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은 장르에 따라 즐길 요소가 다르다. 그중 멀리 떨어진 둘은 어드벤처와 아메리칸 크루저다. 둘을 보면 모터사이클이 얼마나 취향 타는 레저인지 알 수 있다. 어드벤처는 빠르게 장거리를 달리거나 오프로드를 즐길 수 있다. 반면 아메리칸 크루저는 유유자적 달리고 오프로드 대신 차체를 감상하는 즐거움이 크다. 둘이 이렇게 다르다. 달라서 취향이 담긴다.
F 850 GS
배기량 853cc / 엔진 수랭 2기통 / 변속기 수동 6단 / 무게 229kg / 최고출력 95마력 / 시트고 860mm / 가격 2천66만원부터
BMW MOTORRAD F 850 GS
BMW 모토라드는 어드벤처 모터사이클의 강자다. R 1250 GS라는 궁극의 머신이 있다. 어드벤처 장르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R 1250 GS는 종착역이자, 최소 한 번은 경험할 모델이다. 이렇게 쟁쟁한 모델이 있기에 F 850 GS에 관심이 덜 쏠릴 수 있다. 전 세대인 F 800 GS는 확실히 관심을 적게 받았다. 배기량이 적고 엔진 형식도 달랐다. BMW 모토라드의 상징 같은 박서 엔진이 아닌 F 시리즈, 즉 직렬 2기통 엔진이니까. 더 얇은 차체, 더 높은 시트고로 오프로드 주파성이 뛰어났지만, 장점이 드러나기보다는 형과 비교당해 주눅 드는 동생 역할이었다. 같은 라인업의 미들급 모터사이클이 겪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이랄까.
세대 바뀐 F 850 GS는 그 선입견을 깨트리려고 한다. 물론 여전히 F 시리즈 직렬 2기통 엔진을 달았다. 배기량이 50cc 늘었지만 형도 딱 그만큼 늘긴 했다. 하지만 변화 폭은 형보다 더 극적이다. 덩치를 키우고 엔진 질감을 다듬었다. 저속에서 끈기 있게 돌아 나간다. 전자식 서스펜션으로 하체도 진일보했다. ASC(Automatic Stability Control)나 DTC(Dynamic Traction Control) 같은 전자식 안전 제어 장치로 고급 모터사이클다운 요소를 넣었다.
클러치 잡지 않고 기어를 변속하는 퀵 시프트까지 장착했으니 어련할까. 예전 F 800 GS에서 자랑할 거리를 찾을 수 있었나? 이젠 줄줄이 나열할 만하다. 옆으로 늘어난 덩치와 각종 전자 장비가 형의 위용에 주눅 들지 않게 한다. 게다가 여전히 앞바퀴가 21인치라서 오프로드 주파성이 뛰어나다는 고유 장점을 유지했다. R 1250 GS보다 적게 나가는 무게도 오프로드에선 부담감을 덜어낸다.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부각하면 달리 보일 수밖에 없다. F 850 GS는 그 방법을 집요하게 적용했다. 물론 그만큼 가격도 전보다 올라갔지만. F 850 GS가 도달한 지점은 명확하다. 선택의 폭을 넓혔다. 예전에는 가격 생각해 울며 겨자 먹기로 골랐다면, 지금은 넣고 빼며 선택할 후보로 진입했다. 덜 무거우면서도 위풍당당하고, 고급스러운 장치를 넣어 든든하면서도 가격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모델. 어드벤처라는 장르에, 어쩌면 더 적합하다.
+UP 덩치와 옵션, 어디 내놓아도 주눅 들지 않는다.
+DOWN 선입견을 지우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다.
Softail Slim
배기량 1,745cc / 엔진 수랭 2기통 / 변속기 수동 6단 / 무게 291kg / 최대토크 14.8kg·m / 시트고 660mm / 가격 2천6백만원
HARLEY-DAVIDSON Softail Slim
시트고 660mm. 대체로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은 시트고가 낮다. 그럼에도 소프테일 슬림은 더 낮다. 푹, 내려앉으면 거대하고 두툼한 연료탱크가 다리 사이에 들어찬다. 연료탱크 밑으로는 묵직한 엔진이 시동 걸기만을 기다린다. 낮고 넓어서 쇳덩어리 질감이 더욱 도드라진다. 핸들바 역시 낮고 넓다. 할리우드 핸들바로 불린다. 헤드라이트를 중심으로 시트 쪽으로 좌우가 휘어 들어오는 형태다. 할리데이비슨 핸들바, 하면 흔히 두 팔 들고 달리는 ‘만세핸들’을 떠올린다. 정반대로 낮고 넓은 핸들바로 할리데이비슨의 육중함을 강조하기도 한다.
알고 보면 오래전부터 그래 왔다는 듯이. 2차 세계대전 때 전쟁에서 활약한 할리데이비슨을 보면 시트 쪽으로 낮고 넓게 휘어진 핸들바를 볼 수 있다. 그러니까 클래식. 소프테일 슬림의 형태는 아메리칸 클래식의 문법을 잘 보여준다. 엔진부터 프레임, 제동장치 등 현대적인 기술력으로 빚었지만, 옛 감흥을 전한다. 아메리칸 크루저가 세대 이어오면서 덩치를 키워왔달까.
소프테일 슬림에 앉아 핸들바를 잡아보는 것만으로도 몸에 전해지는 느낌이 사뭇 달라진다. 다른 할리데이비슨 모델을 타봤는데도. 모터사이클은 핸들바와 시트 높이, 스텝 위치에 따라 느낌이 천차만별이다. 할리데이비슨 라인업 안에서도 이 법칙은 유효하다. 그런 점에서 소프테일 슬림은 시트도, 핸들바도 낮기에 기계적인 물성이 더욱 응축된다. 300kg에 육박하는 무게가 주는 중량감이 꽤 극적이다. 전 세대에 비해 15.8kg 감량했다고는 하지만, 압박감은 여전하다.
으르렁거리는 쇳덩어리를 느끼며 떠나는 여정. 1,745cc 엔진은 속도보다는 으르렁거리는 박력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맡았다. 할리데이비슨이 추구하는 또렷한 감성이다. 그 안에서 조금 편하거나 부드럽거나 거칠거나 할 뿐이다. 소프테일 슬림은 거친 편이다. 밀워키 엔진으로 바뀌면서 전보다 부드러워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어떤 모터사이클보다 터프하기로는 비교할 수 없다. 할리데이비슨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일 게다. 소프테일 슬림은 그 이유를 육중하게 전한다. 아메리칸 크루저의 원형 같은 느낌으로.
+UP 아메리칸 크루저로 즐기는 클래식.
+DOWN 낮고 넓지만 의외로 불편한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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