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예능국 간판 PD 김태호가 돌아왔다. 대한민국 대표 예능 <무한도전>의 긴 항해를 끝낸 지 1년 4개월 만이다. 능숙하고 유능한 선장 김태호는 휴식에서 돌아온 후, 곧바로 새로운 배를 뚝딱뚝딱 설계하더니, 이내 출정식을 마쳤다. 함께하는 선원은 이전 <무한도전>호의 믿음직한 파트너였던 유재석이다. 다시 만난 둘. 과연 대중성과 마니악한 코드, 두 가지 모두를 얻어냈던 과거의 영광을 다시 재현할 수 있을까? 여기서 궁금증 하나. 예능 프로그램이라면 차고 넘치는 시대에 왜 유독 대중은 ‘김태호’에 열광하는 걸까. 단순히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을 이끌었기 때문에? 아닐 거다. 그렇다면 김태호가 돌아온 이 시기, 대중은 예능판에 어떤 갈증을 느끼고 있을까. 여전히 대중이 김태호에 열광하는 이유를 거기에서 찾아본다면 어떤 이유가 있을지, 그리고 새로 만들어진 김태호표 예능에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은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봤다.
EDITOR 신기호
‘김태호’라는 대의명분
“저는 김태호 PD님이 부르면 안 돼요?” MBC <놀면 뭐하니?>에서 예능인 조세호의 집에 초대받은 래퍼 겸 방송인 딘딘이 “왜 왔냐”는 유재석의 의심 어린 질문에 응수하며 한 말이다. 그리고 조세호는 자신의 집을 촬영 장소로 제공하면서 “안 된다고 하지 그랬냐”는 유재석의 질문에 “정이 있는데 어떻게 그러냐”고 답했다. 앞서 래퍼 겸 방송인 데프콘은 유재석과 처음 통화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김태호 PD님이 하시는 거예요? 말만 들어도 떨려요.”
대체 이들에게 김태호 PD는 어떤 존재이기에, 한 명씩 돌아가면서 이토록 절대적인 신뢰와 충성을 그에게 보내는가.
당연히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0년여의 시간 동안 그는 단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치열한 방송 시장에서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프로그램이 됐고, 수많은 예능인들의 방송 수명을 연장하는 데도 커다란 기여를 했다.
그런 김태호 PD의 새 작품 <놀면 뭐하니?>는 <무한도전>의 프런트맨이었던 유재석을 다시 내세우며 여러 예능인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짐작건대 이 프로그램의 미래가 불안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KBS <해피투게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등 여러 프로그램에서 꾸준히 얼굴을 비췄음에도 유재석의 미래에 대해 쏟아지던 비관적인 시선 역시 김태호의 복귀와 함께 스멀스멀 사라지고 있다. 대부분의 시청자들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김태호는 김태호다.’ 포털 사이트에서 종종 보이는 이런 댓글은 김태호 PD에 대한 여전한 기대를 방증한다.
유튜브, 넷플릭스 등 기존의 TV 산업과 온라인 산업을 결합하거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는 미디어 플랫폼의 등장과 함께 제시간에 TV를 보는 사람은 급속도로 줄었다. 그리고 인기 드라마, 인기 예능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10%를 넘기면 칭찬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상황에서 김태호 PD가 유튜브로 먼저 <놀면 뭐하니?>의 일부를 공개하고, MBC라는 기존 레거시 미디어로 다시 방송하며 이원화를 꾀하는 모습은 ‘요즘 시장’의 변화를 반영한 ‘김태호 다운’ 선택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김태호 PD가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식에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도리어 전보다 감상적으로 현실에 접근하면서, 자연스레 공감을 유도하고 있다. <놀면 뭐하니?>는 자신이 놀기를 중단하고 나온 이유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는 유재석과 유희열의 입을 통해 프로그램의 아이디어와 질보다, 연예인의 유명세 없이는 주목받기 어려워진 예능판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동방신기 유노윤호는 “보물찾기하듯이 좋은 사람을 많이 찾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며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를 만들어준다. 체계적으로 짜인 대본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연출의 흐름은 꼭 그가 새로운 사람들을 찾아서 기회를 주겠다는 선언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매일같이 같은 예능인들을 보면서 ‘질렸다, 지루하다’고 말하는 대중에게 그는 새로운 선택지를 보여줄 심산이다. “포털 사이트 메인에 오르지도 못해”라는 유재석의 말처럼, 기회를 받지 못하는 방송인들을 찾아서 기어코 일자리 창출까지 해내려고 하는 김태호 PD의 계획이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에서 시청자는 김태호 PD의 도전과 프로그램을 응원할 이유를 찾는다. 김태호 PD의 명백한 대의 표명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김태호 PD는 연예인과 시청자가 자신의 새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정통 TV 예능 프로그램’의 재도약을 꿈꿀 수 있도록 유도한다. 다소 불명예스러웠던 <무한도전>의 마지막을 영광스럽게 만회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가 과연 새로운 사람을 얼마나 찾아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역시 쉽게 떨치기 어렵다.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연기자들은 모두 유재석의 질문을 받는다. 그동안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기 힘들었던 배우 태항호부터 동방신기의 유노윤호까지, 모두 유재석의 질문을 받고 프로그램의 멤버로 합류했다. 이것은 김태호 PD가 마련해놓은 룰렛 테이블에서 자신의 턴을 부여받기 위한 일련의 과정처럼 보인다. 그는 가장 친한 동료인 유재석에게 룰렛 테이블의 운영을 맡기고, 김태호 PD의 세상에 입장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유재석을 통한 허가증을 발급한다. 단, 이 허가증을 받은 사람들 중 대부분은 이미 <무한도전>에 출연한 적이 있고,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 중이라는 사실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놀면 뭐하니?>에 나오는 출연자들은 결국 둘로 나뉜다. 김태호와 이미 친한 사람, 그리고 앞으로 친해질 사람. 그래서 김태호 PD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은 곧 그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이 된다. 그러니까 그가 유재석의 입을 빌려서 말한 ‘안타까운 연예계의 현실’은 그 또한 상당 부분 기여했다는 의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유명인 위주의 뉴스가 끊임없이 생산되는 시장, 잠시 사람들이 스치듯 보고 넘어가는 수많은 미디어 플랫폼 안의 프로그램들도 김태호 PD를 이기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쟁자를 무력화시킬 정도로 단번에 주목받을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연예인과 시청자의 기대는 여전하고, 상당하다. 언젠가는 김태호 PD에게 “왜 또?”라며 거침없이 거절 멘트를 날릴 수 있는 유일한 ‘유재석’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연예인의 것이고, 또 시청자의 기대는 그런 사람이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무한도전>처럼 즐거우리라는 예상에서 비롯된다. 김태호라는 대의명분 하나로 만들어진 그들의 두 번째 세상은 과연 얼마나 번창할 수 있을까. 다른 건 몰라도 연예인의 절대적인 신뢰와 충성을 보험으로 가진 그의 세상이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WORDS 박희아(<아이즈매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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