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빈 디자이너는 공간에 콘텐츠를 담는다.
인류가 처음으로 달에 발을 딛는 순간이 생방송으로 송출되던 때. 누군가는 새틴 커버 소파에 앉아 방송을 보았고, 누군가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현대적인 의자에 앉았고, 또 누군가는 나무와 금속이 조합된 테이블에 술잔을 올려두고 홀짝였을 것이다. 스페이스 에이지라 불리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는 서로 다른 소재를 결합한 간결한 형태의 디자인이 각광받던 시대다. 신사동에 위치한 빌라레코드는 그 시대의 감성을 재현한 공간이다. 왜 하필 스페이스 에이지였을까?
“자료를 검색하다 시선이 머문 이미지들은 공통적으로 1960, 1970년대 공간이었어요. 당시에는 건축 설계 단계에서부터 고려하지 않으면 만들수 없는 독특한 실내 공간이 많았어요. 더불어 스페이스 에이지 시대에는 획기적인 컬러를 많이 사용했어요.” 빌라레코드의 주인장인 임성빈 디자이너가 말했다.
그는 2년 전 가구 브랜드를 출시했다. 그가 만든 가구는 나무와 금속의 물성이 어우러진 것으로 최근의 모던한 가구와는 결이 다르다. 곡선이 강조되었고, 1960년대 정서를 연상시킨다. “유행하는 레트로 코드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것을 만들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여러 방향성이 제시됐는데, 제가 스페이스 에이지를 좋아해서 가구나 테이블도 그런 방향을 선택했죠.”
임성빈 디자이너는 우주를 좋아한 소년이었다. 파일럿을 꿈꾸고, 우주 배경의 그래픽, SF 영화나 문화에 관심을 가졌다. 유년기의 취향은 어른이 되면서 자연스레 스페이스 에이지 디자인으로 흘렀다. “스페이스 에이지 당시의 바는 벽등, 샹들리에, 테이블 램프 등 간접조명만 사용했어요. 빌라레코드 바의 조명도 전부 당시 제품으로 구성했어요. 모두 해외에서 직접 공수한 빈티지 컬렉션이죠.”
조명만이 아니라 소파 역시 빈티지 컬렉션이라고 한다. 문제는 귀한 빈티지 컬렉션이지만 워낙 새것처럼 깨끗하게 보존된 탓에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 임성빈 디자이너는 컬렉션의 스토리가 담긴 간단한 소개서를 만들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빌라레코드 입구는 스페이스 에이지의 서재를 연상시킨다. 서재를 지나 거실로 나가면 벽난로가 있고, 우주선 도킹 터널 같은 쇼룸 복도를 지나면 바로 이어진다. 바에서는 당시의 음악, 향, 술, 맛, 가구, 조명 등 오감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있다. 갤러리처럼 구성된 가구 전시장과는 다르다. 공간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공간 콘텐츠에 가깝다. “공간 콘텐츠를 다루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가구 쇼룸 옆에 바를 만들었죠. 음악, 술, 사람들 등 복합적인 것들에서 오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게공간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빌라레코드의 음악은 강남의 다른 바들과는 달리 펑크와 소울을 기반으로 한다. 판매되는 칵테일 또한 시대별로 구성된다. 클래식 칵테일의 등장 시기를 일일이 조사했다고 한다.
백과사전으로 우주를 탐구하던 아이들이 본 멋지고 화려한 미래적인 이미지는 스페이스 에이지에 그려진 것이 대부분이었다. 스페이스 에이지란 어쩌면 1980년대생의 노스탤지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자극을 찾으면서 살지만 나이가 들면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어 자연으로 회귀하는 것처럼, 저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는 시대는 스페이스 에이지였어요.”
나만의 취향이 담긴 바와 쇼룸을 만들면 어떤 기분일까? “마스터베이션이 끝나면 허무함도 있지만 기쁨도 있잖아요. 딱그거예요.” 임성빈 디자이너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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