 도처에서 뜨끈한 김을 내뿜는 2019년의 겨울에도, 멸종 위기의 땅콩과자 노점을 발견하면 쓸쓸하게 두지 말고 한 봉지 반갑게 해후할 일이다.
WORDS 이해림(푸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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