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 새 시즌, 순위 예상도 재밌지만 그것만큼 회자되는 것이 신예 혹은 새로 투입되는 새 전력들이다. 그래서 우리도 해볼까? 그런데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예상 말고. 언더도그로 평가받는 전력들 중에서 반짝이는 샛별이 될 숨은 보석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2019-20 EPL 언더도그들을 점쳐보자.
EDITOR 신기호
언더도그 혹은 톱도그
언더도그 하나, 셰필드 유나이티드 FC.
지금 ‘유나이티드’라고 하면 다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떠올린다. 그러나 이 단어를 가장 먼저 쓰기 시작한 구단은 셰필드 유나이티드다. 나름 역사가 있는 그 셰필드가 13년 만에 1부로 돌아왔다. 연고지 셰필드는 자칭 스포츠 도시다. 영국 육상 영웅 제시카 에니스-힐을 배출했고, 프로 축구팀도 유나이티드와 웬즈데이(현 2부)로 두 개나 된다.
현재 셰필드의 최대 무기는 크리스 와일더 감독이다. 일간지 <텔레그래프>가 “이번 이적 시장에서 셰필드의 최대 성과는 와일더 감독의 재계약”이라고 했을 정도다. 그는 셰필드에서 태어나 유나이티드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했다. 유나이티드의 지휘봉을 잡은 지 3년 만에 팀을 3부에서 1부로 초고속 승격시켰다. 2018-19시즌 리그지도자협회가 펩 과르디올라와 위르겐 클로프를 제치고 와일더를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알렉스 퍼거슨 이후 최고의 보스형 감독으로서 선수들의 전의를 항상 최고조로 유지시킨다. 승격팀 주제에 개막 두 경기 만에 첫 승을 따냈고, 첼시 원정에서 2-2로 비겨 ‘초짜’ 프랭크 램퍼드 감독에게 망신을 줬다. 팀에 돋보이는 스타가 없고 플레이 스타일도 투박하지만, 영국 축구 특유의 억척스러움이 빈티지의 맛을 더한다. 올 시즌 역사상 최초의 ‘유나이티드’를 보면서 영국 축구의 진수를 만끽하자.
언더도그 둘, 브랜던 로저스 감독(레스터 시티 FC).
과소평가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축구 감독이 바로 브랜던 로저스다. 관심받을 구석이 전혀 없던 스완지 시티를 프리미어리그에 올렸을 뿐 아니라 기막힌 패싱 게임으로 칭찬받았다. 리버풀에 가서는 2013-14시즌 맨체스터 시티와 깜짝 우승 경쟁을 펼쳐 팬들을 열광시켰다. 셀틱에서는 3시즌 동안 우승 타이틀만 7개. 하지만 세상은 리버풀 재임 막판의 불안했던 모습, 그리고 후임자(위르겐 클로프)의 큼지막한 웃음만 기억한다. 참 못됐다.
지난 시즌 도중 로저스는 레스터 시티의 지휘봉을 잡아 프리미어리그로 돌아왔다. 셀틱 팬들은 “잉글랜드 중위권 팀으로 가려고 챔피언 팀을 버린 배신자!”라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로저스의 욕구가 너무 뜨거웠다. 풀타임으로 시즌을 준비해 맞이하는 2019-20시즌 레스터 시티는 개막 4라운드까지 2승 2무로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임대생 유리 틸레만스를 완전 영입했고, 뉴캐슬의 살림꾼 아요세 페레스(오카자키 신지 V2.0?)도 손에 넣는 등 전력을 충실하게 강화했다. 2015-16시즌 우승 신화를 썼던 당시 스쿼드(제이미 바디, 오카자키 신지, 은골로 캉테, 대니 드링크워터 등)와 견줘도 손색이 없다. 스완지 시티, 리버풀 초기, 셀틱에서 입증되었듯이 로저스 감독은 내용과 결과를 모두 잡는 팀 빌딩의 명수다. 레스터 시티 팬들의 가슴이 쿵쾅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언더도그 셋, 히샬리송(에버턴 FC).
브라질 신세대 공격수 히샬리송은 1997년생이다. 우리가 아직도 ‘어리다’고 생각하는 백승호, 이승우와 동갑이다. 브라질 축구 스타의 전형이기도 하다. 우범 지대에서 태어나 친구들 대부분 갱스터가 되었다. 히샬리송은 “어릴 적 동네 깡패가 내 머리에 총구를 겨눈 적이 있었다. 너무 무서웠다. 지금 감옥에 있는 친구들도 많다”라고 말한다. 처음 계약한 아카데미에 입소하려고 집을 떠난 날, 히샬리송의 손에는 왕복 차비뿐이었다. 편도만 끊고 나머지 돈으로 허기를 때우면서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라고 다짐했단다. 10대 소년답지 않은 파부침주의 각오였다. 2019 코파아메리카에 브라질 국가대표로 출전한 히샬리송에게 정확히 5년 전에 벌어졌던 일들이다.
프리미어리그 무대에서 히샬리송은 이미 ‘중형 스타’다. 왓퍼드에서 성공적으로 데뷔한 뒤 1년 만에 에버턴으로 이적하면서 몸값 3천5백만 파운드짜리 선수가 되었다. 에버턴에서도 히샬리송은 폭발적인 페이스와 득점 본능을 앞세워 첫 시즌에만 리그 35경기 13골을 기록했다.
좌우 측면뿐 아니라 최전방 스트라이커 포지션도 소화한다. 올 시즌 4라운드에선 순위 경쟁팀 울버햄프턴을 상대로 두 골을 터트려 짜릿한 3-2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그리고 뜻밖의 언더도그, VAR.
지난 시즌 맨체스터 시티와 리버풀은 ‘살 떨리는’ 우승 경쟁으로 전 세계 팬들을 흥분시켰다. 둘의 운명을 갈랐던 결정적 공헌자가 바로 ‘기계’였다. 지난 1월 맨체스터 시티는 1위 리버풀을 2-1로 꺾으며 우승 경쟁에서 반전을 만들었다. 경기에서 맨체스터 시티 수비수 존 스톤스는 골인 직전에 볼을 걷어냈는데 골라인 판독 결과 단 2cm 차이였다. 골라인 테크놀로지가 맨체스터 시티를 도운 것이다. 이 장면의 영향인지 아닌지 올 시즌부터 프리미어리그도 비디오 판독(Video Assistant Referee)을 도입했다.
누가 축구계의 정통 보수파가 아니랄까 봐서 리그 개막부터 영국의 언론, 선수, 팬들이 합심해서 VAR을 잘근잘근 씹기 바쁘다. 경기 흐름을 끊는다, 축구 정신을 위배한다, 재미가 없어진다 등등이다. 콧대 높은 심판진도 웬만해선 VAR 판독을 선택하지 않는다. 명백한 페널티킥 장면에서도 영상 확인 없이 넘어가기 일쑤다. 그러나 리그 경쟁이 막판으로 갈수록 VAR의 존재감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근대 축구의 조상 영국도 영원히 신체발부 수지부모 타령만 할 수는 없다. 싹둑!
WORDS 홍재민(축구 칼럼니스트, <포포투> 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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