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앨범 작업 중이라고 들었다. EP? 아니면 풀렝스(Full-Length) 앨범?
아직 어떤 형태가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기존과는 느낌이 다를 것 같다. (혁오 음악의 컬러가 바뀐다는 말인가?) 색깔의 변화보다는 지향하는 바가 달라진다는 의미다. 아마 조금 더 편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우리 사운드도 그렇고, 가사도 그렇고.
앨범이 대부분 <20> <22> <23> <24>로 나이를 가늠케 만드는 숫자 타이틀을 달았다.
제일 크게는 수록곡들을 작업한 해의 나이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21’이라는 숫자는 제외되어 있다!) 그때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아마 준비는 했었는데 발매가 늦어져서 그냥 <22>가 되었던 것 같다.
나이 이외에 타이틀이 의미하는 게 또 있을까?
일단 나이를 상징하는 의미가 가장 크다. 그리고 앨범은 내게 기록물의 개념도 있다. 그렇다 보니 그 당시를 조금 더 잘 기록하자는 취지도 담겨 있다.
그럼 연작 앨범들은 오혁이 맞닥트린 세월의 흐름을 담아낸 거라고 이해하면 되나?
맞다. 그런 것 같다.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가요제’는 혁오라는 밴드를 (애초 데뷔 당시부터 팬들에게 회자되었지만) 완전히 스타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록 스타가 꿈이었나?
사실 어릴 때부터 그냥 하고 싶은 음악을 잘하고 싶었다. (그럼 첫 앨범을 내고, 방송을 통해 더 많이 알려지고, 이제는 음악만으로도 공연 티켓을 매진시키는 밴드가 됐다. 몇 년간 많은 게 변했다고 생각하나?) 바뀌지 않고 싶어도 바뀌더라. 맞다. 그때와는 당연히 많은 것들이 변화했다.
어떤 부분에서 가장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나?
가장 크게는 삶의 변화다. 그중에서도 태도가 좀 바뀐 것 같다. 과거의 내 마음에는 분노가 참 많았다. 그게 원동력이 되기도 했었지만.
그 분노가 음악에 담겼던 건가?
맞다. ‘악바리’처럼 이 악물고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이나마 거리를 두고 바라보려고 한다. 그때처럼 계속 살 수는 없더라. (내적 분노가 오혁을 반항아로 만들었나?) 그건 아니다. 단지 그것이 나를 너무 지치게 만들었지 않나 싶다. 그 방식만으로는 무엇을 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럼 그간의 앨범 속 오혁은 어떤 대상에 분노했고, 또 어떤 부분들을 삐딱하게 바라보았나?
주로 나 자신에 대한 분노, 그리고 나에 대한 채찍질이었던 것 같다. 스스로 지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끝까지 밀어붙이는 거라 생각했었다. 내 수명을 깎아가며 밤을 새고, ‘개고생’하면서 작업하는 게 진짜 의미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계속하다 보니 되려 효율성이 저하됐다. 그렇게 직접 해보면서 차츰 알아나가고 있다.
그럼 현재의 오혁은 삶에 조금 여유를 가진 건가?
그렇지도 않다. 그냥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인디 밴드로 시작했지만, 지금 혁오는 굉장히 대중적 사랑을 받는 밴드가 되었다. 밴드 멤버 전원이 전업 뮤지션인가? 이 말은 이제 음악만 해도 먹고살 수 있느냐는 의미다.
뮤지션에 ‘전업’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는 건 단순히 돈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애티튜드와 관계된 것이라 생각한다. 본인이 음악을 업으로 생각하면 그게 업이 아닐까. 본인이 거기에 놀아나는 느낌이면 전업 뮤지션이 되기란 쉽지 않다.
오혁이 혁오로 활동한 지 벌써 꽤 되었다. 몇 년간 밴드가 지속되었다는 건 굉장히 큰 의미다. 오혁 말고 혁오로서 가장 크게 변한 게 있나?
멤버들이 모두 동갑이다. 예전에는 모든 부분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부딪히는 부분도 많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확실히 서로에 대해, 또 음악에 대해 이해가 깊어진 것 같다.
성향이 각각 다른 멤버가 모였기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을 거다. 그럼 이제는 혁오 멤버들은 오혁과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나?
아니. 그 차이는 언제나 존재한다. 사실 조율할 필요도 없는 부분이다. 좋아하는 건 각자 다를 수 있으니까. 그 속에서 필요한 것들을 같이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 지향점보다는 우리가 항상 붙어 있다 보니 개인적 시간과 공간이 아예 없다. 그 상황을 조율하는 게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다. 요즘은 어느 정도 맞춰간다는 측면에서의 이해도를 말한 것이다.
캡틴인 오혁이 그렇게 느끼듯 멤버들도 이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나?
그렇다. 전에는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니까 맞서기도 하고, 몸으로 부딪혀보기도 했다. 지금은 조금씩 인지해나가는 것 같다. 어떤 부분이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한 인지. 마음속에서 서로 이해한다는 것. 이게 가장 큰 변화다.
어느 인터뷰에서도 밝혔지만, 오혁 스스로가 디지털 세대이며, 국적이 크게 상관없다고 했다. 그래서 혁오는 한국어, 영어, 중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노래를 부르며 연주한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언어는 단순한 기호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다. 처음에는 기호로 시작했다. 지금은 여러 언어로 음악 하는 걸 우리의 색깔로 봐주시는 것 같다. 하하.
혁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음악 자체는 역동적이지만 그 속에 흔들리는 청춘의 초상이 담겨 있는 듯하다. 메가 히트 트랙 ‘Tomboy’ 가사만 봐도 그렇지 않나. 스물일곱의 청춘, 오혁이 동시대(혹은 동 세대)를 바라보는 시점은 어떤지가 궁금해지더라.
사실 나라고 크게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나 역시 그 속에 놓여 있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냥 비슷한 걸 보고, 유사한 걸 말하고, 동일한 걸 느끼는 것 같다. 요즘의 흐름은 모두가 느끼듯 과도기가 아닐까 싶다. 우리 또래는 과도기를 거치고 있어서 모두 헤매는 게 아닐까?
오혁이 음악을 만드는 방식이 궁금하다. 과거 음악에서 모티브를 얻는지, 책에서 메타포를 가져오는지, 영상세대답게 이미지에서 차용하는지, 그런 것들에 대해 말이다.
사실 정해두고 작업을 하지는 않는다. 모두 다인 것 같다.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 곡마다 좀 다르다. 어떤 곡은 그냥 술술 나올 때도 있고, 하다 보니 완성된 것도 있다. 나의 경우 메모를 항상 하는 편이다. 그 메모를 보며 정리하고, 자기 검열을 해나간다. 추리고 추리고 또 추려서 결과물을 만든다.
최근 흥미롭게 읽은 책 또는 본 영상이 있나?
근래 재미있게 읽은 책은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미래의 역사)>다. 약간 SF 장르가 섞였다고 생각하는데, 굳이 추천할 만한 책은 아니고. 작가가 픽션으로 쓴 책인데, 인류 최초에는 여러 종이 있었고 거기에서 지금의 인류만 남게 되었다. 뭐 이런 내용이다.
지난 <23> 앨범 속 ‘Jesus Lived in a Motel Room’의 제목이 참 인상적이었다. 예수가 모텔에 살았다는 상상 자체가 놀라웠다.
역사적으로 예수를 묘사할 때 항상 낮은 곳으로 임하신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 그냥 모텔에도 오실 것 같아서 그랬다.
혁오의 노래 제목들을 보면서 오혁은 인문학 서적을 많이 읽는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맞다. 예전에는 진짜 많이 읽었다. 그런데 요즘은 확실히 책보다 영화를 더 많이 보는 것 같다.
인생 영화라든가, 기억에 남는 영화들이 있나?
전에는 ‘인생 영화’ 어쩌고가 있었던 것 같다. 굳이 말하자면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 <썸웨어>를 좋아한다. 그냥 좋았던 기억이 나서다. 일주일에 열 편 조금 넘게 영화를 본다. 하도 많이 봐서 이제는 B급 무비로 관심을 옮겼다. 그것도 많이 봐서 최근에는 호러 무비를 보고 있다. 원래 공포 영화를 잘 보지 않는 편이다. 근래 아리 에스터 감독의 <미드소마> <유전>을 감상하면서 쭉 찾아보고 있다.
우리가 오혁을 거론할 때 패션 아이콘으로서도 언급한다. 패션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지더라.
내게 패션은 취미였다. 어렸을 때부터 옷을 좋아했고, 또 관심이 있다 보니 파게 되더라. 공부라기보다는 디깅을 했던 것 같다. 이게 뭐고, 누가 만들었고, 몇 년도 컬렉션이 진짜 좋고 등등. 관심을 가지다 보니 디자인하는 친구들과 이야기도 많이 하게 됐다.
교류하는 패션 디자이너가 있는지 물어봐도 될까?
키코 코스타디노브라든지. 그와는 3년 전인가 일본에서 촬영을 함께한 적이 있다. 그때부터 자주 연락하면서 지낸다. 마틴 로즈도 있다. 4년 전인가 그에게 내가 메시지를 보냈었다. 그가 컬렉션을 발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인데, 그냥 연락해서 만나자고 했는데 밥도 함께 먹게 됐다. 다들 친구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브이론을 만드는 친구도 있고. 언더커버의 다카하시 준 등도 있다. 패션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희망을 얻었던 것 같다. 사실 동양인이 메인스트림으로 진입한 적이 별로 없지 않나. 아직도 그런 분위기가 팽배한데, 그 친구들을 만날 때는 인간적으로 대해주고, 작업에 대해서 인정해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오혁이 한국의 유명 브랜드 톰보이의 옷을 입고 촬영했다. 톰보이에서 남성복을 론칭한 기념으로 말이다. 사실 ‘톰보이’는 ‘소년 같은’ 여성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그런데 혁오도 ‘Tomboy’라는 제목의 트랙이 있다.
사실 노래 제목의 ‘Tomboy’는 성별 구분이 없는 모두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곡을 쓸 때 어떤 대상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진짜 모두를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한다. 보통 먹고사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지 않나. 그러다 보면 너무 한쪽으로 쏠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또 돌아오기 위해 노력하고. 이런 반복이 삶이라 생각했다.
가장 최근 앨범이라 할 수 있는 <24>의 수록곡 ‘Goodbye Seoul’을 소개하면서 “서울에 살고 있기에 서울을 떠나고 싶다”라는 말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1년의 절반 이상을 투어, 녹음 등을 위해 서울을 떠난다. 그렇게 타국에 있으면 다시 서울에 돌아오고 싶은가?
물론이다. 이번 앨범 작업 때는 더 그랬다. 왜냐고 물으면 ‘집이 최고니까’라고 답할 거다. 하하. 그냥 집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더라. 투어는 진짜 일을 하러 가는 거다. 여행 측면은 전혀 없다. 그래서 집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일종의 직업상 출장인 셈이다.
그럼 출장 말고 개인적 여행은 종종 하는 편인가?
하고 싶은데 아직은 못하고 있다.
만일,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일을 팽개치고 한 달만 해외에서 살다 오라고 하면 어디를 선택할까?
지금은 로스앤젤레스? 서울도, 런던도, 베를린도 추워지니까 지금은 따뜻한 곳에서 게으르게 살고 싶어서다.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럼 완전히 서울로 돌아와서 새 노래를 들려주는 건 언제쯤일까?
아마도 올해 말 아니면 내년 초가 되지 싶다.
요즘 어떤 식으로든 해외 투어를 가는 인디 신의 동료들이 많아졌다. 어떤 팀은 성공하기도 하고, 여전히 힘겹게 투어를 다니는 밴드도 있다.
완전히 맨땅에 헤딩하는 투어는 무모한 것 같다. 우리도 작은 데서부터 시작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밴드가 해외로 많이 나가지 못한 이유는 다들 ‘척’만 해서가 아닐까 싶다. 한두 번 해외 공연하고, 그걸 홍보 수단으로 잘나가는 척. 사실 다 가짜인데 사람들은 또 그렇게 믿는다. 우리도 몇 번 해외 공연을 하면서 잘나간다고 착각한 적이 있었다. 그 환상이 무너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러면서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아무도 모르겠구나라는 자각을 했다. 제대로 시작해보자고 해서 힘겹게 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한국 공연뿐만 아니라 내년 해외 투어도 계획되어 있나?
2020년 6월부터 (아까 여행하고 싶다고 했던, 하지만 출장인) 로스앤젤레스 공연이 있다. 그리고 약 50개 도시 투어가 잡혀 있다.
그럼 다시 서울에서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겠다. 좋은 앨범 소식도 고대하며 말이다.
말이라도 고맙다. 내일도 곧장 베를린으로 간다. 보컬 녹음을 하기 위해서다. 곧 앨범 가지고 돌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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