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 신기호
판타지 드라마 vs 판타지 요소를 곁들인 멜로드라마
TV 드라마의 판타지물은 2010년 <시크릿 가든>의 성공 이후 유행처럼 확산되었다. 판타지는 초자연적 현상이나 초능력을 지닌 존재 등을 끌어들여 현실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 또는 가상 시공간을 바탕으로 상상의 세계를 그럴듯하게 구현하면서 극적인 환상을 만들어낸다. 리얼리즘의 강박에 갇혀 있던 국내 TV 드라마에서 판타지는 새로운 영역으로 부상했고, 사극부터 현대극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었다. 근래 작품을 나열해볼까. <해를 품은 달>(2012, MBC)을 시작으로, <별에서 온 그대>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 <오 나의 귀신님> <푸른 바다의 전설> <시그널> <W> <쓸쓸하고 찬란하神 도깨비> <힘쎈여자 도봉순> <내일 그대와> <시카고 타자기> <고백부부> 등이 판타지 드라마로 분류될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그동안 국내 TV 드라마에서 선보인 판타지의 모티브는 크게 시간, 공간, 인간, 역사 등으로 나뉜다. 타임슬립(time-slip) 또는 타임리프(time-leap), 그도 아니면 환생으로 시간의 제약을 뛰어넘거나 가상 공간을 넘나드는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주인공의 육체와 영혼의 전환에 기반하거나 초능력자나 상상의 존재의 개입을 모티브로 삼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세간에 회자된 드라마들은 이러한 판타지 모티브를 차용하고는 있지만, 정작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에 기댄 경우가 많았다. 멜로드라마에 판타지 요소가 가미된 작품이 대부분이었던 탓에 탄탄한 캐릭터로 판타지를 대변하며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한 TV 드라마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최근 선보인 작품들도 이러한 틀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우연한 사고나 사건을 통해 특별한 능력을 얻은 주인공이 악과 대립하는 구조를 띠었던 <배드파파>나 <여우각시별> <아이템>에서도 가족과 연인이 스토리텔링의 중심에 놓이면서 할리우드 영화나 미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초능력자가 공적 영웅으로 재현되는 것과는 달리, 캐릭터의 능력이 사적 영역으로 능력이 수렴되어 주제와 세계관이 확장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지닌 드라마들은 판타지 요소를 제법 잘 버무려놓았다고 하더라도, 주인공의 개인사 또는 멜로가 납득되기 어려운 전개로 흘러가면 판타지 또한 그 안에 묻혀버리는 경우가 많다.
판타지 드라마의 성공 여부는 단순히 제작비의 부족이나 미비한 VFX에 좌우되지 않는다. 5백40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하고 장동건과 송중기, 김옥빈, 김지원을 앞세운 스타 캐스팅으로 승부수를 띄웠으나, 아쉽게도 기대만큼 평가를 받지 못하고 지난 7월 7일, 파트2까지 방영을 마친 tvN의 <아스달 연대기>가 그 대표적 사례다. <뿌리깊은 나무>와 <육룡이 나르샤> 등 탄탄한 팩션 사극을 선보여온 김영현 작가와 박상연 작가, 그리고 <시그널>과 <나의 아저씨>를 연달아 히트시킨 김원석 감독이 의기투합한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방영 전부터 커다란 주목을 끌었으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아니면 시도가 지나치게 창대했던 것일까. 상고 시대를 배경으로 가상의 대륙, ‘아스’에 최초의 도시 ‘아스달’이 생겨나고 국가가 탄생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판타지물인 이 작품은 제작진의 야심찬 도전에도 불구하고 생경한 설정과 많은 등장인물의 서사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으며 부진한 성적에 그쳐야 했다.
그에 비해 지난 7월 13일 같은 시간대에 첫 방영한 <호텔 델루나>는 2회 전국 시청률 8.1%를 기록하며, <아스달 연대기>의 최고 시청률인 7.7%를 가뿐히 넘어섰다. 왜 그럴까. 이유를 찾아보자면, 다수의 시청자는 애써 고민하고 기억하며 따라가야 하는 어려운 역사 판타지보다는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알콩달콩 로맨스를 국내 TV 판타지 드라마에 원하는 것이 아닐까. 실제와 너무 멀게 느껴지는 세계는 대중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어려운 법이니까. <왕좌의 게임>처럼 영화 수준의 세밀한 설정과 스케일을 선보이며 캐릭터 하나하나의 서사를 촘촘하게 그려내, 탄탄한 세계관을 구현해내지 못할 바에는 판타지 요소가 드라마에 생기를 부여하며 멜로를 극대화하는 정도의 역할을 하는 판타지 로맨스가 아직까지는 국내 TV 드라마의 주요 시청층에게 소구하는 포인트라고 보인다. 천사와 인간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단, 하나의 사랑>(2019, KBS)이 나름 선전하며 종영한 사례도 이러한 연장선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판 판타지 드라마의 시장은 요원하기만한 것일까. 아니다. 넷플릭스를 통해 시즌 1이 방영된 <킹덤>(2019)과 같이 OTT의 오리지널 시리즈가 점차 증가하고, 웹드라마 등 새로운 플랫폼에 기반한 콘텐츠가 확장되는 시대 흐름에 발맞추어 판타지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다양해질 전망이다. 성공한 해외 시리즈물을 표방한 판타지물이 아니라 국내 시청자층의 니즈를 좀 더 정확하게 관통한다면 TV 판타지 드라마의 영역도 한층 단단해질 수 있으리라 예상한다. BBC의 유명 시리즈 <라이프 온 마스>(2018, OCN)가 리메이크 과정에서 한국의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적절하게 가미해 로컬 시장에 소구하는 캐릭터와 서사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 것처럼, 우리의 실제 현실에서 이해되고 상상할수 있는 탄탄한 이야기에 기반하며, TV 판타지 드라마의 외연이 점차 확장되기를 기대한다.
WORDS 지혜원(대문중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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