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Laren GT
엔진 4.0리터 V8 트윈터보 변속기 7단 듀얼 클러치 SSG 배기량 3,994cc 최고출력 620마력 최대토크 64.2kg·m 최고속도 326km/h 복합 연비 8.4km/L 가격 (부가세 포함) 2억9천7백만원부터
헬리콥터가 기다렸다. 니스 공항에서 숙소까지 타고 갈 이동 수단이었다. 차로 가면 두 시간, 헬리콥터로 가면 20분이면 족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보통 차로 간다. 하지만 보통이 아닌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도 있다. 누릴 수 있는 건 확실히 누리는 사람들. 이동이 아닌 최고의 경치를 즐기는 유희를 선택하는 사람들. 니스에서 만날 맥라렌 GT를 택하는 사람 같은.
니스에 온 목적은 맥라렌 GT를 시승하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전 세계 기자를 불러 첫선을 보이는 자리. 첫인상을 좌우하는 중요한 자리란 얘기다. 더불어 맥라렌 GT의 성격도 잘 보여줘야 하는 자리다. 보통 차량의 성격에 따라 시승 장소를 결정한다. 단지 풍경 좋고 유명한 관광지를 쫓지 않는다. 새 모델의 매력을 증폭시키는 장소. 맥라렌 GT는 니스를 택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니스에서 칸으로 가는 여정. 니스와 칸은 유럽의 보석 같은 곳이다. 자연 풍경뿐 아니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휴양지다. 슈퍼 스포츠카와 휴양지는 어울리는 조합이긴 하다. 하지만 맥라렌 GT가 선택한 이유는 단지 그것만은 아니었다.
맥라렌 하면 서킷이 먼저 떠오른다. 그럴 수밖에 없다. 맥라렌은 레이스 서킷에서 나고 자란 브랜드인 까닭이다. 레이스를 하다 보니 양산차도 만들게 된, 레이스 DNA로 똘똘 뭉친 브랜드. 어딘가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 그렇다. 페라리가 탄생한 배경과 흡사하다. 각자 이탈리아와 영국의 레이싱팀으로 출발했다. 그러다가 슈퍼 스포츠카를 양산한 수순도 같다. 맥라렌이란 이름은 맥라렌 레이싱팀을 만든 브루스 맥라렌에서 왔다. 1963년부터 지금까지 맥라렌 레이싱팀은 자동차 경주에서 역사를 써내려왔다. 포뮬러원(F1)부터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 캔암(Canadian-American Challenge Cup, CAN-AM) 레이스, 인디애나폴리스 500 등등 명망 높은 대회에서 활약했다. 수차례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맥라렌이라는 이름을 드높였다. 맥라렌과 서킷이 엔진과 변속기처럼 절로 연상되는 이유다. 맥라렌이 그동안 내놓은 차량들은 슈퍼 스포츠카다. 순수하게 달리는 데 집중한다. 다른 슈퍼 스포츠카 브랜드와 비슷하지만, 또 다르다. 보다 고집스럽게 장르를 추구한다. 그런 맥라렌이 그랜드 투어링, 즉 GT를 내놓았다. GT는 장거리를 빠르고 편하게 달리는 차종을 뜻한다. 보통 고급스러운 고성능 세단이나 쿠페가 여기에 속한다. 맥라렌이 선보이는 GT는 어떨까? 헬리콥터를 타고 경치에 취하면서도 떠나지 않은 궁금증이었다. 햇빛이 내리쬐는 호텔 앞마당에 맥라렌 GT가 도열했다. 황금에 벽돌을 조금 갈아 넣어 빚은 듯한 오묘한 색이 당첨되길 기대했다. 맥라렌 GT의 (마케팅으로 내세우는) 대표 색상이었다.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고급스러웠다. GT라는 어감에도 왠지 어울렸달까. 하지만 내 앞에 멈춰 선 맥라렌 GT는 햇빛을 받으면 옅게 녹색이 번지는 짙은 회색으로 결정됐다.
딱히 아쉽지 않았다. 외관 색은 다소 심심할지 몰라도 실내는 원하던 색이었으니까. 맥라렌 GT는 활처럼 휜 곡선으로 빚은 차체 그 자체로 눈에 띈다. 해서 외관은 다소 점잖은 회색으로 누르고 실내가 과감한 게 더 매력적일 수도 있다. 섹시한 색으로 안감을 처리한 회색 수트의 재치랄까. 물론 내가 시승할 모델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실내는 와인을 머금은 듯 붉은 기운이 돌았다. 버건디라고 해야 하나. 붉은색과 갈색 어디쯤 절묘하게 배합한 색. 탐스러운 색을 입힌 가죽으로 실내 전체를 둘렀다. 정말 전체다. 빈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가죽 일색이다. 그 사이를 약간의 하이글로시와 무광 크롬 몰딩으로 마감해 지루함을 덜었다. 그 배합 또한 적절했다. 딱 필요한 만큼만 절제해 넣었다. 차량에 필요한 버튼 및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또한 최대한 간결하게 처리했다. 너무 간결해 미래적인 형태로 보이기까지 했다. 고풍스런 가죽과 미래적인 인상이 이렇게 어울릴 줄 몰랐다.
타 브랜드 슈퍼 스포츠카는 화려함을 추구한다. 맥라렌은 극도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했다. 최대한 장식을 줄이고 선 하나도 공들여 빚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의 명언은 맥라렌 디자인 철학에도 담겼다. 경량화를 추구하는 맥라렌의 고집이 반영된 결과다. 덕분에 맥라렌 GT의 실내는 미적 영역으로 넘어갔다. 티스푼처럼 매끈한 와이퍼 레버만 만져봐도 알 수 있다. 서늘하게 세공한 패들 시프트는 얼마나 탐스러운지.
실내에서 감탄한 마음을 정리하고 달렸다. 결국 맥라렌이 만든 GT의 진면모는 가속페달을 밟을 때 비로소 드러날 테니까. 묵직한 스티어링 휠을 쥐고 맥라렌 GT와 본격적으로 대면했다. 얼마 달리지 않았는데도 확연한 감각이 도드라졌다. 생긴 것과 다르게 승차감이 긴장을 풀게 했다. 납작 엎드려 서킷을 질주하게 생겼지만, 공도에서 느긋하게 달려도 어울렸다. 슈퍼 스포츠카는 보통 느긋하게 달리면 피곤하다. 무지막지한 출력을 내뿜고 싶은 욕망이 차에 반영된 결과다. 맥라렌 GT는 그런 욕망을 품었는데도 시종일관 부드러웠다.
물론 슈퍼 스포츠카로 접근했을 때 의외로 나긋나긋하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도 너른 품이 꽤 본격적이다. 오히려 조금 달리면 조이고 싶어질 정도다. 당연히 주행 모드 변경 버튼이 있다. 스포츠로 바꾸면 엔진 반응성이 높아지고 서스펜션도 조여진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부담스러운 정도는 아니다. 어느 쪽이든 공도에서 쾌적한 수준이다. 더 강렬한 트랙 모드면 달라지려나. 인스트럭터가 당부해 굳이 트랙 모드로는 달리지 않았다. 이름 그대로 트랙에서 전부 쏟아야 할 때 써야 하니까. 공도에선 전자 장비의 도움이 필요하다. 시승 코스는 와인딩이 주를 이룬 협곡을 넘나들었다. 트랙처럼 줄 지은 코너를 돌아 나가니 맥라렌 GT의 또 다른 성격이 드러났다. 편한데도 민첩하다. 코너를 깔끔하게 돌아 나갔다. 무리했나 싶어도 대수롭지 않게 코너를 빠져나갔다. 당연히 어금니 깨물고 코너에 진입하진 않았다. 절벽 굽잇길에서 굳이 목숨 걸고 달릴 바보는 아니다. 그럼에도 느끼는 건 분명 있었다. 맥라렌 GT의 민첩성. 흔히 생각하는 고급스럽고 웅장한 GT와는 다른 감각이었다.
전날 프레젠테이션에서 본 자료가 떠올랐다. 건조 중량 1,466kg. 경량화를 통한 민첩한 GT. 맥라렌은 GT를 만들어도 정체성을 고수했다. 경량화는 맥라렌의 핵심이니까. 맥라렌 GT의 섀시는 탄소섬유 모노셀 섀시 Ⅱ-T다. 탄소섬유 섀시는 맥라렌이 F1에서 최초로 선보였다. 그 이후로 맥라렌의 상징 같은 뼈대로 자리 잡았다. 경량화의 핵심이기도 하다. 맥라렌 GT에도 맥라렌의 정수는 그대로 살아 있다. 편안한데도 순수한 스포츠카를 지향했다.
그런 점에서 맥라렌 GT는 맥라렌이 바라본 GT다. 기존 GT와는 성격을 달리한다. 조금 짓궂게 말하면 고집스러운 맥라렌이 베푸는 배려랄까. 뒤 트렁크 공간도 넓지만 낮다. 전용으로 골프 클럽백과 캐리어, 가방 등이 들어가긴 하지만 많은 짐을 품긴 힘들다.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분명히 유용하다. 이 정도의 배려. 또한 차고를 높이면 메르세데스-벤츠 C클래스와 지상고와 접근각이 같다. 다소 편한 게 아니라 확실히 편하다. 또 이런 배려.
맥라렌이 바라본 GT는 기존 맥라렌을 고수하되 편의성을 가미한 형태다. 거기에 GT 장르가 주는 진중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안팎에 가미했다. 가죽으로 두른 뒤 트렁크를 바라보노라면 효율성이 잊힐 정도다. 그 자체로 장식인 미드십 엔진을 가렸는데도 아쉽지 않으니까. 출력이야 더 바랄 게 있을까? 620마력, 4.0리터, V8 트윈 터보라는 단어가 증명한다. 맥라렌 GT를 타는 내내 맥라렌의 고집과 배려 사이를 오갔다. 슈퍼 스포츠카의 짜릿한 성능을 만끽하다가 GT로서 배려한 요소에 느긋해졌다. 덕분에 풍경에도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달까. 순수하게 달리는 즐거움과 여정의 여유로움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슈퍼 스포츠카. 그 조합이 독특한 감각을 자아냈다. 맥라렌이 바라본 GT는 여느 GT와는 분명 달랐다. 최종 목적지는 칸 리츠 칼튼 호텔. 시저도어를 열고 내리며 이거 하나는 분명했다. 즐거운 여정이었다. 맥라렌 GT가 확실히 GT카로서 자기 역할을 해낸 셈이다. 조금 다른 방식이긴 했지만, 달라서 더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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