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했던 파란 하늘은 없었다. 생각보다 로스앤젤레스의 하늘은 흐렸고, 심지어 좀 쌀쌀하기까지 했는데, 결과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2020 S/S 생 로랑 컬렉션이 펼쳐질 말리부 해안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회색 하늘을 바라보며 잠깐 아쉬워했던 순간이 전부.
런웨이가 펼쳐진 모래사장에 들어가야 하다 보니, 대부분 슈즈를 벗어야 했다. 오로지 오늘을 위해 준비했을, 찌를 듯이 아찔한 스틸레토 힐을 벗고 플립플롭으로 갈아 신는 순간, 모두 신선한 희열을 느꼈을지 모른다. 나도 그랬으니까. 한 손에 하이힐을, 다른 한 손에 샴페인 잔을 새침하게 쥐고선 맨발로 모래사장을 밟는 기분이 어찌 짜릿하지 않을 수 있을까? 덕분에 쇼장 입구부터 이미 시끌벅적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깎아지른 절벽 앞에 바다와 하늘을 담은 거울 벽이 길게 뻗어 있고, 해안가를 따라 빛나는 런웨이가 펼쳐져 있었다. 마치 짠 것처럼 하늘과 파도, 절벽 모두가 생 로랑, 그리고 안토니 바카렐로가 사랑해 마지않는 풍성한 모노톤으로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이 또한 비현실적인 바다가 아니겠나. 샴페인을 몇 모금 마신 탓도 있겠지만, 이미 난 그 순간의 말리부에 취했던 거 같다.
전 세계 패션계 인물들, 셀럽이 모두 그곳에 있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거다. 키아누 리브스가 눈을 맞추며 지나가고, 뒤이어 셀마 헤이엑이, 고개만 돌려도 빈센트 갈로, 리암 헴스워스, 니콜 리치, 헤일리 비버, 마일리 사이러스 등등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한 얼굴들이 프런트 로에 자리했다. 그중에서도 단연코 빛났던 갓세븐의 JB까지. 그래 여긴,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의 위엄이란 이런 것.
생 로랑 컬렉션은 여느 패션쇼와 성향이 분명 다르다. 쇼에 초대된 사람들의 표정만 봐도 그 분위기를 짐작 가능한데, 단순히 쇼를 관람하는 것 이상으로 성대한 파티를 즐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키아누 리브스도 분명 조금 들뜬 표정이었던 거 같은데. 어쨌든 이 모든 화려한 장면들도 모두 생 로랑 컬렉션의 서막. 서서히 장막이 걷히고, 부서지는 파도의 결을 따라 길게 뻗은 런웨이만을 위한 조명이 빛나기 시작했다. 하나의 거대한 세트장처럼, 말리부 해안은 오로지 생 로랑의 무대가 되었다.
자유분방한 태도의 모델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몸의 선을 따라 가볍게 흐르는 실크 셔츠는 호방하게 풀어헤치고, 길게 늘어뜨린 가느다란 스카프는 걸을 때마다 가볍게 날렸다. 날렵하게 차려입은 턱시도, 여리여리한 허리가 훤히 드러나는 테디 재킷, 밀리터리 블루종이 끊임없이 등장했다. 팬츠는 슬림한 실루엣의 데님 팬츠가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양탄자를 타고 날아오를 것 같은 하렘팬츠가 대부분. 상의는 발목까지 길게 늘어지는 튜닉 셔츠나 바닥에 끌릴 듯 큼직한 카디건 등 세르주 갱스부르의 자유로움을 닮은 보헤미안 스타일까지. 모두 두말할 것 없이 믹 재거 그 자체였다.
“그는 나에게 옷장을 보여줬고, 그 의상들의 디테일, 색감, 분위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는 안토니 바카렐로의 말처럼, 이번 컬렉션은 1975년 롤링 스톤스의 전설적인 투어를 그대로 옮겨 담았다. 은빛 바다와 생 로랑, 믹 재거에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는 말리부 해변에서의 파티로 이어졌다. 그렇게 또 LA에서의 끝내주는 밤은 쉽게 끝나지 않았고. 생 로랑의 파티가 언제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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