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결성 20주년이다. 소감이 어떤가?
이정훈 기념일을 챙기는 성격들이 아니다. 여자친구한테도 그런 일로 미움받거든. 지난여름 공연 준비할 때 팬들과 직원들이 대뜸 축하한다고 하더라. 알고 보니 20주년이었다. 우리가 못 챙기는 걸 팬들이 챙겨주니 고맙더라.
올드 팬 입장에선 멤버들이 꾸준히 활동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20주년이니까 팬들에게 특별한 선물 같은 걸 준비했을까?
김종완 팬들에게는 항상 감사하다. 예전부터 했던 말인데, 팬을 위해 음악을 하는 건 아니다. 뮤지션으로서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으로 표현하며 사는 것이 꿈이다. 팬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 꿈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복받은 사람들이지. 한 3집 앨범까지는 그 고마움을 못 느꼈는데, 6~7년 지나면서 우리 음악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음반 작업에 굉장히 큰 힘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가 보답할 수 있는 길은 좋은 음악과 공연밖에 없다고 생각해 책임감을 가지려 한다. 음반 사는 것보다 공연 보러 가는 게 더 힘든 일이다. 관객 입장에선 두 시간짜리 공연을 보려면 하루를 투자해야 한다. 그 시간과 돈이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도 잘 알기에 공연 보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끔 책임감을 갖고 노력한다. 그게 우리가 팬들에게 드릴 수 있는 최대한의 보상 같다.
이번 앨범 제목이 흥미롭다. <Colors in Black>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나?
김종완 처음에는 ‘Colors’가 없었다. 어두운 느낌의 음반을 만들 계획이었다. 녹음 겸 작업하러 태국에 위치한 스튜디오를 4주 정도 빌렸다. 거기서 작업한 게 우리에게는 나름 20주년 이벤트일 수 있겠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환경에서 해보자는 의도였다. 예상 밖의 좋은 기운을 많이 얻었다. 음악 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스튜디오에는 미국, 영국, 독일 등에서 온 뮤지션들이 있었는데, 그들과의 교류도 즐거웠다. 덕분에 음반 분위기가 살짝 밝아졌다. 완전히 까만 앨범을 구상했는데, 그 안에 다채로운 색을 넣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Colors in Black>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특별한 스튜디오인 것 같은데, 유명한 곳인가?
김종완 그 스튜디오는 영국의 유명한 영화음악 감독이 만들었는데, 그는 뮤지션들이 아무 생각 없이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으로 꾸미고 싶었다고 한다. 진짜 아무것도 없다. 방콕에서 한 시간 반 거리의 외딴 곳에 스튜디오만 있다. 유명한 뮤지션들이 작업했는데, 대외적으로 엄청 알려진 곳은 아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이랄까. 시설이 좋고, 우리가 갔을 때도 유명 뮤지션들이 작업 중이었다. 거기서 굉장히 에너제틱한 기운을 얻었다. 작업이 끝나고 밤이 되면 야외에서 맥주 한잔하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눈다. 대화 내용은 음악 얘기다. 몇 시간 동안 음악만 이야기한다. 굉장히 긍정적인 에너지다. 엄청난 영감을 얻었다.
한국의 스튜디오는 어떻게 다른가?
김종완 한국에선 녹음실이라고 하면 고립된 느낌이 많이 드는데, 그곳은 큰 창이 있다. 창밖으로 정원이 있어서 나무와 잔디가 보인다. 오래 작업해도 답답한 느낌이 없다. 문 열고 나오면 수영장이 있어서 쉴 때도 금방 충전된다. 곡을 쓰는 뮤지션은 환경이 중요하니까 그런 분들에게 강력 추천하고 싶다.
뮤지션을 위한 남국의 파라다이스 같은데?
김종완 여유롭고 집중할 수 있다. 하루 종일 작업하면 피곤한데, 피로가 누적되지 않는 느낌이다. 밤 11시에 끝나면 다 함께 야외에서 맥주 마시면서, 작업한 음악을 함께 다시 듣고 이야기를 나눴다. 환경이 이렇게까지 큰 영향을 줄지는 상상도 못했다.
이재경 종완이는 일할 때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다. 그동안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과부하에 걸렸으리라 생각했다. 그곳에 갔을 때가 6월인데, 다녀와서 그렇게 좋아하는 술까지도 안 먹을 정도로 달라졌다. 하하.
김종완 그 상태를 유지하고 싶었다. 술 마시면 다음 날 피로가 누적된다. 영감을 떠올릴 시간이 아까웠다.
아시아 어디로 진출해야 하는지 답이 나온 거 같은데?
이재경 그러네. 태국 시장이 어떤가. 하하하.
<Colors in Black>의 초기 구상 단계에서 어떤 영감을 얻었나?
김종완 결국은 그 앨범을 만들려고 할 당시 느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지난 2년 동안은 기분 좋은 앨범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C> 앨범 이후로 불편한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둡고 불편한 음반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었고, 그런 방향으로 곡 작업을 하고 있었다. 굳이 영감이라고 한다면 태국에 갔던 게 가장 큰 영감이겠지. 작업 당시의 시간, 생활이 앨범의 영감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다른 환경에서 겪는 것들, 느끼는 것들, 새로운 감정이 창작에 영향을 주고 변화를 불러온다. 앞으로도 새로운 환경에서 작업한다면 넬의 음악도 달라지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김종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런 게 더 자연스러운 거 같다. 환경이 변하고 접하는 것들이 달라지면 생각도 바뀔 수 있다. 달라진 생각이 음악에 묻어나오지 않는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지. 음악에 묻어 나와야 정상이고, 진솔한 것 같다.
넬의 진정성을 좋아하는 팬들이 많다. 하지만 나를 드러내기 위해 심연을 관찰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생각된다.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나?
김종완 자신을 들여다보는 작업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나 자신을 어떻게든 빨리 털어내고 싶을 때 작업이 잘된다. 그런 시기에는 곡을 쓰는 게 부담되거나 작업이 힘들지 않고 오히려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몸은 힘들지만 속은 시원한 느낌이다. 남에게 자신을 전부 오픈해야 하는 게 힘들지 않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대중에게 창작물을 발표하는 직업이라면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싶은 욕구가 있으니 결과물을 발표하는 것이고, 그걸 잘해내는 방법은 대중의 반응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뮤지션은 대중의 반응에 예민하지 않을까?
김종완 어렸을 때는 신경 썼던 것 같다. 우리는 21세에 처음 앨범을 만들었다. 첫 앨범 이후로 새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변했다, 안 변했다. 좋다, 안 좋다 논란을 겪었다. ‘Stay’가 수록된 <Let it Rain> 발표 당시 우리는 소위 언더그라운드에서 메이저로 데뷔할 때였다. 그래서인지 당시 그런 논쟁이 많았다. 자신이 알던 넬이 아니라고 하는 반응도 있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건데 그런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그런데 다음 앨범을 냈을 때 그와 비슷한 논쟁이 또 생겼다. 시간이 더 지나니 대중은 다시 <Let it Rain> 앨범이 좋다는 평을 했다. 직접 겪어보니 밴드 당사자는 그런 논쟁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신경 쓰지 않는 게 잘할 수 있는 방법임을 깨달았다. 세상의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음악은 없다. 다양한 음악들 중 끌리는 음악을 들으면 된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그렇게 생각이 정리되니 대중의 시선을 이겨낼 수 있었다. 부담 안 갖고 작업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다.
“대중에게 창작물을 발표하는 직업이라면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시대가 변하면 음악도 변한다. 좋아하는 밴드도 발전한다. 머물러 있는 건 나라는 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김종완 누구나 향수와 추억 있다. 그래서 이해는 한다. 메탈리카의 <Load> 앨범이 나왔을 때 유럽에 있었는데, 그때 팬들은 메탈리카가 변절자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 음악이 얼터너티브지 어떻게 헤비메탈이냐며 말이다. 몇 년이 지나고 나니 <Load>는 명반이고, 메탈리카는 시대에 맞춰가는 밴드라는 얘기가 들렸다. 누구나 겪는 일이다. 음악을 진지하게 듣고 아쉬운 점을 얘기하는 건 오히려 도움이 된다. 우리 자신에게만 너무 빠져 있어서 보지 못한 것들을 객관적으로 알려줄 때는 굉장히 고맙다.
이재경 앨범이 많다는 점에 자부심이 있다. 이 앨범을 좋아하는 팬이 있고, 저 앨범을 좋아하는 팬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팬덤이 형성된다. 앞으로도 계속 음반이 나올 테니 듣고 싶은 걸 들으면 좋을 것 같다.
각자 <Colors in Black>에서 변화를 시도한 부분이 있나?
이정훈 안 해본 걸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실천하지는 않는 편이다. 개인적인 시도 같은 건 딱히 안 한다.
김종완 가사 쓰는 스타일이 달라졌다. 콘셉트 자체를 바꾸기도 했다. 기존보다 훨씬 대화 형식이다. 머릿속에서 혼잣말 하는 걸 대화 형식으로 바꿔서 만든 가사가 대부분이다. 그런 작업이 속 시원한 느낌이다. 예전에는 직접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것을 은유적으로 감추면서 시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면, 이번에는 나를 잘 알고 있는 친구에게 말하는 마음으로 썼다.
정재원 태국 가기 전에 종완이가 한 말이 있다. 우리는 새로운 걸 하러 가는 게 아니다. 음악에 더 집중하고 충실하기 위해서 간다고. 음악의 본질에 더 가깝게 다가가는 게 우리 목표라는 말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앨범이 굉장히 담백하게 들린다.
이재경 녹음하기 전에는 많은 아이디어를 멤버들에게 들려준다. 그 안에서 우리와 잘 어울리고 좋은 게 나올 때까지 하는 편이다. 이번 작업에서 제일 집중했던 건 버리는 트랙이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항상 의미 있는 트랙을 만들고 싶었다.
해외 진출 계획도 궁금하다. 요즘에는 외국에서도 한국 가요를 많이 듣는다. K-팝뿐만 아니라 넬의 음악을 좋아하는 해외 팬도 많다.
이재경 유튜브에 해외 팬들의 댓글이 많이 달렸다. 절실하게 우리 공연을 보고 싶어 하는 분들도 있고, 우리 노래를 듣고 리액션을 한 분들도 있었다. 정말 신기하더라. 해외에서 우리 노래에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해외 공연에 대한 로망도 있다.
김종완 우리는 공연할 때 움직이는 스태프가 굉장히 많다. 다른 밴드의 세 배 정도 되는 것 같다. 콘서트 외 페스티벌에서도 그 정도 규모에 익숙해져 있다. 해외에서도 그 정도 인원으로 공연했다. 그런데 공연 기획사 입장에선 스태프가 많으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숙박이나 교통, 항공권도 그렇다. 어렸을 때는 우리가 최대한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스태프로 구성해야 한다는 욕심이 많았다. 지금은 현실적으로 판단하고, 양보할 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처럼 관객 수가 확보되는 것도 아니고, 해외에서는 신인 밴드처럼 시작해야 하니 부담스럽다. 그래도 이상하게 또 포기할 수 없는 게 있어서 참 힘들다. 방법을 찾고 싶다.
해외에서 넬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팬들이 있다는 게 넬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김종완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생긴 변화가 신기하다. 음악 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좋은 일이다. 힘이 될 때가 분명 있거든. 말도 안 통하는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이 TV에 출연한 적도 거의 없는 우리 음악을 어떻게 알게 됐는지도 신기하다. 힘이 나고 보람도 느낀다.
1999년 결성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지.
김종완 그때는 클럽에 어떻게 홍보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던 시절이라. 하하.
20년 동안 팀을 유지한다는 게 흔한 일이 아니다. 멤버들의 노력이 있었겠지.
김종완 멤버들끼리 잘 맞춰가려고 서로 노력했고, 운이 좋았다. 그리고 팬들의 응원이다. 이 세 가지 요인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음 음반을 낼 수 있는 경제적인 측면도 뮤지션에게는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하다. 이건 우리의 직업이니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입이 있어야 하는데, 팬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는 진짜 복 받은 밴드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공연도, 음반도 100%는 아니지만 90%는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으니까. 많은 밴드들이 부러워하는 길을 가고 있다. 나태해지거나 다운될 때마다 그런 얘기를 하면서 정신 차리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40대가 됐다. 40대가 되니 어떤가.
이정훈 건강 관리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된다. 하하. 종완이랑 함께 올해 초 보험에 가입했다. 남들보다 늦게 가입한 편이라고 하더라. 하하.
이제 곧 2019년도 저문다. 올해도 넬의 연말 공연이 있겠지?
김종완 연말에는 크리스마스 공연이 우리에게 가장 큰 이벤트다. 새 앨범이 나온 지 얼마 안 됐으니 우리만의 방식으로 새 앨범 관련 콘텐츠나 일거리들을 최대한 만들어보려고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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