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덤> <쇼미더머니> <프로듀스×101> 등 엠넷이 내놓는 음악 프로그램들은 경쟁이 화두다. 순위 경쟁 없이는 재미도 없는지 잇달아 흥행하는 방송 포맷은 자극적인 편집으로 완성된 순위 경쟁 프로그램이다. 힙합 뮤지션들의 축제나 걸 그룹들의 축제와는 거리가 멀다. 컴백 전쟁, 맞대결 등 치열한 난투극에 가깝다. 왜 음악 방송은 경쟁 포맷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EDITOR 조진혁
경쟁의 구조화는 시장의 양극화로
왕년의 요정들이 여유롭게 출연하는 JTBC <캠핑클럽>과 여왕의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엠넷의 <퀸덤>을 보다가 문득 내가 이 프로그램들을 어떻게 여기는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캠핑클럽>에서 매번 이진과 성유리를 재발견하는 재미가 꽤 즐겁지만, <퀸덤> 같은 토너먼트식 프로그램은 유쾌하지 않다. 이렇게 말하면 과열 경쟁, 줄 세우기를 비판한다고 생각될 것이다. 부분적으로 맞다. 나는 서열화야말로 기득권의 정치라고 생각하고, 그로부터 구축된 악화가 양화를 영영 몰아낸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나는 경쟁 그 자체에 대해서는 오히려 우호적이다. 따라서 경쟁 구도를 이해하고 비판하는 일에는 꽤 신중해진다.
솔직히 말해 <퀸덤>뿐 아니라 <복면가왕>이나 <쇼미더머니> <프로듀스×101> 같은 인기 경쟁 프로그램이 매력적이지 않은 건 음악 때문이다. 여기서는 주로 기존의 히트곡이 나오는데, 관객과 시청자의 반응을 위해 과하게 편곡된다. 깔끔한 브리지는 늘어지고, 제 몫을 다하던 코러스는 기이하게 반복된다. 현악 파트와 중창단은 그저 멋스러운 분위기를 내려고 애쓴다. 오직 대기실과 관객의 함성을 노리는 편곡은 이미 잘 설계된 원곡의 구조를 망친다. 나는 경쟁 프로그램 특유의 편곡 때문에 불편하다.
하지만 경쟁 그 자체에 대해선 생각이 조금 다르다. 방송 포맷을 공격하기 전에 나는 가요 시장의 구조 변화를 언급하고 싶은데, 지금 한국 음악 시장에서 경쟁은 치열하다 못해 극단적이다. 특히 K-팝은 고비용 고효율의 구조로 작동하는 시스템인데, 유행으로 치부할 수 있는 규모도 아니고, 문제 제기할 타이밍도 지나버렸다. 2019년 현재, K-팝은 한국 음악 산업을 정의하는 핵심 구조로서, 애초에 자본 없이 뛰어들 수 없는 분야가 되었다.
물론 방송 프로그램들이 이런 경쟁 구조를 부추긴다고 할 수도 있다. 앞서 말한 이유로 이 부분에 대해선 어느 정도 동의한다. 생태계에 기여하는 포맷을 개발하는 크리에이티브 역량보다 더 쉬운 길을 택한다는 인상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엠넷의 경쟁 프로그램이 줄줄이 등장한 이유로 JTBC의 ‘힐링 예능’(이런 표현을 좋아하진 않지만)이 출현했다고 볼 수도 있다. 요컨대 <퀸덤>과 <캠핑클럽>은 악어와 악어새 같은 관계인 셈이다.
이때 뮤직 비즈니스를 하는데 굳이 왜 경쟁 구도로 점프해야 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좋은 음악은 좋은 사람들로부터 나올 텐데 말이다. 그런데 내 기준에서 이것은 의지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음악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 필연적으로 감당해야 할 이슈다. DAW(Digital Audio Workstation) 운영체제와 VST(Virtual Studio Technology)로 불리는 가상 악기의 급격한 발달과 가격 하락 덕분에 음악을 만드는 과정 자체는 대중화되었다. 누구나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에서, 실제로 매일 수백 곡의 음원이 다양한 경로로 유통되는 환경에서 프로페셔널은 음악의 퀄리티만큼 사업적 비전과 성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음악 산업에서 경쟁이 심화된다는 것은 단지 무한한 경쟁자가 등장한다는 뜻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가 한없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국의 음악 시장은 밀도가 높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에서 매년 발표하는 보고서에서 한국 음악 시장은 매우 빨리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음악은 한국어라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해외 시장 진출이 필수적이라고 해도 국내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아이돌(혹은 K-팝)이든, 힙합이든, 록이든, 전자음악이든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필연적으로 경쟁은 심화된다. 시장은 커지는데 타깃은 유한한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한국의 대중음악은 ‘진정성’과 ‘테크닉’이라는 기준 아래 성장해왔다. 하염없이 올라가는 대중의 눈높이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작곡뿐 아니라 연주력이나 가창력, 퍼포먼스나 뮤직비디오가 압도적인 완성도를 지향해야 한다. 어떤 장르든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국 음악의 시장 경쟁력이 유지된다. 아이러니다. 2015년, 아이돌 그룹의 경쟁이 극에 달했던 시점이 아니었다면 BTS는 차별화된 콘셉트로 데뷔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메바컬쳐가 메인스트림에 진입하지 않았다면 일리어네어와 AOMG가 출현하는 데 시간은 더 걸렸을지 모른다. 파스텔뮤직과 마스터플랜이 경쟁적으로 시장을 키우지 않았다면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의 성과는 지금만 못했을 수도 있다. 물론 당연한 얘기지만, 경쟁은 결과물의 수준을 높이고 심지어 음악가의 계약이나 활동 같은 보이지 않는 부분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러니까 현재 음악 경쟁 프로그램은 그 시장의 구조를 반영한 결과일 텐데, 이제 적당히 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그러나 무수히 데뷔하는 신인 가수들, 그들과 경쟁하는 기존 가수들, 그 구조에서 새로운 음악 경쟁 프로그램을 고안해내는 미디어 구조 안에서 과연 ‘적당한 경쟁’이 성립될 수 있을까. 현재 한국의 음악 시장은 끓어오르는 중이고, 나는 이 시점에서 경쟁 시스템은 당분간 지속될 거라고 본다. 그리고 경쟁의 구조화는 결과적으로 시장의 양극화를 가속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경쟁이 사라지거나 무의미하다는 말 대신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음악 경쟁 프로그램에서 너무 멀어진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2019년이라면 왠지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볼 때라는 생각도 든다. 피터 틸은 <제로 투 원>에서 극단적인 시장 경쟁에서의 성공 전략이 결국, 새로운 영역을 만들고 거기서 압도적인 1위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지만, 일단은 현재 가요 시장에 대한 가장 적절한 통찰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경쟁의 순환 구조를 기본으로 두면서도 우리는 어떻게 다른 선택지를 상상할 수 있을까. 내가 안고 있는 질문은 이 정도다.
WORDS 차우진(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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