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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새>와 <우리집>의 상관관계

UpdatedOn October 29, 2019

‘작은 영화’에 대한 열광은 꾸준히 있어왔다. 그러나 영화 <벌새>와 <우리집>에 관객이 보내는 흥분은 콘텐츠 생태계가 변화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지금 콘텐츠 생태계는 벌어지고 조각나는 중이다. 어떤 영화의 라이벌은 다른 영화가 아니라 유튜브다. ‘B급 정서의 코미디’와 같은 흥행 공식은 곧 무용해질 것이다. 이제 콘텐츠 생산자들은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고, 상호작용하며 소비하려는 관객의 욕구를 어떻게 충족시킬지 고민해야 한다. <벌새>와 <우리집>의 ‘작은 성공’은 이러한 변화의 틈을 읽어낸 콘텐츠 생산자들이 만든 필연적 결과다.

EDITOR 이경진

<벌새>가 개봉 13일 만에 관객 수 5만을 돌파했다. 한 주 앞서 개봉한 <우리집>은 윤가은 감독의 전작 <우리들>의 총 관객 수에 근접한 4만 명 이상 관객을 모았다. 호평과 흥행을 동시에 잡았다고 평가되는 2011년작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과 2018년작 김의석 감독의 <죄 많은 소녀> 총 관객 수보다도 이미 2배 이상 많은 수치다. 수치로만 말할 일이 아니다. 체감상, 특히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서만큼은 천만 영화보다 반응이 훨씬 거세다. <벌새>와 <우리집>을 보는 것이야말로 지금 가장 힙한 일인 것만 같다.

9월 26일 개봉을 앞둔 독립 영화 <메기>는 아예 이렇게 홍보한다. “<우리집> 보고 <벌새> 찍고 <메기> 보러 오세요.” <밤의 문이 열린다>와 <아워 바디> 역시 이 흐름에 합류한다. 이 모든 걸 단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여성 영화’에 대한 열광으로만 해석할 수 있을까? 콘텐츠를 기획하고 생산해야 하는 사람들은 이 현상을 어떻게 보면 좋을까.

내가 몸담은 분야인 드라마로 말하자면, 시청률과 화제성은 낡은 기준이 되어버렸고, 전통적인 흥행 공식은 이미 깨진 지 오래다. 비난도 열광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온다. 보편적인 기준이 없다. 경쟁 상대는 다른 드라마가 아니라 오히려 유튜브인데, 몰입과 감정 이입을 목표로 하는 ‘잘 꾸며진 허구’와 유튜브는 애초에 그 성격과 성질부터 다르다. 그러니 어려운 거다. 쉬운 선택을 하자고 <극한직업>이나 <엑시트>의 성공을 쫓고자 하면, 유일하게 보편적인 현재의 흥행 공식인 ‘B급 정서의 코미디’라는 허무한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콘텐츠 생태와 쉽게 읽히지 않는 관객의 욕구를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꾸준히 이어져오던 ‘작은 영화’에 대한 열광이 <벌새>와 <우리집>에 이르러 폭발하고 있는 지금, 조금 다른 해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집>을 만든 윤가은 감독은 브런치를 통해 <우리집> 제작기를 공개했다. 그는 2016년 <우리들> 개봉 후에 느꼈던 감정을 ‘멘붕’이라고 표현했다. <우리들>이 “예상과 다른 좋은 반응까지 얻고 나니(평생 이런 영화 만들지 말라는 말만 들어왔는데)” 혼란스러웠다는 거다. 그리고 거기엔 익숙한 반응들도 물론 존재했다. 이제 아역과의 작업을 그만두라거나 ‘진지한 성인 영화’를 만들라거나 ‘메이저’에 들어가야 한다는 조언들 말이다. 이는 <우리들>의 성공을 단순히 아마추어의 행운으로 여기는 시각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주류에 편입하지 않으면 인정받을 수 없다는 오래된 믿음을 뒤로하고, 다시 어린이가 주인공인 영화 <우리집>을 만들었다. <우리집>은 <우리들>보다 더 큰 반응을 얻고 있다. <벌새>의 김보라 감독 역시 성공을 예상하기 힘들었다. 이 영화에 자신의 30대를 다 바쳤다고 말한다. 7년이라는 제작 기간 동안 “여러 번 거절당하고 나오는 길에 울기도 많이 울었”고 “투자받기까지 많은 과정이 있었”으며 “주변의 우려와 만류에도 이 이야기를 끌고 갔”다고 말한다.

사실 이들이 받은 상이나 업계의 호평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입소문과 흥행 수치, 그리고 적극적인 팬덤의 형성이야말로 중요한 것이다. 만드는 사람들의 ‘우려와 만류’를 관객들의 애정이 뒤집고, 관객의 취향은 하나로 뭉뚱그려지지 않으며, 반응은 즉각적이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어쩌면 유튜브 콘텐츠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양하고 세분화된 취향을 충족시키는 집중력과 독창성. <우리집>과 <벌새>를 비롯한 작은 영화들이 이를 증명한다.

이후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고집스럽게 자기 세계를 펼쳐 보이는 감독은 앞으로도 모든 짐을 홀로 떠안고 외롭게 고군분투할까? 혹여 감독의 개성을 활용하는 새로운 기획의 기준이 생기지는 않을까? 윤가은 감독이 두 번째 영화 <우리집>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전 혼란스러워할 때, <우리집> 제작사 ATTO의 대표는 “정말 마음이 가는 이야기를 했으면 한다”는 진심 어린 응원과 지지를 보냈다고 한다. 제작사 대표의 용감한 지지와 믿음 덕에 <우리집>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ATTO의 대표는 창작자 개인의 가장 개인적인 욕망과 독창적인 표현 방식을 인정하고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영화제에서 상을 받거나 평단에서 호평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관객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음을 알았을 테다. 그는 기존의 제작사처럼 관객의 반응을 초 단위로 모니터링해 어떤 공식을 만들지 않았다. 이러한 변화는 다행스럽다. 작가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흥행 실패에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끼며 조급했던 내게 “너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라”며 “나머지는 기획자와 제작자의 몫”이라고 하는 파트너를 둔 나에게는 특히나.

이 변화가 배급과 상영관 점유율에도 영향을 미치길 바란다. 기획과 배급이 다양성을 갖추면, 오랫동안 ‘대박’, 천만 영화만을 꿈꾸던 영화계가 뜻밖의 방식으로 바뀌는 것을 이번 생에 볼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감독들이 처음으로 등장하던 순간들, <플란다스의 개>나 <달은 해가 꾸는 꿈> <지구를 지켜라>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같은 희한하고 본 적 없는, 잠재력과 개성으로 가득한 영화가 나오던 그 시기가 어쩌면 다시 돌아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범한 제작자나 감독 몇 명이 아닌, 적극적인 관객들의 요청에 의해서.

WORDS 한지완(드라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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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경진
WORDS 한지완(드라마 작가)

201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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