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시간 전에 막 한국에 도착한 백승호를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국가대표 소집 전 잠깐 짬을 내서 인터뷰를 하기로 했는데, 그런 부지런한 백승호가 과연 무슨 이야기를 꺼내놓을지 꽤 궁금했다. 남자다운 생김새와는 또 다르게, 자분자분한 말투로 인사를 해오는 백승호를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질문지가 아닌 카메라 앞에 그를 먼저 세워야겠다, 마음먹었다. 말끔하게 옷을 갈아입고 나타난 백승호가 꼭 요즘 아티스트 같아서, 멋져 보여서 그랬다. 국가대표 축구 선수에게 축구 선수보다, 눈앞의 다른 이미지가 더 잘 어울린다는 말이 굉장한 실례인 줄은 알지만, 정말 꼭 그랬으니까. 그래서 준비한 의상을 말끔히 입고 나타난 백승호를 얼른 카메라 앞에 세웠다. 다행히 백승호도 척, 아무렇지 않게 렌즈에 시선을 붙였다. 순간, 휘슬 대신 플래시가 펑 터졌다.
촬영 때 카메라를 낯설어하지 않았다. 중계 카메라가 아닌데도.
아니, 진짜 어색했다. 티가 안 났다면 다행인데 아무튼 그랬다. 화보는 오늘까지 두 번 찍어봤다. 정말 어렵다.
옷 입는 거 좋아한다는 인터뷰를 본 적 있다. 언젠가 패션에 관심이 많다는 얘기를 한 적 있지?
옷 입는 거 좋아한다. 트렌디한 스타일 찾아보는 것도 좋아하고. 선수들 보면서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된 부분이다. 옷 잘 입는 축구 선수들이 정말 많거든. 그 선수들 사진 보면서 어떻게 입는지 알아가기도 하고 뭐. 하하. 그런 사진 보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그런다.
백승호 선수가 보기에 누가 잘 입던가?
진짜 많다. 특히 프랑스 대표팀. 프랑스 대표팀 소집할 때 선수들 스타일 보면 와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다. 우리 대표팀에서는 흥민이 형, 승규 형이 멋있다. 좋아한다.
국가대표 선수를 앞에 두고 축구가 아닌, 패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는 괜찮은데? 하하!
9월 15일 소속 팀인 SV 다름슈타트 98(이하 ‘다름슈타트’) 데뷔전을 치렀다. 바로 어제(5일)는 4경기 연속 선발 출전이자 풀타임을 소화했다. 다름슈타트는 어떤 팀인가?
감독님이 빌드업을 중시한다. 단계별로, 또 유기적으로 움직이길 원한다. 다름슈타트의 전략이라 할 수 있는데, 감독님께서 내게 그런 부분을 많이 요구하셨다. ‘승호가 오면서 빌드업을 새로 시도하고 있다. 함께 맞춰가고 있다’고 이야기해주셨다.
백승호 선수에게 선명한 역할이 주어진 거 아닌가?
어제 한국 들어오기 전에 감독님과 상담을 했다. 감독님께서 처음부터 나 같은 스타일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해주셨다.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자세히 짚어주셨는데, 감독님의 주문에 맞게 매 경기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이다. 경기에서 못하지만 않는다면 기회는 주어질 거라 믿는다.
감독이 주문한 ‘백승호 선수 같은 스타일’이란 어떤 걸까?
볼을 소유하고 있을 때 빌드업의 중심 역할을 해주는 선수다. 안정적으로 볼을 배급하고 템포를 조절해주는 선수. 감독님은 내가 그런 역할로 뛰어주길 원한다.
독일에서 정한 목표가 있다면 어떤 걸까?
다름슈타트에서 임팩트 있는 시즌을 보내는 게 우선이다. 열심히 뛰어서 팀이 1부로 승격하면 더욱 좋고. 훌륭한 팀이기 때문에 분명 잘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최근에 승점이 없어서 걱정인데, 다들 이기는 경기를 위해 뛰고 있으니까. 모두 같은 목표를 향해 뛰고 있으니까, 곧 승점을 따낼 거라 믿는다.
바르셀로나부터 지로나 그리고 다름슈타트까지. 여러 팀을 거쳐오면서 백승호는 어떻게 성장하고 있을까?
음. 빠르게 두각을 보이는 선수도 있고, 조금 늦게 확 터지는 선수도 있는데 나는 글쎄. 빠르지도, 그렇다고 늦지도 않게, 적당하게 성장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생각한 것, 목표한 것에는 매번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성실하게, 목표 지점에 갈 수 있게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세 팀을 지나오면서 많은 경기를 뛰었다. 백승호에게 가장 반짝이는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경기를 꼽아보자면?
아무래도 지로나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했을 때. TV로만 보던 선수들, 그러니까 루카 모드리치나 토니 크로스, 이스코 등과 직접 경기를 뛰었으니까. 동기 부여가 굉장히 많이 된 경험이었다. 경기를 뛰는 순간순간이 모두 새로웠다.
토니 크로스를 좋아한다는 인터뷰를 본 적 있다.
볼을 예쁘게 차는 선수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토니 크로스를 좋아하는데, 메수트 외질이나 성용이 형도 볼을 예쁘게 찬다. 모두 롤모델이다. 영상도 많이 보고 연구도 많이 한다. 그렇게 차는 선수가 되고 싶다.
참, 인스타그램에서 ‘Enjoy’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백승호에게 ‘Enjoy’는 어떤 의미인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다. 내 모토다. 힘들어도 결국은 순간이니까. 지나가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즐기자는 생각이다. 점점 커가면서 진짜 중요한 게 뭔지 알 것 같은데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와닿는 부분이다. 신나게, 즐기면서 하는 거. 물론 가끔은 어렵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즐겁다.
그 즐거운 축구가 어렵게 느껴진 적은 없었나?
항상 어렵지. 하하! 재밌는데 또 하면 할수록 진짜 어려운 게 축구다. 그래서 형들한테 조언을 많이 구하는데, 그때마다 형들도 똑같은 말을 한다. ‘야, 그럼 당연히 어렵지, 쉬우면 다 했지!’ 이렇게. 하하!
형들 많은 A대표팀의 분위기도 궁금하다.
다들 정신이 단단하다. 형들이 조언도 자주 해주고, 그라운드에서 동기 부여도 많이 해준다. 든든하다. 아무나 뛸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니까. 무엇보다 사명감이 크다. 나는 축구 선수를 시작했을 때부터 대표팀이 꿈이었는데, 형들도 마찬가지더라. 국가대표팀은 모든 선수들의 꿈이니까. 그라운드에서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내가 뛰는 이 시간이 어떤 선수에게는 꿈이니까.
어떤 선수에게는 백승호 선수가 꿈일 수도 있지.
그러면 정말 행복할 것 같은데. 어떤 선수로 기억되었으면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항상 이렇게 대답했거든. 축구 선수들에게 인정받는 선수.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