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등을 둥글게 말고 소파에 앉아 다음 일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이미 부산국제영화제의 많은 스케줄을 소화한 상태였다. 프랑스 대사관이 개최한 파티에 참석하고, 새 영화의 갈라 프레젠테이션과 기자회견, GV 세션을 연이어 마친 뒤 몇몇 매체 인터뷰에도 응했다. 일련의 일정이 거의 24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걱정하는 말을 건네자, 감독은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자분자분 말했다. “굉장히 피곤하던 시점을 지나 다시 기력이 생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주 좋은 때에 만났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말에는 특유의 속도가 있다. 걷는 듯한 속도. 음악이라면 ‘모데라토’ 정도랄까.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언어가 지닌 속도는 그의 에세이집 <걷는 듯 천천히> 서문만 읽어봐도 느낄 수 있다. (그는 이 서문에 ‘머리말을 대신하여’라는 제목을 붙였다.) <걷는 듯 천천히>에서 히로카즈 감독은 제목 그대로의 속도로 자신의 영화와 일상, 그가 관찰한 세상 이야기를 들려준다. 힘을 빼고. 걷는 듯한 속도로.
그가 작품을 만드는 리듬 또한 ‘모데라토’에 가깝다. 다큐멘터리와 영화 제작자로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성실하다. 뒤로 빼고, 나자빠지는 시절이라고는 일체 없이 걷고 걷는다. 그가 집필한 또 하나의 책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에는 그의 바이오그래피와 필모그래피가 2페이지에 걸쳐 나열되어 있다. 1962년 출생, 1987년 와세다 대학교 문예학부 졸업 후 티브이맨 유니언에 프로듀서로 입사. 이때부터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1년에서 3년을 주기로 TV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선보인다. 3년 이상의 공백은 전무하다. 이력의 2번째 페이지 말미에는 2016년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가 5월 칸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는 사실이 적혀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 책의 집필을 2016년 5월에 마무리했다. 그리고 지난해 5월, 그는 <어느 가족>으로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다.
큰 상을 받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수상의 여파가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도록 두지 않았다. “원래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 편입니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의 기획은 2015년에 시작되었어요. <어느 가족>을 만들기 전이지요. <어느 가족> 이후에 이 영화를 시작했다면 칸에서의 수상을 조금은 의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수상의 혜택을 받은 순간은 분명히 있어요. 칸에서 상을 받고 난 뒤 이선 호크를 섭외하기 위해 뉴욕에 갔거든요. 이선 호크가 인사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축하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받은 출연 제의는 거절하기 어렵죠.’ 그 순간, 상 받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히로카즈 감독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선보인 새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어느 가족> 이후 약 1년 만의 신작이다. 지난 베니스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처음 공개됐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 영화를 프랑스 ‘올 로케’로 촬영했다. 그가 해외에서 제작, 촬영한 최초의 영화다. 주연은 카트린 드뇌브와 쥘리에트 비노슈, 이선 호크다. 촬영에 함께한 대부분의 스태프 역시 프랑스 사람이다. 일본인 연기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근래 일본 영화의 내향화와 갈라파고스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피력해왔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그가 자신의 영화를 눈에 보이는 공동체적 단위, 경계, 내셔널리즘과는 무관한 영역에 두겠다는 어떤 선언이 아닐까. “영화를 만드는 일은 내셔널리즘과 상관없는 지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스태프와 프랑스 캐스트, 미국 캐스트와 함께 이 영화를 만들면서 또 한 번 실감했어요. 영화를 한다는 건 크고 풍요로운 공동체 안에 있는 것과 같다는 사실 말입니다. 소속 국가, 소속된 공동체를 초월해 영화를 매개로 이어지고 연대할 수 있음을 느낄 때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 그런 순간이 나를 인간으로서 영화인으로서 성장시켰다고 생각해요.”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지금껏 자신의 영화로 문화와 언어를 넘어 세계의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가를 시험해왔다. 이번 영화를 통해 그는 자신을 새로운 시험대에 올렸다. ‘문화와 언어를 넘은 연출이 가능한가.’ 신작의 또 다른 관건은 이것이었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쥘리에트 비노슈의 작은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10여 년 전부터 쥘리에트 비노슈와 교류가 있었습니다. 비노슈가 언젠가 함께 영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제안을 했고, 그에 보답하겠다는 명분으로 이 영화가 시작되었습니다. 플롯 상태로 쥘리에트 비노슈에게 전달한 것이 2015년입니다. 노트의 첫 부분에 이미 카트린 드뇌브와 이선 호크의 이름이 있었어요. 두 배우 모두 기획 단계에서부터 염두에 두었죠. 제 꿈이 이루어진 영화인 겁니다.” 카트린 드뇌브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에서 파비안느 역을 맡았다. 파비안느는 (영화 속에서도) 프랑스 영화계의 대스타다. 쥘리에트 비노슈는 파비안느의 딸인 뤼미에르를 연기하고, 이선 호크는 뤼미에르의 남편으로 등장한다. 외국인 캐스트와 외국인 스태프들로 가득한 현장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극복했을까. “저는 일본어밖에 못합니다. 커뮤니케이션 문제는 저 역시 많이 걱정했습니다. 5년 동안 함께하고 있는 통역가가 영화를 촬영한 6개월간 현장에 쭉 함께해줬습니다. 직접 언어로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손 편지를 많이 써서 배우들에게 전달했죠.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글로 말하고자 했어요. 일본에서 영화를 찍을 때도 애용하던 방법입니다. 대신 이번에는 의식적으로 손 편지의 분량을 늘렸어요. 의사소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요.”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자신의 영화를 어떤 의문으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초기작인 <원더풀 라이프>의 주제 중 하나는 ‘사람에게 추억이란 무엇인가’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다른 사람들과 분명히 구별되는, 특별한 눈을 가졌다. ‘물속을 천천히 유영하는 흙 알갱이를 보는’(<걷는 듯 천천히> 본문 중) 눈 말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모두가 보고도 스쳐 지나가버리는 수많은 알갱이들을 모아 촘촘한 체에 탈탈 털고서 한 알씩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그의 영화가 섬세한 사회적 감수성과 시선을 지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은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와 마주 앉아 지체 없이 물었다. 새 영화는 또 어떤 물음에서 시작되었느냐고.
감독이 영화를 시작할 땐 어떤 형태로든 힌트 혹은 실마리가 존재한다. 뉴스, 사건, 누군가의 삶 등이 기획의 힌트가 되는 거지.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무엇에서 구체적인 힌트를 얻었나?
이번 작품은 ‘연기란 무엇인가?’라는 큰 물음표를 머리에 하나 띄우고 시작했다. 기획은 2015년에 시작했지만 기획의 실마리는 2003년에 촬영한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찍던 당시에 얻었다. <아무도 모른다>를 어린이들과 함께 촬영할 때, 나는 연기자를 대상으로 찍지는 않았다. 그 이후로도 마찬가지다. 많은 경우 모델이나 프로가 아닌 어린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대상으로 작품을 찍어왔다. 그런 인물들에게 연기를 시키고, 연출하다 보니 ‘직업을 연기자로 삼은 이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연기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에 대해서 한 번쯤 다뤄보고 싶었다. ‘연기란 뭘까?’에 관해 생각해보고 싶었다.
영화에서 대배우로 등장하는 카트린 드뇌브를 보며 어쩔 수 없이 키키 키린이 떠오르더라. 당신과의 영화 작업을 여러 편 했던 키키 키린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나. 그녀가 떠난 이후의 시간들이 이 영화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나?
사실상 이 영화의 시작은 2003년이기 때문에 키키 키린의 죽음과 직접적인 관계성은 약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누군가 이 영화를 함께 보고 싶은 배우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역시 키키 키린이라 답하고 싶다. 카트린 드뇌브가 하는 대사에 간혹 키키 키린이 생전에 하셨던 말씀이 반영되기도 했다.
이를테면 어떤 대사?
어느 날 대기실에 있던 키키 키린이 “역할을 준다고 하기에 어떤 역할인지 물으니 ‘그냥 계속 잠만 자면 된다’고 해서 출연하겠다고 했는데, 출연 결정을 하고 나니 갑자기 ‘이왕 출연하시는 것이니, 대사도 좀 늘리고 장면도 늘렸다’고 하더라”면서 “이건 사기 아니냐?”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키키 키린이 하던 아주 가볍고 일상적인 대사들을 조금씩 넣었다.
처음으로 해외 배우만을 등장시켰다. 연출상의 방법에 대해 여러모로 많이 고민했겠다. 문화권에 따라 일상의 대화법, 감정을 교류하는 방식, 표현 방법 등이 모두 다르지 않나.
맞다. 표현 방식도 많이 고민했다. 서양 사람들의 표현은 동양권 사람들과는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나. 그 점에 유의해서 대본을 만들었다.
프랑스 사람들다운 표현 방식 등은 어떻게 익히고 대본에 반영했나?
일단 일본인이 연기하는 장면이라면 대본상에 ‘…’으로 처리했을 부분을, 이 영화에서는 모두 대사로 썼다.(웃음) 일본인이라면 너무 심한 말이라 쓰지 않을 대사까지도 썼다. 일상생활에서 프랑스 사람을 대할 때 생각했던 부분이다. 내 기준에 ‘거기까지 그렇게 직설적으로 이야기한다고? 이야기해서 부딪쳐버린다고?’라고 생각할 만한 지점까지 다 써버렸다. 프랑스 사람들은 언제나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부분까지 이야기한다. 그렇게 대립하고 부딪쳤다가도 서로 꼭 껴안고 다시 아무 일 없던 사람들처럼 새 출발하더라. 그 부분이 평소에도 늘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만들어가는 동안에는 특정한 사람을 떠올리고 작업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어떤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완성했나?
영화를 만드는 동안에는 프랑스 영화를 좋아하셨던 나의 어머니를 생각했다.
‘연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영화의 영어 타이틀을 ‘The Truth(진실)’로 붙였다. 연기와 진실의 상관관계에 대해 어떤 결론을 얻은 것 같나?
‘연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생각하면서 작품을 쓰던 무렵, 쥘리에트 비노슈를 만났다.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길 하니 그녀가 말했다. “연기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일체의 주저 없이 아주 명확했다. 그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오래 기억에 남았다. 쥘리에트 비노슈와 또 한 번 마주치게 됐을 때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연기란 대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 “연기는 오히려 신앙에 가깝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시공을, 인물을 연기함으로써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 모두를 믿게 하는 행위다.” 쥘리에트 비노슈의 말을 듣는 순간 나 역시 연기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에서는 이야기보다 사람이 보인다. 어떤 사회적 이슈나 사건을 볼 때 관계된 ‘사람’에 관한 아이디어를 먼저 떠올리는 편인가?
맞다. 어느 날 뉴스에서 도둑질하며 생계를 꾸려나가는 가족이 나오더라. 그들은 훔친 물건을 다 팔아서 돈으로 환원시켜 먹고살았는데, 희한하게도 낚싯대만 안 팔았다. 남겨진 낚싯대 때문에 그들은 잡혔다. 나는 궁금했다. 다른 건 다 팔았는데 왜 낚싯대는 팔지 않았을까. 이유가 뭘까. 이 가족이 낚시를 좋아하나. 그래서 <어느 가족>에 가족이 다 같이 낚시를 하는 신을 만들었던 거다.
이번 영화에 “장점이 2가지면 살면서 충분하고도 남아”라는 대사가 나온다. 당신이 살면서 잘 써온 장점 2가지는 뭔가?
체력과 호기심이다.
한국에도 작업해보고 싶은 배우들이 많다고 했는데 어떤 배우들을 눈여겨보고 있나?
배두나와는 다시 꼭 작업해보고 싶고. 류준열도 좋고. 송강호도 물론이고…. 또 내가 영화 <부산행>을 보면서 울었거든. 마동석과도 만나보고 싶다. 그리고 우리 프로듀서는 하정우 배우를 좋아한다.(웃음)
아주 많네.
정말 많다. ‘올 스타 캐스팅’을 하고 싶다.
보통 영화제에서의 ‘밤’은 어떻게 보내는 편인가? 부산에서라면 무엇을 하나?
오늘 상영회에는 우리 가족이 와서 함께 조개구이 집에 갔다. 간단하게 식사하고 영화제 일정을 소화했다. GV까지 마친 다음에는 ‘프렌치 나잇’이라는 프랑스 대사관 주최의 파티에 가서 배두나와 사진을 찍었다.(웃음) 일본에서 온 스태프들과 함께 곰장어구이도 먹었다. 곰장어를 먹고 나선 바닷가에서 다트 게임을 했다. 다트를 던져 인형을 뽑았다.
알차게 보냈다. 부산에서 노는 법에는 이제 통달한 것 같은데?
그렇긴 하지만, 이번에는 간장게장을 못 먹었다. 그것이 좀 아쉽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간장게장 집이 부산에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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