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홍지호
시인은 시를 쓰는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 아닐까. 시를 썼다면, 모든 시간 동안 시인인 걸까? 시인이라는 게 있을까? 시인이 아니라 그냥 시가 있는 것 아닐까. 홍지호는 1990년생이다. 그는 자신을 시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지 않는다. ‘시인이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시를 쓰기 때문에 시인’이라는 말을 어디에선가 들었고, 들은 순간부터 줄곧 그 말을 좋아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시를 쓰나요?
주로 카페에서 써요. 그곳에 앉아서 음악 들으면서 작업해요. 맥북 열고, 스마트폰 메모장 켜고, 이어폰 끼고, 음악을 고르면서 시작해요. 언제 쓰냐면, 주로 마감을 앞두고 써요. 평소에는 일상에서 생각나는 것들을 메모해두었다가 어둑어둑해지면 쓰고요.
그 기록은 스마트폰 메모장에 하나요?
스마트폰 메모장에 스케치하고 맥북이나 태블릿 PC로 작업해요. 가끔 손으로 쓸 때도 있어요. 의도적으로요. 타자를 치면 일단 빠르죠. 문자가 흰 여백에서 곧장 생겨나고요. 손으로 쓰면 글을 그리는 느낌이에요. 느리게 써지죠. 안 써지기도 하고요. 리듬도 많이 달라요.
최근에는 어떤 음악을 들으며 썼어요?
맥 에이레스와 프랭크 오션이요. 프랭크 오션의 <Blond>를 아직도 무척 좋아해요. 애플 뮤직을 쓰고 있는데, 애플 뮤직의 사용권을 구매한 이유가 프랭크 오션 때문이었어요. 그의 앨범이 애플 뮤직에만 풀렸거든요. 시 쓸 때, 프랭크 오션의 음악을 가장 많이 듣습니다. 앨범 전체를 돌리면서요.
프랭크 오션의 음악을 많이 듣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분명한 이유가 있어요. 프랭크 오션은 지금 가장 새롭고 앞서나가는 아티스트인 것 같거든요. 그런데 음악을 들어보면 과거의 것들이 떠올라요. 무척 단순하고요. 그런 점이 좋아요. 그런데 프랭크 오션이 욱일기 그려진 반다나를 쓴 적이 있어요. 무지해서 그런 거죠. 그때부터 어디 가서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는 게 불편해졌어요.
왜 시를 쓰기 시작했나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어요. 고등학교 때 본격적으로 시를 읽기 시작했는데, 당시 좋아한 시인이 기형도였어요. 충격을 받았거든요. 이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길래 이런 문장들을 쓰는 건가 하고요. 사춘기잖아요. 고독한 사람이 멋있어 보이잖아요. 대입을 앞두고 전공 선택할 때 그의 시가 생각났어요. 나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했어요. 처음엔 소설이나 시나리오, 희곡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대학교 들어가서 공부하다가 시에 발을 들여서. 이상한 인생이 되어버렸어요.
대학생 때 고민하는 것들 중 하나는 사회인으로서의 삶이잖아요. 대학교 입학 후 시에 발을 들였다면, 그 당시에는 등단이 목표였나요?
등단이 목표였던 적은 없어요. 내가 좋아하는 시인들처럼 쓰고 싶다는 것뿐. 굉장히 안일하고 건방진 생각이었죠. 등단은 실제로 제가 어딘가에 글을 투고하던 무렵에 한 번 생각해본 정도죠. 이젠 내도 되겠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거든요. 정말 바보 같았어요. 한국에서는 등단을 해야지 뭐라도 할 수 있는 건데. 어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계속했기 때문인지,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먹고살 거라 생각했고요. 뭐에 꽂히면 그것만 하고 다른 곳으로 눈을 못 돌려요. 그래서 시만 봤나 봐요. 시 혹은 문화. 아, 음악도요. 음악은 워낙 어렸을 때부터 즐겨서.
음악 작업도 하고 있나요?
음악 매일 만들어요. 카페에서 글 쓰다가 막힐 때면 음악을 만듭니다. 맥북 로직으로요. 그냥 취미로 꾸준히, 패드와 시퀀스들로 작업하고 있어요. 음악 만드는 시간이 저에겐 쉬는 시간이에요. 음악 만들고 있으면 편안하고 기분 좋아져요. 음악을 듣고 영감받아서 시를 쓸 때도 많아요. 거의 늘 듣고 있으니까.
시인이 되기 전 상상했던 시인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시인이라 하면 술 많이 먹고,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 있는 사람을 떠올렸어요. 그런데 지금의 시인은 어디든 많이 가보고, 뭐든 많이 해봐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야 요즘 사람들에게 읽히는 시를 쓸 수 있어요. 책이라는 게 끝까지 읽기 전에 포기하기 쉽잖아요. 끝까지 읽도록 하는 것이 작가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읽는 사람이 많은 걸 느낄 수 있도록 해야겠죠. 원래 저는 집 밖, 여행, 낯선 곳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제는 나가서 많이 느끼고 보려고 노력해요. 최근에는 전시장도 즐겨 찾고 있어요.
최근 인상 깊었던 전시는 뭐예요?
국립현대미술관의 박서보 전시회요. 압도되었어요. 반복되는 패턴이나 색을 활용하는 건, 얼핏 생각하면 단순하게 느껴질 수 있는 작업이잖아요. 그러나 그걸 아주 잘 다루는 마스터가 창작하면 보는 사람들이 그 안에서 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음을 깨달았어요. 제 시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시인이 되어보니 상상했던 것과 무엇이 같고 다른가요?
저는 스스로 시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지 않아요. 시인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시가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시를 한 편 쓰는 당시에만 시인이 있는 거라고요. 시를 쓴 다음, 모든 시간 동안 계속 그 사람이 시인인 걸까요? 물론 시로 생계를 이어간다면 달리 얘기할 수 있겠죠. 시인이 직업이 되는 거니까.
지금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까’가 1번이에요. 2번은 올 연말쯤 첫 번째 개인 시집이 나올 텐데, 이 다음 시집은 어떤 방식으로 묶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첫 시집은 나름의 방향성을 잡아서 묶었는데 이 다음은 어떻게 해볼까. 지금까지 썼던 방식이 개인적으로는 조금 지겨워졌거든요. 즐겁게 쓸 수 있는 새 형식과 방향을 고민하고 있어요.
최근 댓글을 달거나, 지인에게 링크를 보낸 뉴스가 있다면요?
댓글 달기나 링크 보내기는 잘 하지 않아요. 축구를 좋아해서 축구 기사에는 댓글을 달아봤어요. 프리미어리그의 아스널 팬이거든요. 아스널 팬 카페에, 경기 분석 글 같은 건 남긴 적 있어요.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는 사회적인 이슈가 있나요?
여름에 환경 관련 세미나가 있었어요. 환경 단체와 전문가의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죠. 그 이후로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아져 뭔가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홍지호의 20대 독자들은 왜 홍지호의 시를 읽을까요?
개인 시집이 아직 발간되지 않았어요. 저를 찾아보고 제 시를 읽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감이 잘 안 와요. 저는 그냥 내 자리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를 써요. 제 시를 읽는 독자는 제가 만든 자리를 보고, 와서, 마음에 들어 잠시 앉았다 가는 분들이겠죠.
시인이기에 하는 일이 있어요?
없어요. 저는 그냥 생활인이고 싶어요. 생활인으로서 살다가 잠깐 시를 쓰고 싶습니다.
쓰지 않으려고 하는 시어가 있나요?
쓰지 못하는 시어들만 많아요. 어떤 단어는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제쳐두기도 하는데, 그런 것까지 다 쓰고 싶어요.
제쳐둔 단어에는 어떤 게 있어요?
‘힙합’이요. 힙합 같은 단어들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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