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구입할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모빌리티 서비스들. 한술 더 떠 가까운 거리는 킥보드 타고 달리라고 말하는 전동 킥보드 서비스 업체들도 가세했다. 자율주행 시대에 자동차는 소유하는 상품이 아닐 거라 말하는 미래학자들도 있다. 그렇다면 자동차 제조사들은 급진적으로 발전하는 모빌리티 서비스를 어떻게 바라볼까?
EDITOR 조진혁
피할 수 없다면 동화되는 수밖에
‘버티느냐 마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개인의 인생은 물론 기업의 운명까지 왔다 갔다 한다. 생존이 걸려 있지만 미래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판단을 아주 잘 내려야 한다. 기업이라면 이전에 하던 사업을 지속하느냐 새로 벌인 사업을 끌고 나가느냐 하는 문제에 부딪힌다. 익숙한 일을 벗어던지고 새 일을 하기는 쉽지 않고, 새로 일을 벌였다면 투자한 비용과 구축한 인프라 때문에 발을 빼기 어렵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버틸지 말지 판단을 내리려면 운이나 감에 맡기기보다는 철저한 조사나 연구에 기반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요즘 자동차 시장은 눈이 돌아갈 정도로 빠르게 변화한다. 그런데 변화하는 모습이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이전에는 자동차 시장 안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그 속의 업체들끼리 경쟁했지만 지금은 판이 넓어졌다. 테슬라처럼 자동차 만든 경험이 없는 업체가 불쑥 튀어나와서 전기차 시장을 휘어잡고, 우버 같은 업체가 등장해 공유 서비스 시장을 만들어냈다. 전기차와 공유 서비스 두 가지만으로도 이미 시장이 들썩거렸는데, 더 큰 변화가 남아 있다. 자율주행 기술이 본격적으로 상용화되면 전기차, 공유 서비스와 결합해 자동차를 둘러싼 생활이 큰 폭으로 달라진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타고 이동하는 것들, 즉 모빌리티(이동성) 전반에 변화가 이뤄진다. 오토바이, 킥보드를 비롯해 다양한 개인 이동 수단이 얽히고설켜 이동 환경의 근본이 바뀐다.
자동차 업체는 지금까지 어떻게 하면 자동차를 좋게 만들고 많이 팔까 고민하면 됐지만, 시장 변화로 신경 써야 할 일이 늘었다. 전기차는 부품 수가 적고 간단해서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상대적으로 만들기 수월하다. 신규 업체의 진입 장벽이 낮기 때문에, 내연기관 자동차 업체들이 쌓아 올린 자동차 제조 노하우의 가치는 점점 떨어진다. 공유 서비스가 활성화되면 자동차를 굳이 소유하지 않아도 되므로 판매량은 줄어든다. 모빌리티 서비스 발달로 자동차 이외 이동 수단이 보급되면 판매량은 더 떨어진다.
자동차 업체는 자동차를 계속 만들어야 하느냐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느냐 기로에 놓인다. 오래 해오던 장기를 살려서 자동차 제조에만 집중하면 언젠가는 다시 빛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을 수도 있다. 새로운 유행이 지나가면 다시 전통적인 것을 찾는 수요가 생기기도 하지만, 희망 섞인 기대를 하기에는 시장 변화가 너무 급격하다. 판매 감소가 미치는 영향은 기반이 흔들리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자동차 시장 자체가 새로 형성된 공유 서비스 시장에 종속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공유 서비스 중에서도 카셰어링 시장이 커지면 상당한 물량이 공유 자동차로 흘러 들어간다. 공유 서비스를 운용하는 회사가 갑이라는 뜻이다. 기반이 흔들리는 것도 서러운데 끌려다녀야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심하면 납품 업체로 전락하는 수도 있다. 공유 서비스도 택시 역할을 대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버스나 미니밴 등으로 많은 인원을 실어 나르거나, 화물 운송이나 음식 배달 등 이동과 관련한 사업 분야로 광범위하게 팽창한다.
자동차 업체들은 본질에 정진하며 버틸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제조사에서 서비스사로 변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강하다. 자동차만 만들던 울타리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모빌리티 서비스 시장에 발을 담그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전기차, 자율주행, 공유 이 세 가지 중에서 전기차와 자율주행은 자동차 업체들이 본연의 분야에서 확장할 수 있는 일이다. 전기차가 신생 업체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요구하는 기술 수준이 높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기차도 자동차이기 때문에 현재 자동차 업체가 유리하다. 자율주행도 IT 기술 비중이 크지만, 자동차에 적용하므로 자동차 업체가 마음먹고 나선다면 앞서 나갈 수 있다. 자동차 업체들이 전기차와 자율주행 분야 기술에 매진하는 이유다.
자동차 제조와 연관성이 떨어지는 공유 서비스는 자동차 업체가 직접 나서서 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자동차 업체는 공유 서비스 회사와 손잡거나, 아니면 회사를 인수해서 서비스 영역으로 발을 들여놓고 있다. 차를 팔아 번 돈을 서비스에 쏟는다고 할 정도로 막대한 투자를 한다. 서로 경쟁 관계인 업체들이 합작해서 공유 사업에 뛰어드는 적과의 동침도 눈에 띌 정도로, 시장 적응에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공유 서비스를 자동차 업체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다면 제조사의 장점을 더욱더 살릴 수 있다. 단순히 공유 서비스 업체에 자동차를 납품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들이 만들고 서비스까지 하니 더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모빌리티 서비스 확장은 이동 수단 및 서비스 다양화를 동반하기 때문에 여러 요소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라스트마일’은 간단히 말해 최종 이동 수단을 뜻한다. 물류, 유통, 모빌리티 등 이동 수단을 이용하는 분야에 떠오르는 화두다. 라스트마일은 자동차가 가기 힘든 단거리를 커버한다. 자전거나 킥보드 공유가 현재 시점에서 라스트마일의 현실적인 모습이다. 자동차 업체는 이 부분까지도 눈독을 들인다. 모빌리티를 통째로 다뤄야 진정한 모빌리티 서비스를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체가 킥보드나 자전거 등을 직접 만들어 라스트마일을 공략하는 일이 장난스러운 이벤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비장한 의미를 담고 있다. 몇몇 업체는 이미 라스트마일용 소형 이동 수단을 내놓았거나 내놓을 예정이다. 어떤 업체는 자사 자동차를 이용한 무인 배송 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자동차를 만들어놓으면 구매자들이 사가는 패턴은 자동차가 발명된 이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이제는 만들기만 해서는 안 된다. 수요도 계속해서 줄어든다. 버티느냐 마느냐 문제를 벗어나 이전 틀을 깨뜨려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자동차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스스로 고민하고 활용할 곳을 만들어내야 하는 과제가 생겼다. 모빌리티 서비스는 자동차 업체의 존재를 위협하는 두려운 존재지만, 피하거나 적당히 넘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자동차 업체는 매우 잘 안다. 피할 수 없다면 동화되는 수밖에 없다.
WORDS 임유신(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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