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아레나>에 최유화의 사진이 실렸다. 신인 배우들을 대상으로 한 화보였다. 짧은 인터뷰도 진행했다. 그녀는 솔직했고, 생각이 깊고, 해맑게 웃었다. 몇 가지 더 기억나는 것은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 청량한 소녀의 모습으로 기억한다. 밝고 건강한 기운에 잠깐 반했던 것도 같다. 다시 인터뷰하기로 약속하고 몇 해가 지났다. 실시간 검색어에 그녀의 이름이 올랐고, 그녀가 출연한 드라마와 영화가 연이어 등장했다. 지금 그녀를 인터뷰한다면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더 할 수 있을까? 지난 5년간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녀가 겪은 삶의 희비를 알아보기로 했다. 그녀는 여전히 솔직했고, 음악을 사랑했다.
작품이 연달아 발표되니 활발하게 활동하는 배우처럼 보인다.
경력을 주로 영화로 쌓아왔다. 회사에서 드라마 출연을 권해서 드라마 오디션을 보기 시작한 게 몇 년 전이다. 드라마에서 작은 역을 맡으면, 영화 작업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이 계획대로만 되진 않더라. <슈츠> <미스트리스> <라이프>를 비슷한 시기에 진행하게 되었고, 무척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주연으로 캐스팅된 영화도 있었지만 제작이 무산됐다. 힘든 시기를 보냈을 것이다. 배우는 선택받는 직업이다 보니 좋은 기회가 자주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좋은 감독님과 배우들로 구성된 작품들이었는데 무산됐다. 그런 일이 몇 차례 있었다. 제작이 기사화된 것도 아니라서 마치 경력 단절처럼 보인다. 주연 기회까지 얻었지만 작품은 자꾸만 엎어지고, 드라마에서는 데뷔 때보다 더 작은 역할들만 맡다 보니 고민이 생겼다. 왜 내 삶은 항상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걸까, 왜 남들보다 느리게 가는 걸까. 자책하는 시간들을 보냈다. 그럴 때는 사람마다 운명이 다르니까, 나는 부족한 게 많으니까, 채워나가야 하는 시간일 수 있겠다고, 나는 남들보다 천천히 가야 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 위주로 활동하다가 오랜만에 드라마에 출연했을 때 낯설지는 않았는가.
드라마에서는 연기 테크닉도 필요하다. 내가 아무리 진심으로 역할에 몰입한다 해도 내 감정이 TV에, 그러니까 내 표정에 정확히 드러나지 않으면 안 된다. 테크닉적인 연기는 당연한데, 나는 왜 그동안 테크닉을 거부해왔을까 싶다. 경력이 단절된 시간이 있었고, 조급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나름 그 시기를 즐기려 했다. 주변에서는 내가 남에게는 관대하지만 자신에게는 관대하지 않다는 얘기를 하더라. 지금은 나만의 리듬을 찾아가고 있다.
삶과 일 사이에서 나만의 리듬을 찾는 것, 배우로서 기회를 얻는 것 모두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 나는 마음이 동하면 빠르게 움직인다. 무모해 보이지만 신중히 고민하는 편이고. 배우는 대중의 평가를 받는 일이니, 내가 연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무조건 연기를 할 수는 없다. 선택받기 위해 잘해야 된다. 때로는 내 생각과 평가가 다를 때도 있다. 그걸 다 포용해야 된다. 배우를 하면서 내 자신이 성숙해진 것 같다.
자신을 객관화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 또한 어려운 일이다. 배우는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많을 것 같다.
배우가 되기 전부터 나의 행복을 잘 체크하는 사람이었다. 삶이 재미없다고 느껴질 때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라고 명명한다. 딱 일주일만 재미있게 보낸다. 또 겨울을 좋아해서 3월 3일에는 ‘겨울 안녕’이라는 놀이를 한다. 삶을 특별하게 만들고, 내 상태를 확인하는 것을 좋아한다. 배우가 되기 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외에는 무관심했다. 배우를 해보니 좋아하지 않는 사람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이 주어지더라.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많았다.
당장은 부족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사람이 있고, 완벽한 모습을 갖추고 나아가려는 사람이 있다. 최유화는 후자인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작품을 선택할 때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더라. 일이 늘어나면서 내 삶은 작업 현장에 매몰되는 것 같다. 어려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하는 편이었고, 요즘처럼 바쁠 때에도 내 삶을 작품에 쏟으려고 한다. 연기 못한다는 평이 들리면 자책하기도 한다. 때로는 일과 삶을 분리해서 외부의 영향을 덜 받는 행복한 삶을 누려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타짜: 원 아이드 잭> 이야기도 해보자. 마돈나라는 역할이다. 어떤 인물인가?
남들이 멋있다고 해도 나는 잘 모르겠는 캐릭터가 있는가 하면, 남들은 이상하다고 하는데 나는 잘 알 것 같은 캐릭터가 있다. 마돈나는 잘 알 것 같은 캐릭터다. 매우 여성적이지만 약간 어둡고 나른한 면도 있다. 하지만 매우 섬세하다. 본능적으로 연기했다.
준비하기 쉽지 않은 캐릭터 같다.
당시 <라이프> 촬영을 마치고 바로 <봉오동 전투> 촬영에 들어갔다.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산속을 달리고, 제주도에도 한 달에 다섯 번 넘게 왕복해야 했다. 그 시기에 <타짜: 원 아이드 잭>을 촬영했다. 두 작품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잠도 못 자면서 나의 2백 퍼센트를 쏟아부어 촬영했다. 마돈나는 편안한 삶을 사는 여자는 아니다. 그러다 보니 <봉오동 전투>에서 몸을 던져 고생한 게 마돈나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되더라.
<봉오동 전투> 자료를 찾아봤다. 스틸 컷만 봐도 엄청 힘들어 보인다.
하하. 평온해 보이면 안 되지. 힘든 촬영이었지만 배우도 스태프들도 남에게 스트레스를 풀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배려하고, 농담도 더 많이 했다. 힘든 현장이었지만 사람에게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니 살겠더라. 너무 행복해서 <봉오동 전투>와 <타짜: 원 아이드 잭>은 내게 주어진 선물이라고 느꼈다.
산에서는 포복도 했나?
기어다니기도 하고, 엎드려 쏴, 앉아 쏴도 했다. 3일 동안 내리 뛰어다닌 건 처음이었다. 나름 잘 달린다고 생각했는데 평지가 아니고, 총도 무거워서 자꾸 땅을 보고 뛰게 되더라.
실시간 검색어에도 오를 정도로 사람들은 최유화를 궁금해한다. 갑작스러운 관심이 부담스럽지 않은가?
마이너 성향이 강해서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은 별로 없다. 관심은 감수해야 할 부분이지만 내 성향 때문에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런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아서 주변 사람들이 신기해한다.
하고 싶은 연기, 캐릭터가 분명한 것 같다.
명확하고 전형적인 캐릭터보다는 조금 이상한 캐릭터가 내게 더 맞는 것 같다.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캐릭터가 편하다. 내가 만들어가는 캐릭터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런 작품이나 제안이 많지 않다. 운명에 좌우되는 것 같다.
배우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 적은 언제인가?
사람 관찰하는 걸 좋아해서 배우가 잘 맞는 일이라 생각했다. 막상 해보니 그동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나왔음을 알았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편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았다. 사람에 대한 이해를 더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크다.
때로는 좌절과 실패가 사람을 성장시킨다. 스스로 성장했다고 느낀 적도 있나?
<577 프로젝트>에 잠깐 참여한 적이 있다. 게스트로 하루만 함께 걸었다. 그때 공효진 언니가 연기는 그냥 말하는 거라고 했다. 또 하정우 오빠와 셋이 이야기할 때도 깨달음이 있었다. 그때가 연기의 전환점이 됐다. <밀정>과 <비밀은 없다>를 찍으면서도 삶이 달라졌다. 배우로서의 전환점은 계속 있었다. 또 그 사이에 인생의 사건들이 생겼다. 가족이 아프거나 조카가 태어나거나 그런 사건들을 통해 깨닫는 바가 있었다. 인생의 굴곡은 싫지만 굴곡이 있어야 성장하는 건 맞다. 배우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굴곡이 없던 사람이었다. 작품이 연달아 엎어지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무시당할 때도 있고 그럼에도 화를 낼 수 없었다. 굴곡을 겪은 뒤 만일 내가 큰 역할을 맡게 된다면 더욱 배려하는 사람이 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하하.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
일을 하면서 알게 됐다. 배우 하기 전에는 너무 안전한 곳에 있었나 보다. 잡지 모델 출신이지만 모델 일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많이 혼났다. 혼나면서 배웠기 때문에 체득한 감각이 있는 것 같다. 싫은 사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난 뒤 보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어떤 삶을 살고 싶나?
음악을 들으면서 이런 감각의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한다. 리한나 같은 경우만 해도 처음에는 글로 된 가사, 악보를 보았을 텐데, 어떻게 이런 목소리와 표정으로 무대에서 연기할 수 있는지 신기하다. 너무 멋있다. 그건 배워서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뮤지션들을 보면 그들처럼 멋있게 살고 싶어진다.
좋다. 요즘은 무슨 고민을 하나?
나 자신에게 조금 더 관대해졌으면 좋겠다. 바빠도 여유를 갖고 흐름을 잘 타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바쁘다고 티내지 않고, 마음속 여유는 빼앗기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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