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파이프 암스 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 북부 브레이마(Braemar) 마을은 오랫동안 탐험가와 소설가 그리고 영국 왕실을 매료시켜온 곳이다. 스코틀랜드 전통 축제, 하이랜드 게임(Highland Games)이 열리는 여름이면 엘리자베스 여왕은 마을 근처의 밸모럴 궁전에 머물고 수많은 관광객은 축제를 즐긴다. 1800년대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도 이 마을은 밸모럴 궁을 찾은 귀족에게 거처를 제공했다. 마차와 말을 거느리고 여행하던 이들에게는 코칭 인(Coaching Inn)이라는 숙소가 필요했다. 마차들을 위한 여관이란 뜻이다. 그리고 올해, 1800년대의 코칭 인이 3년간 복원과 보수 작업을 마치고 5성급 호텔 파이프 암스(The Fife Arms)로 거듭났다. 세계적인 갤러리 하우저 & 워스를 이끄는 이반 & 마누엘라 워스 부부가 이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으니, 마차가 머물던 공간을 예술 작품으로 가득 채울 것이라는 예상은 어렵지 않다. 46개의 객실로 구성된 호텔에 예술 작품이 1만2천 점 들어섰다. 이들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러셀 세이지, 지역 출신의 역사학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스코틀랜드 고지대의 전통과 관습을 반영해 호텔을 꾸몄다. 심지어 복도를 채운 천상의 숲 내음도 수개월에 걸친 현지 식물과 꽃에 대한 연구의 결과물이다. 객실 또한 역사와 시간을 재현한 장식과 사물로 채웠다. 이곳에 머물면 말 그대로 빅토리아 시대 귀족이 된 듯한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② FCC 앙코르 바이 아바니 캄보디아
옛 사람들은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을 때, 산에 올라가 나무 하나를 찾아 그 밑에 구멍을 파고 자기 비밀을 속삭인 뒤 흙으로 봉했다고 한다. 영화 <화양연화>의 남자 주인공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의 돌구멍에 자기 비밀을 속삭였다. 앙코르와트가 자리한 시엠립은 최첨단의 시대에도 영화처럼 아련한 기억과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도시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듯한 도시에서는 시간이 정지한 듯한 곳에 머무는 것이 어울린다. 프랑스 식민 시절 총독 저택을 호텔로 만든 FCC 앙코르 바이 아바니(FCC Angkor by Avani) 같은 곳 말이다. 콜로니얼 건축 양식을 비교적 잘 보존한 이곳은 외신 특파원들의 클럽으로도 사용되었다. 2004년 건축가 게리 펠(Gary Fell)의 손길이 닿은 이곳은 최근 프놈펜과 방콕의 젊은 건축 & 인테리어 스튜디오 블룸 아키텍처와 말리 위트크래프트(Malee Whitcraft)가 리노베이션 작업을 마쳤는데, 과거의 우아함과 현대의 세련미가 조화를 이뤄 다시 태어났다. 키가 큰 열대 나무와 우거진 초록 잎들 사이에서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간직한 듯한 옛 시절의 정취가 여전히 남아 있다. 맨션 입구에는 크메르 문화를 상징하는 조각상이 투숙객을 맞이한다. 이처럼 유럽풍 콜로니얼 양식뿐 아니라 시엠립 역사 유적지의 미학이 호텔 곳곳을 수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한때는 외신 기자들이 술을 앞에 놓고 소란스럽게 정보를 교류한 장소이자 바쁜 손길로 타자기를 치던 장소였음을 자랑스레 내비치는 듯한 타자기와 다이얼 전화기 등의 앤티크 소품도 시간을 다시 되돌려주는 듯하다.
③ 아만갈라 스리랑카
바위를 뜻하는 싱할라어 갈라(Gala)에서 유래한 스리랑카 남서해안 도시 갈레(Galle)는 16세기와 17세기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에 연이어 점령된다. 이곳은 19세기 말 콜롬보에 항구가 건설되기 전까지 수백 년 동안 스리랑카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 도시였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영토 안의 좁은 거리와 골목길에 유럽풍 레스토랑과 카페가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1633년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에는 조망과 포탄 설치용으로 건설된, 아시아에서 가장 큰 요새가 들어섰다. 3백 년이 넘는 역사의 요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로 선정됐다. 이 요새 안에 호텔 아만갈라(Amangalla)가 자리한다. 호텔의 가장 오래된 장소는 1684년에 지어졌는데, 네덜란드 장교들의 본부로 사용되다 1백40년 동안 뉴 오리엔탈 호텔로 운영돼 스리랑카를 찾은 유럽인들이 머물렀다. 지난 2005년 아만에서 인수해 ‘갈라’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하지만 이름만 바뀌었을 뿐 석조물과 광택이 있는 티크 바닥을 포함해 건물의 많은 부분이 그대로 유지됐다. 네덜란드 식민 시절부터 ‘자알(Zaal)’이라 불린 그레이트 홀은 높은 천장과 웅장함을 자랑한다. 당시의 가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레스토랑에서는 골동품 식기에 스리랑카 요리와 유럽풍 요리를 선보인다.
④ JW 메리어트 푸꾸옥 에메랄드 베이 베트남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토대를 마련한 프랑스의 생물학자 장-바티스트 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 그는 1800년대 초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업적은 동양에도 널리 전해져서 베트남 남서부에 위치한 섬 푸꾸옥(Phu Quoc)에는 그의 이름을 딴 대학교가 설립됐다. 1900년대 초 생겨나 1940년대에 문을 닫기까지 이 섬에 살던 프랑스인이 다닌 학교는 시간이라는 안개 속에 사라지는 듯했다. 럭셔리 리조트 디자인의 대가라 불리는 건축가 빌 벤슬리(Bill Bensley)가 이 이야기에 영감을 받기 전까지 말이다. 섬 최초의 럭셔리 리조트 호텔 건축 프로젝트를 맡은 그는 라마르크 대학을 부활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20세기 초반 프랑스 식민 시대 건축 양식을 구현하고 2백34개의 객실을 품은 빌라와 호텔 내부 공간을 아카데미 콘셉트로 꾸민 후 학과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오리지널 앤티크 소품 및 가구를 구하기 위해 유럽 전역을 수차례 돌아다녀 5천 개가 넘는 아이템들로 공간을 채웠다. 컨시어지 데스크에는 프랑스에서 공수한 앤티크 벨 45개를 놓았다. 투숙객은 체크인과 함께 스튜던트 북을 받는다. 이 공책에는 리조트 내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액티비티를 시간표 형태로 정리해 강의 스케줄을 짜듯 하루를 계획할 수 있다. 호텔 곳곳을 탐험하다 보면 자연의 진화를 보여주는 빈티지 가구, 수업 도구, 목공 도구, 인쇄물 및 스케치를 발견하게 된다. 화학 실험실로 꾸민 칵테일 바 ‘화학과’에서는 화학자로 분한 바텐더가 만들어준 칵테일로 목을 축일 수 있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